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동안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도원경 '무릉'을 운영하며 (1)
2023년 11월 19일 연희동 언덕에 웰니스 스튜디오 '무릉'을 오픈했다.
꽉 채운 1년을 운영하며 내가 배운 것들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무릉의 첫 시작은 콤부차였다. 2022년 퇴사를 하고 약 1년 동안 나는 방황했다. 마흔이 되기 전 내 비즈니스를 시작해야 한다. 는 목표는 있었지만 정확히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였다. 그래서 퇴사 후 <인사이트 트립>을 떠났다. '베니스 비엔날레', '카셀 도큐멘타', '홍콩 아트 바젤' 등 대형 아트 페어 그리고 코펜하겐, 암스테르담, 런던, 파리, 홍콩, 발리 등 수많은 도시들을 여행했다. 여행을 통해 정답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얻은 답이 콤부차(발효)였다. 한참 내추럴 와인에 빠져있었던 나는 와인을 즐길 수 있는 공간들을 찾아다녔고, 자연스럽게 콤부차(발효)라는 아이템이 눈에 들어왔다. 곧장 콤부차를 배우고 레시피 개발을 위해 연구를 이어갔다. 때마침 서울시에서 지원하는 골목창업지원금에 지원했고 선정되었다. 아니 사실되어버렸다. 그렇게 더위가 한창이던 9월 연희동에 공간을 얻었다.
지원사업 첫 기획안은 무릉이 아니었다. 이름은 <아포텍 서울 Apoteck Seoul> 로컬리티를 기반으로 콤부차를 개발하는 서울 약방을 콘셉트로 하였다. 건강한 삶을 위한 웰니스 브랜드를 론칭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위치도 연희동이 아닌 후암동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러나 연희동에 공간을 얻고 나니 이름과 공간이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웰니스 브랜드를 만드는 데 있어 쿨하기보다는 따뜻하고 입에 붙는, 정서적으로 교감할 수 있는 네이밍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더욱이 연희동이라는 로컬 특징이 그랬다.
공간을 준비하며 콤부차 비즈니스를 하고 계신 분들과 커피챗을 나누었다. 그리고 알았다. 현재 공간에서는 콤부차 제품 개발이 쉽지 않다는 것을 말이다. 콤부차 제조/유통을 위해서는 판매 공간 외 멸균 처리가 된 제조시설이 별도로 필요했다. 인테리어를 다 철거하고 새롭게 꾸민다면 가능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미 나는 보증금과 약간의 권리금에 준비해 둔 초기 예산을 다 써버린걸?
뿐만 아니라 이 공간의 가장 큰 매력은 곡선의 길고 큰 테이블이었다. 건물 외벽의 꼭짓점에서 꼭짓점으로 연결된 테이블이 주는 무게감과 색감 때문에 첫눈에 나는 이곳에 매료되고 말았다. 9월 이사를 하고 들어와 집기들을 하나둘 채우며 테이블을 철거하지 않은 결정은 현명했다. 창고가 없는 공간에서 이 테이블은 창고의 역할 또한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웰니스 비즈니스를 위해 공간을 알아보고자 하는 분들이 있다면 꼭 창고나 수납이 충분한지를 살펴보실 것을 권하고 싶다. 표면적으로 몸과 정신을 위한 서비스를 하기 때문에 시선에 보이지 않는 곳에 물건들이 적재될 필요가 있다.
10월 2차 사업계획안을 발표에 앞서 비즈니스를 대대적으로 수정해야만 했다. 콤부차를 연구하며 자연스럽게 다양한 차(Tea)를 마셨고, 아침 요가&차명상 리츄얼을 하고 있었고, 외주 브랜드 마케팅을 도와주는 공간 역시 차를 중심으로 브랜드를 전개하고 있었다. 고3 겨울방학 때 엄마 손에 이끌려 한국전통다례연구원 사범 과정을 들었던 터라 자연스럽게 티 세리머니(차 명상) 아이덴티티를 가져갈 수 있었다.
여기에 나만의 차별성이 필요했다. 티 오마카세 열풍과 함께 새로운 차 공간이 많이 만들어지던 시기였다. 여기에서 리스크는 '차 tea'였다. 직접 차를 생산하지 않는다면 차의 맛은 대단하게 특별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의 차별성은 티 푸드와 인테리어에서 구별되는 정도였다. 그러나 나는 애당초 찻집을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다. 아이템(티 세리머니)을 매개로 건강한 삶에 대한 비전 즉, 웰니스 라이프스타일을 전하는 콘텐츠 비즈니스를 하고 싶었다.
내 삶의 궤적을 되돌아보았다. (초기) 브랜드는 만드는 사람을 담을 수밖에 없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머리로 트렌드를 이해하고 전략을 짜도, 결정을 하는 사람이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개인의 서사는 브랜드의 차별성이 된다. 내가 쌓아 올린 경험이 브랜드 신뢰도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도출된 브랜드 정의가 '한국 정서에 기반한 웰니스 스튜디오(WHY)'이다. 초등학교 2학년 (만 7세)에 가야금이라는 악기를 시작했다. 누군가의 권유도 아닌 내가 선택한 길이다. 그렇게 20년 동안 가야금 연주자로 살았다. 22년 퇴사를 했을 때까지만 해도 나는 악기를 다시 할 마음이 없었다. 그러나 한국음악을 전공했다는 사실은 언제나 꼬리표처럼 나를 따라다녔다. 그렇다면 이 꼬리표를 잘 활용해 보자가 첫 번째 접근이었다. 음악교육대학원 졸업 논문에서 초등교과에서 국악을 배우는 당위성에 대해 조사한 적이 있다. 한국 음악에는 우리 민족의 정서와 언어가 담겨있어서, 이 관점이라면 우리에게는 한국 정서에 기반한 쉼이 필요하다는 확신이 들었다.
사운드 배스라는 키워드를 찾은 것도 이 때문이다. 티 푸드가 아니라면 어떤 경험(차별성)을 오는 사람들에게 줄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한국적인 정서에 맞는 쉼으로 정서적 해방감을 주자(HOW)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더욱이 영국 유학 중에 나의 연주를 들을 친구들이, 시현이 하는 음악 = 앰비언트 뮤직 or 명상 음악 같다는 의견을 전해준 것도 한몫했다.
"웰니스 라이프스타일을 전하는 콘텐츠 비즈니스를 하고 싶다." 웰니스 스튜디오라는 단어를 선택한 이유이다. 티 세리머니(차 명상)를 하지만 찻집은 아니었다. 사운드 배스를 차별성으로 나타냈지만 요가/명상을 하는 공간도 아니었다. 그래서 내 브랜드 산업의 정의를 나 스스로 내려야만 했다. 건강한 삶에 대한 실천을 실험하는 공간이니까 '웰니스 스튜디오'라고 하자! 이 단어의 영감은 Sporty&Rich에서 받았다. 90년대 이미지 위에 쌓아 올린 패션 브랜드이지만 건강한 삶과 웰니스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는 방법이 좋았다. 내가 꾸려가는 공간의 무드도 딱 이 정도였으면 했다.
웰니스는 건강한 삶을 위한 서비스이다. 웰니스 산업의 분야는 넓고 다양하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웰니스를 6가지 분야도 나누었다. (1) 건강 Health (2) 피트니스 Fitness (3) 영양(Nutrition) (4) 외모 Appeearance (5) 수면 Sleep (6) 마음 챙김 Mindfulness 웰니스 스튜디오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내가 모든 것의 전문가가 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무릉이 가져갈 서비스, 앞으로 연구해야 할 분야를 Sound, Tea, Meditation으로 정립했다. 3가지 What을 결정하고 운영하는 데는 또 많은 좌충우돌이 있었다. 이건 추후에 운영과 관련하여 이야기를 풀어보겠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따라온 콘셉트가 무릉도원이었다. 한국적인 네이밍을 찾고 있던 중 이곳에 와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쉬어가면 좋겠다. 내려놓음이 그저 소멸되어 사라지는 것만이 아닌, 에너지를 채워가는 곳이었으면 했다. 그러자 번뜩 떠오르는 단어가 무릉도원이었다. 무릉도원은 너무 도가적인 느낌이니 무릉/도원 중에 한 단어를 쓰는 것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무릉이라는 단어의 어감은 좋은데 임팩트는 덜하다는 생각에 아는 브랜딩 전문가 이사님과 산책을 하며 툭하고 질문했다.
이사님 앞으로 제 공간은 무릉도원 같은 곳이면 좋겠는데요. 무릉 이런 이름은 어때요? 그러자 이사님은 1초의 머뭇거림도 없이 좋다는 의견을 주셨다. 또한 많은 능력과 효율성, 자기 증명을 해야 하는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아무런 능력도 필요하지 않은 곳이라는 의미도 함께 전달되면 좋겠다고 했다. 이 이름은 찻자리 예절과도 맞닿아 있었다. 내가 티 세리머니를 애정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그 자리에서 만큼은 장군도 무사도, 스님도 일반인도 모두가 다 같은 인간으로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동시대라는 단어를 붙인 이유는 당시 예술 여행을 하며 '동 시대성'에 대해 많이 공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쉼조차 사치가 되어버린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무릉에서 만큼은 숨통 좀 틔어갔으면 했다. 그래서 일상에서 힘들고 지쳤을 때, 감정적으로 기댈 곳이 없을 때 자연스럽게 무릉이 떠올랐으면 했다. 그렇게 Stand by your own rhythm 자기 장단에 맞는 삶에 대한 슬로건까지 무탈하게 나왔다.
업으로 브랜드를 만들거나 프로젝트를 기획하는 일을 했던 사람이기 때문에, 필요에 의해서 마치 체크리스트를 달성해 나가듯이 브랜드 비전/미션, WHY/HOW/WHAT, 컵셉/무드 등을 정립했다. 그러나 지금에서 생각해 보면 이 문장들이 있었기에 방황기에 크게 궤도를 벗어나지 않고 1년이라는 시간을 걸어왔다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