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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동 Jul 17. 2022

2022 제23회 서울퀴어퍼레이드

하필이면 행진 시작하자마자 비가 퍼붓다니

2022년 제23회 서울퀴어퍼레이드 무대 리허설이 한창 진행 중이다.

코로나19 이후 3년 만에 서울광장에서 열린 퀴어퍼레이드. 그 사이 나는 DSLR을 처분했다. 이번 퀴퍼는 미러리스 카메라에 광각 단렌즈 하나만 달랑 들고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참석했다. 행사 시작 시각인 오전 11시가 조금 넘어서 서울광장에 도착했는데 아침부터 사람이 정말 많았다! 무대에서는 아침부터 풍물패 공연 리허설이 한창이길래 냅다 뛰어가서 사진부터 찍고 봤다. 이 때 사진찍길 정말 잘 했다. 왜냐하면 나중에는 사람도 너무 많고 폭우가 쏟아져서 무대를 제대로 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종이 박스로 만든 귀여운 무지개 집 마을.

입구 바로 앞에 있던 이름이 기억 안 나는 부스의 귀여운 전시물. 퀴어 주거권 관련 활동을 하는 부스였던 것 같고, 모니터도 준비해와서 이것저것 많은 프로그램을 하시려는 것 같았는데 부스에 전기가 안 들어와서 어떤 프로그램을 준비해오셨는지 볼 수가 없어서 아쉬웠다.


오후 3시 경의 서울광장 입구. 사람이 너무 많아서 횡단보도 앞에서 줄 서서 조금씩 광장으로 입장할 수 있었다.

부스를 정신없이 기웃거리다가 반가운 퀴어친구들과 만나서 인사하고 점심먹고 카페에서 잠깐 쉬다가 오후 3시쯤 광장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 사이에 퀴퍼 참가자들이 엄청나게 불어나있어서 깜짝 놀랐다. 그 사이에 성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긍정적으로 변했기 때문일까? 코로나19 때문에 몇 년 동안 오프라인 퀴퍼가 열리지 않았기 때문일까? 이때까지 참여했던 퀴어퍼레이드 중에 가장 사람이 많았던 것 같다. 공식 포토존 앞에서 인증샷을 찍고 싶었지만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찍지 못해 아쉽다.

초대형 무지개 카펫이 서울광장에 깔렸다

사실 오후 3시에 서울광장으로 돌아온 이유는 이걸 찍고 싶어서였다. 이렇게 서울광장에 초대형 무지개 카펫이 펼쳐지고 나면 본격적으로 퀴어퍼레이드가 시작된다.

팔뚝에 '퀴어는 어디에나 있다' 스티커를 붙인 사진기자
무지캐 카펫이 펼쳐지기를 기다리는 기자들과 스태프들
멋진 검정 조끼를 입은 조직위원님의 신호에 맞춰 깃발을 펼칠 준비를 하고 있는 퀴퍼 공식 스태프들
깃발을 펼칠 준비를 하고 있는 퀴퍼 공식 스태프들
초대형 무지개 카펫이 조금씩 펼쳐지고 있다.

사실 무지개 카펫 펼치기 퍼포먼스는 플라자 호텔에 올라가서 항공샷으로 찍어보기도 했고, 올해처럼 광장에 서서 찍어보기도 했어서 이번엔 깃발 자체보다 깃발을 펼치는 스태프들, 깃발을 찍기 위해 모여든 기자들에 주목해서 사진을 찍어보았다. 내 옆에 선 기자님은 팔에 월퀴모 스티커를 붙이고 계셔서 반갑기도 했다. 매체의 정치성향마다 다르겠지만, 퀴퍼 취재를 하면서 퀴퍼에 우호적인 마음을 무지개 아이템으로 표현하는 기자님들도 계셨어서 반가운 마음이었다.

드디어 펼쳐진 초대형 무지개 카펫

여기까지가 퀴퍼 1부라면 이제부턴 퀴퍼 2부가 시작된다.

행진을 하러 광장 밖으로 나가기 위해 줄을 섰다. 병목현상으로 줄만 한 30분 정도 선 것 같은데 그 사이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고 트럭들은 이미 다 출발해버려서 보이지 않았다. 다닥다닥 붙어선 사람들의 우산살 사이로 떨어지는 빗방울들이 옆사람의 어깨와 등, 머리카락으로 흘러들었다. 나 역시도 온 몸이 비에 젖기 시작했다. 바닥에는 물이 차올라서 결국 신발과 양말은 모두 비에 젖어서 걸을 때마다 찰박찰박 소리가 나고 물을 잔뜩 머금은 신발 때문에 모래주머니를 차고 걷는 듯 다리가 너무 무거웠다. 이대로 행진을 하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한 몇몇 퀴어 친구들은 광장 밖으로 나가자마자 집으로 가버렸고, 나는 을지로입구역까지 걷다가 트럭이 너무 보고싶어졌기 때문에 행진 코스를 따라가지 않고 그냥 청계천을 따라서 지름길로 시청역으로 돌아왔다. 

행진을 마치고 돌아오는 공식 차량

첫 번째 트럭이 행진을 마치고 들어오는 모습을 다행히 직접 볼 수 있었다.

행진 선두에서 멋있게 달려준 레인보우 라이더스
행진 선두에서 멋있게 달려준 레인보우 라이더스
퀴어 길벗들과 함께 걷는 종교인 일동

마지막 트럭이 들어오는 것까지 보고 싶었지만 온 몸이 젖어버려서 너무 춥고 다리는 너무 무겁고, 마지막까지 함께 했던 일행은 부스를 구경하고 싶다고 서울광장으로 먼저 돌아가버렸다. 그러던 중 풍물패가 신명나게 서울 광장으로 들어가는 소리가 들렸고 트럭들을 기다리는 것보다 풍물패를 보고 싶은 마음이 더 커서 나도 퍼레이드 행렬 구경은 포기하고 그냥 서울광장으로 돌아왔다.

신명나게 연주하며 퍼레이드를 마치고 돌아오는 사람들을 반겨주신 퀴어 풍물패
신명나게 연주하며 퍼레이드를 마치고 돌아오는 사람들을 반겨주신 퀴어 풍물패
신명나게 연주하며 퍼레이드를 마치고 돌아오는 사람들을 반겨주신 퀴어 풍물패
신명나게 연주하며 퍼레이드를 마치고 돌아오는 사람들을 반겨주신 퀴어 풍물패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데도 아랑곳하지않고 신명나게 음악을 연주해주시며 퀴퍼 행렬을 마치고 돌아오는 사람들을 반겨주셔서 너무 고마웠다. 그리고 내가 불쑥 카메라를 들이대고 사진을 찍는데도 불편해하시기보다 반갑게 내 카메라를 쳐다보고 웃어주셔서 더 고마웠다. 내가 카메라 스트랩에 무지개 리본들을 두 개나 묶어놓고 있었기 때문일까. 예전에 퀴퍼에서 카메라를 들면 숨거나 피하시는 분들이 많았었는데 올해는 포즈를 취해주시고 웃어주시는 분들이 더 많았다. 사진에 찍히는 것을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분위기? 확실히 퀴어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변하고 있긴 한가보다.

이 분은 비누방울을 날리고 계셔서 처음엔 비누방울을 찍으려고 했는데 카메라를 보고 웃어주셔서 같이 찍어드렸다.
이 분도 옷이 너무 아름다워서 옷자락만 찍으려고 했는데 포즈를 취해주셔서 너무 고마웠다. 아름다운 무지개 공작새 같았던 분.

마지막으로 혐오세력에게 하고싶은 말.

우리를 아무리 미워해도 소용없어!

왜냐하면 미워하거나 말거나 우리는 이 모습 그대로 영원히 존재할 테니까.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부스 앞에 있던 미워해도 소용없어 캠페인에 사람들이 직접 적어준 글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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