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6시, 한적한 도로에 삼각대가 세워져 있다. 30m쯤 가니 비상등이 켜진 자동차 한 대가 보인다. 무엇인지 모를 액체가 바닥에 흥건하다. 다시 30m쯤을 가니 여행객으로 보이는 중년 사내 여럿이 갓길에 앉아 있다. 차가 고장 난 모양이다.
도움이 필요한가 싶어 차를 세우고 물었다. 곧 보험회사가 도착할 거라면 괜찮다고 말한다. 친절히 답했지만 표정이 하나 같이 짜증스럽다.
달궈진 아스팔트 위에서 꽤 오래 기다렸을 것이다. 자동차 수리비도 꽤 나올 것이다. 분명히 여행 일정도 틀어졌겠지. 낯선 곳에서 원치 않게 발이 묶였으니, 화가 날 만도 하다.
다음 날 점심을 먹으러 간 식당에서 우연히 그들을 만났다. 나답지 않게 아는 체하며 먼저 말을 걸었다.
“차는 수리하셨어요?”
한 사람이 나를 알아보고 익살스러운 농담을 던진다.
“내일 찾기로 했어요. 똥차 끌고 온 놈 덕분에 외박 하루 더하는 거지 뭐. 하하하.”
대화를 듣고 있던 차 주인이 한마디 보탠다.
“이게 똥차면, 차에 타고 너희들은 다 똥이네? 하하하”
즐거워 보인다. 어제 일은 어제에 두고 온 모양이다.
‘기분 나쁜 일은 점으로 남겨둬.’
나이만큼 어른스러운 선배가 내게 해준 말이다.
살아가는 시간에 비하면 불쾌함을 겪은 순간은 아주 작은 점에 불과하다. 삶의 끝에서 돌이켜보면 하찮은 티끌이거나 기억나지도 않을 흠집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그걸 잊지 않으면 사는 날마다 점이 찍힌다. 그 점이 이어져 선이 된다. 품고 사는 날만큼 길고 선명한 기억이 된다.
그런 일이 일어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그로 인한 감정을 품고 사는 건 내가 결정할 수 있는 문제다. 그러니 점으로 남겨두라는 뜻이었다. 하찮고 사소하게.
“ㅇㅇ식당 가보세요. 동네 사람들이 많이 가요.”
맛집을 추천해 달라기에 한 곳을 소개했다. 메뉴가 마음에 들었는지 순식간에 왁자지껄 해진다.
한동안 멈춰서 그들이 가는 걸 지켜보았다. 뒷모습에서도 어제의 불쾌함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벌써 티끌이 된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