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봐꼭질]

=스마트폰 숨바꼭질: 꼭꼭 숨어라! 우린 영원한 술래

by 하르엔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어린 시절. 동네 아이들과 하는 시끌벅적한 숨바꼭질은 숨어있는 친구 찾는 재미다. 가위, 바위, 보로 지는 사람은 '안~~~~ 돼~ㅜ 한 번만 다시 하자'라는 소리와 함께 시무룩 해진다. 아무리 표정이 억울해 보여도 승부는 정정당당했기에 고개를 푹 숙이며 벽으로 다가간다. 술래 친구는 벽을 바라보며 손으로 눈을 가린다. '하나, 두울 ~...' 열까지 다 세면 '나 이제 찾는다!'라고 외치고 본격적인 술래잡기가 시작된다.


숨바꼭질은 친구들과 준비물 없이 어울릴 수 있는 잡기 놀이였다. 요즘은 어떨까? 어린이, 어른 구분 없이 자신도 모르게 숨바꼭질을 당하고 있다. 삶의 깊은 부분을 차지하고, 자연스럽게 우리 삶 속에 침투해 자리를 잡았다. 무분별한 영상 재생,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게임, 개인 SNS 활동은 사회생활이나 단체 활동을 하는데 영향력 있는 하나의 표현이자 숨는 사람처럼 됐다.



하나. 스마트폰 +숨바꼭질= [폰봐꼭질]의 시작



스마트폰은 언어장벽과 장소의 한계가 없어 국경을 무너뜨렸다. 전 세계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다른 세상이다. 또 다른 세상에 적응하기 위해 습관을 만든다, 습관은 중독이 더해져 집착이 만들어진다. 만들어진 또 하나의 결과물은 본인을 가둬두는 행동이 된다. 타인의 시선과 관심으로 만들어진 껍데기를 쓰고, 망령처럼 sns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고, 본인이 술래 인지도 모른 채 무엇을 찾아야 하는지조차 잊어버렸다. 그렇게 주변을 헤맨다.


스마트폰은 또 하나의 요물이다. 극도로 혼자 있기 싫어하면서 끊임없이 사람을 유혹한다. 같이 놀자고 끌어당기는 요물. 물건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홀려서 진짜 실종자(숨는 자)가 돼버린다. 하나의 예로 몇 달 전 회사 거래처와 중요한 미팅 날이 있었다. 팀원 중 한 명이 전날 과음했는지 약속한 시간에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바로 비상연락망을 펼쳤지만 머릿속은 백지가 됐다. 가족들 번호조차 바뀐 분들이 태반이었고, 우리들은 원치 않게 술래가 됐다. 스마트폰을 잃어버린 사람은 의도치 않게 숨는 자가 되어 끝나지 않는 폰봐꼭질의 게임 속으로 빠지게 된다.


고의 아닌 고의로
폰봐꼭질이 시작된다.



둘. 폰봐갑()



폰봐꼭질이외에도 출퇴근 시간 지하철, 버스, 택시 등 대중교통을 포함하여 신호등을 기다릴 때 운전 중 신호대기 중에 학교, 회사의 쉬는 시간, 병원 진료 대기 등 스마트폰을 바라보며 육체는 시간이 멈춰있고 정신은 이미 본인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정보의 바닷속에서 새로운 형태로 시작된다.


현실 속 숨바꼭질은 흥미를 잃었고, 즐길 연령대도 한참 지났다. 스마트폰의 작은 세상은 원하는 것이 있으면서 원하는 것이 없다. 무엇을 찾기 위해 들어왔는지 잊어버린 채 술래가 되어 찾아본다. 연관된 알고리즘으로 숨어있던 영상들도 갑자기 보이기 시작한다. 또다시 폰봐꼭질을 시작한다. 술래는 업무나 중요한 일 외에 수시로 확인하며 길을 걸을 때도 횡단보도를 건널 때도 주변의 위험요소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목적지에 도착했지만 지나치기도 한다. 사람들은 45도 각도로 손바닥 안의 작은 화면만을 바라볼 뿐, 사람들의 감정과 온기 그리고 능동적인 행동들은 점점 불필요한 행동이 돼버렸다. 명절날 대화는 줄고 마주 보는 시간이 폰봐꼭질보다 줄었다.


폰봐꼭질은 갑을관계가 기다리고 있다. 이해관계인지 모르고 다시 찾으며 보고 듣고 잡고를 다시 반복한다. 언제쯤이면 끝이 날까?



셋. 폰봐을()



가족, 연인, 친구, 직장동료들보다 내 옆에 항상 거머리처럼 붙어있다. 거머리가 피부에 붙어 피를 빨아먹는다면 스마트폰은 손끝에 붙어 우리의 시간을 빨아먹는다. 통제하지 못하는 습관이 중독의 폰봐꼭질을 시작하고 하루가 끝나갈 때 마친다.


직업과 밀접한 분들은 어느 정도 제외시킬 순 있다.(중독이 안됐다는 가정하) 일상생활에 지장을 초래할 그 외 사람들은 자신의 소중한 시간을 갖다 버릴 뿐이다. 물론 자신의 시간을 쓰며 보는 건 자유다. 손 안의 작은 기계로 웬만한 일상생활을 누린다는 넓은 범위의 자유를 주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자유 속에 또 갇히게 되었다.


자유 속의 대가는 값이 많이 나갔다. 우리에게 시간이라는 무형의 화폐를 지불하라고 요구하며, 우리는 폰 봐 꼭 질 비용을 아주 후하게 지불한다.


술래가 되어 스마트폰의 정보를 찾느라 사랑하는 사람과의 시간을 공유하지 못하는 건 아닌지, 건강을 버리면서 하고 있는 건 아닌지 한 번씩 돌아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인생의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는지, 스마트폰을 사용하기 위해 소중한 자신의 시간을 땔감으로 쓰는 건 아닌지 두루 봐야 하지 않을까?




놀이터에 자주 보이던 아이들이 서로 눈을 마주친다. 오고 가는 따듯했던 교류가 점점 끊기고, 혼자 술래가 되어 외로움을 달래고 있다. 끝나지 않는 그 작은 화면 속으로 빨려 들어가 폰봐꼭질을 다시 시작한다.


지금 나는 어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