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이빙
가끔 어릴 적 다녔던 학교와 그 주변을 걸어본다.
가득한 것들 속을 걷다 보면 내게서만 사라진 것들 투성이다.
그땐 참 여백 많은 동네였는데 여기도 나름 해운대라고 참 가득해졌다.
10년을 다닌 학교 후문의 피아노 학원.
내가 좋아하던 정문의 분식집.
미니카를 굴리던 문방구의 트랙.
그나마 좋아했던 선생님.
다 어느새 사라져 버린 것들.
학교 주변의 공기는 늘 같은 냄새로 남아있는데 나는 그게 이상하게 서럽다.
교실과 운동장의 소음은 멀리서 들으면 그제나 지금이나 똑같지만
가까이서 바라보면 내 이야기의 등장인물들이 이제는 모두 사라지고 없다.
나는 어느 순간 너무 많은 곳에서 이방인이 되어가고 있다.
다시 학교로 돌아가 내가 다녔던 교실로 들어가면
꿈처럼 다시 그 친구들이 있고 내 자리가 있고.. 이런 상상을 해본다.
내 필름이 너무 빨리 돌아간다.
뒤를 돌아볼 때조차 내 등을 앞으로 밀어대는 걸 보면 시간은 참 정 없다.
사랑했던 공간들 아껴주던 사람들.
그때는 그저 그랬고 지금은 아주 그리운 시간들.
모든 것들이 다 사라져 가고 있다. 다들 나만 남겨두고.
다들 나만 남겨두고 다 사라져 버렸다.
그런데 나는 왜 나도 사라져 간다는 걸 모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