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파편

특권층의 서술 혹은 목련

삶의 파편들

by 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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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옆집의 옆집의 마당에는

내가 초등학생이던 시절부터

목련나무가 한그루 심어져 있었다.


어렸을 적 바라 본 목련나무는 착한 소녀 같았다.

겨울만 살아가야 하는 눈송이들을 위해

겨우내 내린 눈, 제품에 꼬옥 안아 두었다가

봄이 되면 새하얗게 꽃으로 눈송이들을 내어놓는,

이렇게 좋은 것도 있다고. 보여주고 싶어 하는.

그런 착하고 순수한 소녀.


이십 대의 목련나무는 빨라지는 시곗바늘 같았다

올해도 봄이온다는걸 알려주는 시계 마냥 목련은 째깍째깍 피어났다.

어릴 적 느리게 가던 목련시곗바늘은

이십대 후반이 될수록 재깍대는 소리가 빨라져 갔다.

목련나무 꽃망울이 시한폭탄 마냥 나의 이십대속에서 하얗게 터져나갔다.

폭죽처럼 터지다 폭탄처럼 터져나간 시간들.

나는 무엇에 그렇게 쫓겼을까.

꽃망울이 시한폭탄처럼 보일 정도로.


오늘 바라본 목련은 조금은 노르스름해 보이고 아련하게 보인다.

손때가 살짝 묻은 책의 페이지처럼 보인다.

해마다 피어나는 것이 조금은 지쳐 보인다.

내 얼굴이 보인다.


골목 어귀 목련꽃 한 송이,

소녀처럼 자라나서 시계처럼 피어나고 이젠 거울처럼 보이는구나.


나는 한 사물을 긴 시간 오래 관찰할 수 있었다.

이것은 오랫동안 한 곳에 산 사람의 특권에 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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