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와 인터넷에서 MZ세대와의 에피소드를 본 적이 많았지만 실제로 경험한 건 처음이다. SNL이라는 프로그램에서 기성세대와 요즘세대의 갈등을 그리는 코너가 그저 웃음유발을 위한 희화화인 줄만 알았다. 눈앞에서 일어날 줄이야. 셀 수 없는 놀라움이 있었지만 다른 사람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던 것만 뽑았다.
1. 이어폰
첫 출근 후 일주일이 되지 않는 시점부터 이어폰을 끼고 살았다. 혹여 회사생활 첫머리부터 주눅이 들까 봐 몇몇 선배가 돌려서 말해주었는데 소용이 없었다. 돌아오는 대답은 늘 같았다. "이걸 끼고 일하는 게 집중력이 더 높아집니다". SNL에서 본 그대로였다.
일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굳이 말릴 이유가 없었지만, 그 아이에게는 아직 집중력이 요구될만한 일이 맡겨지지 않았다. 전반적인 흐름 파악을 위해 자료를 살펴보는 정도 혹은 가까운 선배에게 가벼운 행정업무를 설명 듣는 것 정도의 수준이었다. 특히나 불편한 점은 전화를 받을 때 발생했다. 간혹 자리를 비운 동료의 전화를 대신 받아주기도 해야 하는데, 일절 도움이 되지 않았다. 때때로 자기 자리에 전화벨이 울릴 때도 받지 못했고 팀장의 호출이 있을 때는 직접 가서 모셔와야 했다. 게다가 그의 휴대폰에서 게임방송이 나오고 있었다는 제보를 받은 후로는 이어폰 용도에 대한 의심을 떨치지 못했다.
2. 회식
억지로 회식에 참석하는 경우 따윈 없었다. 회식이 있다고 하면 그 아이는 늘 메뉴를 먼저 물었다. 참치나 소고기 같이 고가의 메뉴가 예약된 날에는 간혹 참석해 저녁을 먹기도 했지만, 단골메뉴가 주로 삼겹살, 부대찌개, 치킨 같은 것이었으므로 거의 오지 않았다. 부러웠다.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부러워했다. '회식도 업무의 연장이다'라는 궤변에 끌려다니던 나를 반성하기도 했다.
이것이 회사에 소문이 난 것은 회식 이튿날의 행동 때문이었다. 회식 다음날이면 그 아이는 어김없이 법인카드를 받아가 식사를 했다. 회식에 참석하지 않았으니 자기 몫의 회식비는 따로 쓰겠다는 이유였다. 부러웠다. 십수 년 회사를 다니는 동안 나는 왜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3. 출/퇴근시간
일주일에 한 번, 화요일 아침 8시 50분에 팀 미팅을 했다. 9시가 되면 지난주부터 밀려있던 업무전화가 빗발치므로 모두가 한 자리에 모이기가 어려워 팀장이 부탁한 것이었다. 한 주간의 업무를 위해 꼭 필요한 자리였고, 어차피 8시 50분에는 회사에 도착한 시간이니 크게 불만을 갖진 않았다. 또 반드시 전달해야 하는 내용이 없을 땐 미팅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신입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9시부터가 업무시간이니 그전에는 회의에 참석하지 못하겠다고 했다. 어떻게 맞춰오는지 8시 55분 이후에 출근하거나 일찍 도착한 날에는 사무실에서 사라졌다가 9시 정각에 다시 나타났다. 하지만 퇴근시간에는 너그러워서 매일 오후 5시 50분이 되면 컴퓨터를 끄고 짐을 쌌다. 퇴근하려면 미리 준비를 해야 된다나. 말하는 것도 입이 쓰거워서 딱히 일이 없는 날에는 이 행동을 문제 삼지 않았다. 대신, 미팅과 관련해서는 팀장이 따로 면담을 했다.
"ㅇㅇ씨, 혹시 화요일 아침에 특별한 일이 없다면 미팅에 참석하는 게 어때? 서면으로 전달하는 방법도 있지만 구두로 설명하는 게 더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내용이 많아서 말이야. 월요일 오후에 간부회의를 하고 나면 중요한 내용이 나올 때가 있거든. 그래서 그런 일이 있으면 화요일 아침에 10분 정도 미팅을 하고 내용을 공유하지. 팀 업무에 연관된 일이니까."
면담을 마친 팀장이 흐뭇한 미소를 띠며 회의실을 나왔다. 꽤나 어른스럽게 타일렀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하지만 그 미소는 얼마 지나지 않아 분노로 바뀌었다. 신입이 사직서를 냈고, 사유에 '직장 내 괴롭힘(팀장)'이라는 문구가 쓰여있었다.
팀장의 전화벨이 울렸다. 감사실이었다.
삽시간에 소문이 퍼졌다. 대체로 신입에 대한 좋지 않은 이야기였다. 놀라운 것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그 아이가 다른 부서에도 여러 가지 인상 깊은 이벤트를 남겼다는 거였다. 대체로 이기적이고 무례하게 느껴질 만한 일이었다. 더불어 요즘 세대에 관한 얘기가 나왔다. MZ 세대, 특히나 밀레니얼 세대 끝의 90년대 중후반 신입들이 싸잡아 욕을 먹었다. 그때, 잠자코 듣기만 하던 한 선배가 말했다.
"그건 세대 문제가 아니야. 물론 자라온 시대의 환경에 따라 특별한 성향을 띠기도 하겠지. 그런데 그건 걔들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아. 여기 80년대 생들은 MZ 아니야? 80년대 초중반 태생이 밀레니얼의 시작이 자나. MZ의 문제라면 우리도 다 문제겠지.
내 생각에 문제는 '자기중심적 권리주장'을 당연시 하는 사람에게 있어. 권리를 주장하는 건 좋지만 극단적으로 개인주의적인, 그래서 이기적으로 느껴지는. 또 그 과정에서 다른 사람의 기분이나 주변에 미칠 영향 같은 건 고려하지 않으니까 무례하게 느껴지는 거지. 배려하지 않고 공감하지 않으면 나이와 상관없이 다 똑같은 문제를 가지고 사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