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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옷 Aug 23. 2022

아무도 관심없는 보리수 사원의 보리수나무


  태국 여행에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이다. 한참을 자고 일어났는데 아직 세 시간이나 남았다. 저가 항공을 타면 5시간이 넘는 비행인데도 모니터가 없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비행기 모드를 한 탓에 유튜브 뮤직, 인스타그램도 할 수 없다. 더 자볼까 고민하며 휴대폰을 뒤적거리다 여행 중에 찍은 사진들을 슬쩍 넘겨보았다. 방콕 야경이 한눈에 보이는 59층 루프탑 바에서 찍은 사진, 내 취향이 아니었던 스티키 망고 라이스, 미슐랭 맛집에서 아이스 레몬티를 들고 찍은 셀카…아, 이건 프사감이다. 하트를 누르곤 본격적으로 하이에나마냥 사진첩을 탐닉하기 시작했다. 카톡 프사를 찾았으니 배경 사진을 찾기 위한 여정이었다. 화려한 방콕의 야경을 해볼까, 아니면 왕궁의 태국스러운 문양들을 배경으로 해볼까. 그러다 문득 여러 지지대에 위태롭게 지탱 중인 보리수나무가 내 눈을 사로잡았다. 방콕의 둘째가라면 서러운 여행 명소인 ‘왓 포'라는 사원에서 찍은 나무였다.


 ‘왓 포'는 방콕에 왔다 하면 꼭 가야 하는 관광명소다. 아유타야 양식으로 지은 방콕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사원이며, 타이 마사지의 탄생지이자 46m의 거대한 와불상이 있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입장료가 저렴하진 않지만, 이 사원과 와불상을 보러 사람들은 기꺼이 긴 옷을 걸치고, 운동화를 신고, 200밧을 낸다.


 그런데 알고 보니 ‘ ' 뜻은 ‘보리수 사원'이라고 했다.  하필 보리수 사원일까. 유명한 것으로 따지면 ‘마사지 사원'이나 ‘와불상 사원' 되어야 하지 않나. 사원에 가기  시원한 땡모반을 마시며 네이버에 ‘ ' 검색했지만, 어느 블로그에도 보리수나무를 보았다는 후기는 없었다. 궁금증을 참을  없었던 나는 구글을 켰다. 위키백과, 나무위키와 같은 신빙성이 다소 떨어지지만, 이것저것 많이 적혀있다는 인터넷 백과사전을 샅샅이 뒤졌다.


 알고 보니 사원에는 스리랑카에서 기증받은 보리수나무가 있다고 했다. 무려 이 보리수나무가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었다던 바로 그 나무의 가지라는 전설도 있다고 했다. 그런데 그게 다였다. 나무의 위치나, 사진은 인터넷 어디에도 없었다. 궁금해진 나는 ‘왓 포'에 들어가자마자 보리수나무를 찾아 헤맸다. 사원에는 크고 작은 나무가 참 많았다. 사원 안에 표지판이 참 많았지만, 보리수나무를 가리키는 화살표는 없었다. 대체 어떤 나무일까. 나는 보리수나무가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직감적으로 알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여기저기 둘러보다 지쳤을 무렵, 어떤 쪽문을 지나다 한쪽으로 기울어 여기저기 지탱받는 커다란 나무가 눈에 띄었다. 앞에는 먼지 쌓인 불상들이 조르륵 서 있었다. 곳곳에 투어리스트들이 있었지만 아무도 이 나무 앞에 서서 설명하지 않았다. 이 나무가 맞을까. 정녕 보리수나무긴 할까. 확신은 없었지만, 이 나무일 거라 믿기로 했다. 바람에 일렁이는 나뭇잎을 바라보았다.


 문득 보리수나무가 스리랑카에서 처음 넘어오던 순간을 생각했다. 성스러운 보리수나무라며 모두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을 것이다. 승려님들의 축복 아래 사원의 가장 큰 건물 뒤편에 심어지고, 그날을 기념하며 ‘보리수 사원'이라고 이름을 지었을 것이다. 그렇게 사원이 성장하고, 타이 마사지의 시초가 되고, 큰 와불상이 생겼을 것이다. 왕이 방문하게 되면서 사원의 위상이 날로 커질 동안 보리수나무는 그 자리를 지키며 점점 기울어갔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왠지 모르게 마음이 씁쓸해졌다. 보리수나무를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눈을 감고 길게 소원을 빌었다.


 결국 보리수나무 사진을 배경 화면으로 하기로 했다. 여러 화려한 사진들이 많았지만, 유난히 보리수나무에 애정이 갔다.  배경 사진을 보고 아빠도 전화가 왔다. 식물에 관심이 많은 아빠는 이렇게  보리수나무를 어디서 봤냐고 했다. 보리수나무가 맞는다는 반가움과 물어봐  아빠에게 고마움이 깃들었다. 반가운 마음에 아무에게도 관심이 없었던 보리수 사원의 보리수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조잘댔다.


 전화를 끊고 나니 그 순간이 다시 떠올랐다. 후덥지근한 바람에 흩날리던 나뭇잎 소리가 들렸다. 아무래도 그날 보리수나무와 나는 눈이 마주친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나를 알아봐 주어 고맙다고, 편히 쉬다 가라고 미소 짓던 나무가 떠오른다. 아무래도 한동안 보리수나무를 품고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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