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파편

방전

삶의 파편들

by 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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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있어서 나는 배터리가 방전된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나의 운이 좋아서 혹은 어떻게 보면 운이 나쁘게도

먼저 손을 내밀어주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지만

그것이 일련의 과정을 겪은 뒤 결국은 향처럼 날아가버릴 것을 알기 때문에

선뜻 열심히 또 연애하고 그러고 싶지 않다.

사람의 마음은 손목 위의 향수처럼 어느 순간 휙 날아가버리는데

나만 혼자 코를 박고 킁킁대고 싶지 않아.


그러니까 이게 어떤 기분이냐면

범인이 누군지 아는 상태에서 보는 추리 영화 같은 거라고 하면 딱 맞겠다.

연애에 있어서 범인은 높은 확률로 이별이고 그 이외의 범인을 찾는 것은 참 힘들다.

그리고 그 범인에게는 늘 나름의 사정이 있다. 마치 코난의 사건 속 범인들처럼.

시간이 지나고 생각해보면 그래 그럴 만했지 라고 수긍하게 되는 범행 동기들.


그리고 단순히 이런 감정은 연애나 사랑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성공이나 쾌를 가져다 주는 일들에도 적용되어

나의 삶을 무기력하게 만든다.

내가 만약 어떠한 성공이나 쾌를 가져다주는 일을 성취하게 되었을 때

성공의 성공을 거듭하면 할수록 다음 실수에 대한 두려움의 무게가 가중되어갈 때

그 순간 여러 가지 삶에 대한 배터리들도 방전되어버리는 것 같다.

왜 많은걸 이룬 사람, 많은 걸 가진 사람들이 제 머리에 총을 쏘고 일찍 죽어버리는지

어느 정도 이해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주 가끔씩 내 몸에 온오프 버튼이 있어서

그냥 한번 누르면 기계 꺼지듯이 픽 꺼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아무런 고통이 없이.

하지만 결코 그럴 수 없는 가장 큰 이유가 있다면 그럴 경우

나의 부모가 내 몸체를 부둥켜안고 밤새 그 버튼을 똑딱거릴 것을 알기에.


쓰고 보니 엄청 비관주의자 같고 이른 시일 내에 무슨 일을 저지를 사람 같지만

나의 삶을 향한 욕구는 17~22세 남성의 성욕 + 여대생의 맛집 식탐 급이기 때문에 아무 문제가 없다.

삶의 대한 욕망이 있기에 무엇인가의 방전을 고민하는 것 아닐까.

정말 삶에 대한 욕망이 없다면 이런 고민도 하지 않겠지.


그리고 최근에는 좋은 일들이 많았다.

처음으로 면접도 보러 가보고

라디오에 초대도 받고

덕분에 작가님 소리도 듣고

저 두 가지에 대해서 느낀 점도 엄청 많다.

서울에서 느낀 감정들에 대해서도 정리해서 한번 쭉 쓰고 싶다.

끝을 내는 건 참 어렵다.

이 글 하나 끝내기도 참 어려운데

사람들은 그 어려운걸 참 잘 들 하면서 산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 중에 한 명이 나고 그 사람들 중에 한 명이지 못 한 사람도 나다.



*올해 5월쯤에 써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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