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 때문에 망한 은행

실리콘밸리은행(SVB)이 우리에게 남긴 교훈(채권 1)

by 이영태

채권 이야기를 하다 보면, 실리콘밸리은행(SVB)을 빼놓고는 설명이 끝나지 않는다. 이 사건은 지금 생각해도 황당하다. 위험한 투자를 해서 망한 은행이 아니기 때문이다. SVB는 고객의 돈으로 주식이나 파생상품 같은 무리한 투자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은행이 해야 할 가장 ‘교과서적인 선택’을 했다. 미국 국채를 샀다. 은행은 왜 국채를 샀을까 은행의 본질은 단순하다. 예금으로 돈을 맡기고 그 돈을 굴려 언제든 고객이 찾으면 돌려줘야 한다 그래서 은행은 안정성이 최우선이다.

SVB 역시 마찬가지였다. 기술기업과 스타트업의 예금이 몰리자, 은행은 그 돈을 그냥 쌓아두지 않고 미국 국채와 우량 채권에 투자했다. 당시 판단만 놓고 보면 틀린 선택은 아니었다. 국채는 가장 안전한 자산이고 장기적으로는 원금 상환이 확실하며 은행 입장에서는 ‘보수적 운용’의 정석이었다.

문제는 채권 그 자체가 아니라, 금리 환경이었다. 금리가 오르자, 안전한 채권이 위험해졌다 금리가 급격히 오르기 시작하자 채권의 가격은 빠르게 떨어졌다. 이건 채권의 기본 공식이다.

금리가 오르면 채권 가격은 떨어진다.

SVB가 보유한 국채는 만기까지 들고 가면 원금을 받을 수 있었다. 문제는 만기까지 버틸 수 없었다는 것이다. 뱅크런은 채권의 문제가 아니라 ‘시간’의 문제였다 금리가 오르면서 스타트업들의 자금 사정이 나빠졌고, 고객들은 예금을 인출하기 시작했다.

은행은 선택을 강요받는다. 채권을 만기까지 들고 갈 것인가 아니면 지금 팔아서 현금을 만들 것인가 하지만 채권을 지금 팔면 손실을 확정해야 한다. SVB는 결국 손해를 감수하고 채권을 팔기 시작했고, 이 사실이 알려지자 불안은 공포로 바뀌었다. 그 순간부터는 채권의 신용도도, 국채의 안전성도 의미가 없었다. 시간이 부족해진 은행은 아무리 안전한 자산을 들고 있어도 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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