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파편

마리, 앙뜨 와 네뜨

삶의 파편들

by 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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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카스패니얼을 입양해서 키운 적이 있다. 10년 전쯤에

크림색의 기품 있는 부잣집 막내딸처럼 생긴 여자아기

이름은 앙뜨로 지어줬다.

앙뜨 엄마 이름이 마리라는 것에 착안해서

나중에 앙뜨가 자식을 낳으면 네뜨로 이름을 지어

마리,앙뜨 와 네뜨 집안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마리 앙뜨와네뜨 가문 건설에 대한 야망을 품고 열심히 애정을 주고 키우고 있던 어느 날

갑자기 앙뜨가 설사를 하기 시작했다.

병원에 데려가 보니 파보장염이라는 병에 걸렸다고 했다.

수의사는 그 병이 나이가 어릴수록 치명적인 병이라고 설명하며

앙뜨는 나이가 너무 어려서 버티기 힘들 거 같다는 말을 했다.

그 말을 듣고 집에 온 뒤 미친 듯이 인터넷을 검색했다.

병원에서는 힘들다고 했지만 누군가는 알고 있을 것 같아서,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을

내가 모르는 것들, 검색창에 치면 뭐든 다 답을 알려줬으니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슬픔 속에 검색어를 넣어 뒤적뒤적

검색해보니 북어 국물을 계속 먹여서 살려냈다는 사람과

밤새 안아줘서 좋아졌다는 사람의 글을 찾아냈고

즉시 엄마랑 북어를 사 와서

국물을 내고 억지로 조금씩 먹였다.

그리고 잠들어있을 때는 계속 꼭 안고 좋아지라고 빌어줬다.

사실 엄마와 아빠가 더 지극정성으로 그렇게 밤새 돌봐주신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앙뜨는 며칠간 잘 먹지도 않고 누운 자리에서 잘 움직이지도 않고

그렇게 인형처럼 가만히 있었다.

쌕쌕거리는 숨소리의 크기에 따라 안도감과 슬픔의 크기가 교차하는 시간들,

그 시간이 끝나는 순간이 어느 날 왔다.

병원에서 데려온지 3~4일 차 되던 날

앙뜨를 눕혀두고 비빔면을 끓여와서 먹으려고 하는데

앙뜨가 벌떡 일어나서는 자기도 먹고 싶다고 낑낑

너무너무 기뻐서 북어 국물을 밥그릇에 부어주니 챱챱챱 거리면서 잘도 먹었다.

오른손으로 비비고 왼손으로 비벼온 면들은 불어 터졌지만

내 행복감과 안도감도 퉁퉁 불어 터지는 기분이었다.

그 날 이후로 앙뜨는 금세 건강을 회복했고 보통 코카보다는 약간 작았지만

착하게 잘 성장했다. 진짜 착하다는 말이 딱 어울리는 성격

때를 쓰지도 않고, 나쁜 짓이라고 알려주면 절대 하지 않고,

약간의 소심함은 있었지만,

실수로 우리가 발을 밟아도 우리가 놀랄까봐 다른 강아지처럼 깨갱 대지 않고 발만 살짝 절뚝거리는,

사람으로 치면 배려가 아주 깊은 사람

자기보다 타인을 아낄 줄 아는 그런 타입의 성격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글을써나가다보니


앙뜨가 건강해진 이후로 온집안이 행복해졌다.

집안에 꽃을 꽂아두면 며칠간 집안이 화사하고 향기롭다.

새로운 물건을 사들이면 몇 주간 신나고 유용하게 쓴다.

반려동물이 생기면 가족이 지속적으로 행복해진다.

가정을 가장 밝게 만들어주는 천만 와트짜리 전구 같은 거라고 해야 하나

어쨌든 강아지는 마음을 환하게 만들어주는 능력이 있다.

정신과 의사보다 더,


따뜻한 강아지를 품에 꼭 안고 커다란 귀에 주절주절 이야기를 하다 보면

마음이 따뜻해지고 근심 걱정이 싹 사라진다. 나만 그런지 몰라도.

그래서 나는 앙뜨랑 이야기를 엄청나게 많이 했다. 일방적이었을 수도 있지만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오면 품에안고 그날 이야기를 주절주절하고 장난 좀 치고

그러고 있으면 앙뜨는 내가 밖에서 묻혀온 냄새를 맡으며 내 하루를 코끝으로 이해해보는 삶을 매일매일 반복.


앙뜨의 하루는 주로 낮에 아빠와 동네 초등학교를 산책하고

밤에는 일 마치고 오는 엄마를 마중하러

나와 같이 밖으로 나가는 하루의 반복이었다.


엄마가 올 시간이 되면 낑낑거리며 문을 긁던 모습이 생각나네.

강아지들의 시계는 어디에 달려있는 걸까.

어떻게 그렇게 정확하게 아는 건지 궁금하다 갑자기.


그리고 한 달에 한 두 번 아빠와 낚시를 가기도 했다.

아빠는 앙뜨가 아빠랑 낚시를 가면 아빠 주변에 다가오는 물뱀이나 물쥐들을 잡아버리거나

쫓아낸다고 기특해하면서 자기 자식마냥 아끼고 사랑해줬다.

낚시회 모임이 있을 때마다 데리고 나가서 자랑 또 자랑

나는 아빠가 그렇게 자랑하길 좋아하는 사람인지 몰랐다.

어느 날엔 앙뜨 사진을 찍어주고 싶다고 디카도 사 왔다.

아직도 그 오래된 디카의 메모리카드에는 앙뜨사진이 남아있다.


앙뜨가 세 살이 되던해쯤 앙뜨가 자기 집에서 하루 종일 안 나온 날이 있었다.

다음날 보니 미세하게 몸을 떨길래 추운가? 감기인가? 싶어서

병원에 데리고 갔는데 뇌수막염이라고 말했다.

아마 저 미세한 경련이 점점 전신으로 퍼지며 심해질 거고

나중에는 전신이 마비가 되고 사망에 이를 거라고..

덤덤하게 듣고 집으로 돌아와서 예전처럼

열심히 초록창에 한글을 두들기고

파란창에 영어를 두들기며 수많은 글들을 읽어 나갔다.

그다지 희망적인 글들은 없었다.

이전에 파보장염일 때도 뭐 비슷했으니까.

그렇게 또 매일 밤 앙뜨를 안아주고 북어 국물을 먹여줬다.

그러나 3년 전과 달리 경련은 점점 심해지고

전신을 떨기 시작했고

어느 날은 앞을 못 보는 것 같고

어느 날은 다리를 마음대로 못 움직여 걷다 넘어지길 반복했다.

의사는 안락사를 권했다. 강아지만 계속해서 힘들어질 거라고

그러나 우리 가족은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들어오면 다리를 절면서 이벽 저벽 쿵쿵 박으면서도

꼬리만 멀쩡하게 빠르게 흔들며 나에게 달려오는 앙뜨를 보면

마음이 파괴되고 눈과 마음에 쌓아둔 둑이 파괴되는 기분이 들었다.

살면서 본 가장 슬픈 강아지의 기쁜 꼬리였다.

제 몸이 그렇게 아픈대도 불구하고 내가 좋다고 꼬리를 흔드는 그 모습

그 모습은 도저히 안락사라는 선택을 우리 가족이 할 수가 없게 만들었다.


앙뜨의 병세가 중반쯤 접어들었을 때 사건이 하나 있었다.

운동을 통해서 조금차도를 보인 강아지 이야기를 읽고

틈틈이 학교 운동장에 산책을 데리고 나갔는데

잠깐 한눈파는 사이에

앙뜨가 아이들이 뛰어노는 정글짐 사이에 몸이 끼어버렸다.

아무리 빼려 해도 결코 빠지지 않길래

119를 불렀다. 안 그래도 아픈 아이 내가 잠깐 한눈팔아서

더 아프게 하는 것 같아서 너무 괴롭고 화가 났다.

119 아저씨가 도착하셔서 보고는

학교 기물은 학교 허락 없이는 못 건드린다고 해서

급하게 초등학교 경비실로 달려가서 사정을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비아저씨는 안된다고

내일 아침에 학교 교장이랑 이야기해보고 결정해야 한다고 해서

내가 돈 다 낼 거니까 제발 조금만 철봉 사이 벌릴 수 있게 해달라고 빌고 또비니

듣고 있던 119 아저씨가 그냥 기계를 이용해서 살짝 철봉을 벌려버리시고는

이 정도는 티도 안 나요 하고 빼주고 쿨하게 가셨다,

아직도 그 119 아저씨가 너무 고맙다.

고맙다는 말을 수차례 하고는 집으로 앙뜨를 데리고 돌아왔다.


아픈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을 나가서 그런 일을 만들고.

내가 앙뜨를 위한다면서 실제로는 나를 위해서 이기적으로 행동하지 않나 생각이 들어

마음이 복잡해졌다.

그때쯤 앙뜨의 머리 위쪽도 경련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머리에서 심장이 뛰듯 일어나는 경련을 수십 번 손으로 지그시 누르면서

손을 떼면 멀쩡히 멈추길 빌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앙뜨가 음식물을 삼키는 식도 부분까지 마비가 와서

음식을 삼키다 병원에 실려갔을 때

안락사시키기로 결정을 내렸다.

우리의 욕심이 강아지를 극한의 고통으로 내몬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게 앙뜨를 보내고

앙뜨는 아빠가 자주 가는 낚시터에 묻어 줬다.

아빠는 그 이후로 낚시를 자주 갔다.

엄마는 다시는 강아지를 안 키우겠다고 했고

나도 몇 달간 앙뜨가 늘 누워있던 방석에 사라진 온기를 보며 고통스러워했다.

천만 와트짜리 전구가 빛나던 집에는

어떤 형광등을 켜도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났고 14년도에 엄마가 갑자기 하얀 강아지 한 마리를 데려왔다.

친구네 강아지가 새끼를 낳았는데

그중에 이 아기가 유난히 계속 눈에 들어왔다며

다시는 강아지 안 키울 거라고 다짐했는데

그 집 문밖으로 나와서도 걸어오다가 너무 생각이 나서

데려 왔다고 했다.

앙뜨랑 다르게 생겼는데도 너무너무 앙뜨 생각이 났다면서

그렇게 강아지의 이름을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라며 최대한 촌스러운 복동이로 이름을 붙여주었고

복동이는 온가족의 건강관리를 받으며 건강하게 커나가고 있다.


그리고 확실히 복동이가 온 뒤로 가정에 다시 천만 와트짜리 전구가 켜진 기분.

가끔 복동이를 끌어안고 마음속으로 이야기를 전달하다 보면 앙뜨가 전해주던 따뜻함이 느껴진다.

엄마 말처럼 침울해져 있는 가족에게 복동이는 앙뜨가 보내준 선물일지도 모르지


이미지에 있는 이야기처럼 내가 죽었을 때 앙뜨가 건강하게 달려 나와 주길 고대한다.

비틀대지도 쓰러지지도 않고, 그렇게 만나서

서로 체온을 나누고 어떻게 살았는지 이야기할 수 있으면 좋겠다.


나도 저 이야기를 참 좋아한다.



* 이미지는 스노우캣님의 웹툰 "옹동스" 중 한페이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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