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B담(談) ; 열두 달의 에피소드
공공의 적에 대항하기 위해 사람들이 똘똘 뭉쳤다. 적의 정체는 같은 팀에 있던 부장이었다. 팀장 다음으로 높았다. 스스로를 예민한 성격이라 정의했으나, 그건 신경증이었다. 통제하지 못할 감정을 짜증과 신경질로 해소하는. 하지만 사람을 가려가며 표출했기에 분노조절장애가 아니었음은 확실하다.
아무튼 그 하나 때문에 여럿이 숨죽였다. 이유 없이 꼬투리를 잡거나, 냉기를 뿌리거나, 다 지난 일을 들춰 화를 내는 일이 빈번했기 때문에, 일종의 ‘부장 기분 파악연대’가 생겼다. 매일, 부장 없는 단톡방에서 그의 심기와 관련한 대화들이 오갔다.
그 시절 내 소원은 부장이 사라지는 거였다. 마주치지 않는 곳으로 발령이 나도 좋고, 다른 회사로 이직을 해도 좋았다. 내키지 않았지만 얼굴만 보이지 않는다면, 그가 로또를 맞아 퇴직해도 신날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정말 사라졌다. 행실 때문에 반기는 곳이 없다고 했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발령이 났다. 아주 편하고 좋다는 곳으로. 신기하게도 회사에서는 나쁜 사람이 덕을 볼 때가 많다. ‘될놈될’이 아니라 ‘나쁜놈될’이다. 그래도 눈에 띄지만 않는다면 상관없었다. 이제 더 이상 조마조마한 출근길은 없을 테니까.
그런데, 며칠 후부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부장기분 파악연대를 이끌던 과장 하나가 변했다. 우리 편이었는데 남의 편이 됐다. 부장이 하던 행동을 세습한 것처럼 그대로 했다. 꼬투리를 잡고, 냉기를 뿌리고, 작은 일을 크게 만들었다. 어떤 면에서는 부장보다 더 심했다. 물론, 일도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팀장에게는 입 안에 혀처럼 굴었다. 분명 2인자로 군림하려는 행동이었다. 다시 지옥이 시작됐다.
어느 책에선가 ‘권력은 공백을 허락하지 않는다’라는 문장을 읽었다. 권력의 부재는 빈틈없이 또 다른 권력으로 채워진다는 뜻이다. 위정자들의 레토릭 정도로 생각했는데, 현실에서의 이 말은 극히 잔인하게 와닿았다. 권력을 갖지 못한 사람에게는 잠깐의 여유도 허락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고 보면 권력의 단맛이란 주체할 수 없이 매혹적인가 보다. 잠시도 가만두지 않을 만큼.
일상 단어에서 건져 올린 희로애락, 그리고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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