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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골쥐 Apr 02. 2024

[국밥로드] 양재동 청와옥

서울 서초구 강남대로8길 3 1층, 2층

유명한 집은 다 이유가 있구나


청와옥에 대해 알게 된 것은 <놀면 뭐 하니?>라는 프로그램이었다. 유재석 씨가 혼자 순대국밥을 먹는 장면이 나왔는데, 편백나무에 찐 모둠순대가 눈에 띄었다. 워낙 맛있게 먹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머리 고기와 숙주, 순대가 어우러진 구색에 반해 메모를 해두었다.

특이한 점은 홀을 가득 채우지 않는다. 손님을 급하게 받지 않는 것 같다. 곳곳에 빈 테이블이 보이는데도 대기고객을 입장시키지 않았다. 준비가 다 될 때까지 기다린다. 회전율이 떨어져 조금 덜 팔아도 밥을 먹고 있는 식객에게 분주함을 느끼게 하지 않으려는 배려가 아닐까.


국밥의 첫인상은 약간 거부감.

매운 양념장이 기본으로 섞여 나온 순댓국, 숟가락으로 몇 차례 휘저으니 국물색이 금세 빨갛게 변했다. 거기다 고춧가루 양념으로 버무린 무생채와 섞박지. 식탁이 온통 붉은색으로 덮였다. 가끔 한 가지 양념으로 모든 반찬을 만드는 식당이 있다. 어떤 걸 먹어도 같은 맛이 나서 성의 없게 느껴진다. 처음에는 청와옥이 그런 식당인 줄 알았다.

국물 맛은 얼큰하다. 혀에 스며들어 미각을 자극하는 맛이다. 이것은 해장을 위해 만들어진 순댓국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거기다 지방과 고기가 적절하게 배합된 내용물은 너무 느끼하지도, 너무 부담스럽지도 않다. 어떤 목적으로 이런 국밥을 내기 시작한 것인지 모르겠으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큰 기업들 사이에 있는 위치로 볼 때 엄청난 타겟팅이다. 술을 먹기에도, 술을 먹은 다음에도 생각난다.

우려스러웠던 빨간 반찬들, 무생채와 섞박지는 보기와 다르게 깔끔한 맛이다. 양념이 세지 않다. 무생채는 아삭거리는 식감이 살아있는 정도, 하지만 매운맛은 다 빠진 적당한 맛. 섞박지도 간이 세지 않다. 색감이 주는 선입견 때문에 너무 저평가해버렸다. 개인적인 취향으로 가장 좋은 것은 부추가 무제한이라는 점. 원하는 만큼 가져다 먹을 수 있다. 양파와 마늘은 아쉽다. 대량으로 미리 준비해 둬서인지 많이 말랐다.


양이 많은 사람이라면 어린이국수를 추가로 주문하면 좋을 것 같다. 넉넉한 양, 맑은 국물, 그리고 무슨 비법일지 모를 탱글한 식감의 면이 포만감을 더해준다. 또 하나의 추천 메뉴는 불오징어. 9,900원 할인 중이다. 매콤한 불맛이 더해진 상업적인 맛. 입에 착착 감긴다.

'자가찬장'

이 집에서 셀프코너를 부르는 이름이다. 샹들리에, 목재 식탁과 의자, 놋그릇으로 구성된 언발란스 하지만 조화로운 인테리어를 아우르는 장소다. 전통 한식집 같은 간판으로 표기했는데, 가게 이름과 매치가 좋다. 그리고 왠지 '직접 가져다 먹으라'는 의미가 느껴지지 않는다.

밥을 다 먹고 나오며 믹스커피를 한 잔 뽑았다. 국밥이 맛있는 집은 대체로 커피가 맛있다.

뜨거운 커피를 홀짝거리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유명한 집은 다 이유가 있구나.'



글쓴이의 신간 <단어의 위로>가 출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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