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의 통찰력
20대와 교훈이라는 말이 그렇게 조화로워 보이지는 않는다. 무언가 모르게 교훈은 나이가 지긋하신 어르신들, 못해도 30~40대의 사회에서 자리 잡으신 분들에게서 나올 것만 같다. 어느 정도 맞는 말이다. 교훈의 뜻은 다음과 같다.
*교훈 : 앞으로의 행동이나 생활에 지침이 될 만한 가르침. 또는 그런 가르침 (네이버 국어사전)
모두의 인생은 다르지만 인생이라는 길을 먼저 경험해본 사람이 후에 경험하는 사람보다 많은 깨달음을 얻었을 확률은 높다. 나부터도 아빠의 말씀을 교훈 삼고, 선배들에게 조언을 구하고, 신박사님의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났다. '나는 그들에게 교훈 혹은 가르침을 줄 수 없을까?' 이 생각을 하다 보니 20대에는 신박사님과 같은 멘토 역할을 하는 사람이 많이 없음을 알게 되었다. (10대의 멘토가 되는 20대는 여기서 논외로 하겠다.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는 20대가 위로 전하는 교훈이니까.)
20대도 분명 사회에(윗 세대에게도) 교훈을 주고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리고 점점 더 그러한 시대로 변하고 있다. 여러 가지 이유들이 떠오르는데 2가지의 근거로 주장하려 한다.
1. 변화에 빠르게 적응한다
세상은 정말로 급변하고 있다. 정답처럼 여겨지던 것들이 외면받고 업신여겨지던 것들이 추앙받기도 한다. 많은 것들이 사라지고 더 많은 것들이 새로 생겨난다. 세상이 멈춰있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세상이 변함에 따라 우리도 변해야 한다. 그리고 그 변화에 가장 빠르게 적응할 수 있는 세대가 20대이다.
20대는 어쩌면 과도기의 나이이다. 10년 넘게 학교에서 선생님의 가르침을 받다가 세상으로 나오게 되었다. (대학생은 그 중간이라고 볼 수 있지만 분명 고등학생과는 의미가 다르다.) 과도기란 '바뀌어 가는 도중'이라는 의미인데 바뀌어 가고 있는 사람만큼 변화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는 사람이 또 있을까. 명확한 정답이 적립되어 있지 않다는 말은 언제든지 새로운 정답을 수용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변화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고 새로운 정답을 찾는데 익숙한 20대의 촉을 따라가는 것은 큰 배움이 될 수 있다.
미디어에서도 이것이 드러난다. 20대가 사회를 지배하지는 못하지만 미디어를 지배하며 사회를 바꾸는데 앞장서고 있다. (따라서 20대는 책임감을 가질 필요가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튜브에 시간을 소비하는 학생들을 좋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어른들이 가득했지만 이제는 모두가 동참하고 있다. 미디어가 세상을 삼켜버리고 있는 시대에서 미디어를 변화시키는 20대의 생각과 행동들은 매우 가치 있다.
2. 배우려는 자세를 갖고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20대는 가르침을 받는 것에 익숙했다. 미성년자의 시기에는 미성숙하다고 여겨졌으며 세상에 나온 지 10년이 되지 않았다. 표현하자면 불완전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불완전함을 인정하는 순간부터 불완전함은 완전히 다른 의미를 갖는다. (절대로 완전한 사람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20대는 윗 세대에게 귀 기울이며 배우려고 한다. 따라서 자신의 생각을 갖는 한편 다른 사람의 생각을 수용하는 것이다.
탈무드에서는 ‘만나는 사람에게 무언가를 배울 수 있는 사람이라면 가장 현명한 사람이다’라고 이야기하는데 20대는 자신을 낮추며 더 많은 사람에게 배우려 노력한다. 이러한 열린 태도는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며 더 많은 배움을 얻을 수 있는 그리고 줄 수 있는 초석이 된다.
표현하자면 20대는 어린 감성과 중후한 지혜가 공존하는 통찰력을 갖고 있다. 때문에 위아래 세대 모두와 교감할 수 있으며 조금은 투박하지만 트렌디한 생각을 한다. 이는 중년의 가르침과는 또 다른 색깔을 지닌다.
이 글은 20대와 다른 세대의 우열을 논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은 다른 세대에게 배우려고 하는 자세이다. 배우기 위해서는 가르침이 필요한데 가르침은 쌍방향일 수 있음을 전하는 것이다. 가르치려 드는 것은 나쁘지 않다. 가르침은 좋은 의도이기 때문이다. 다만 ‘가르침이 일방적일 때’, ‘나만 가르칠 자격이 있다고 여길 때’ 문제가 된다. 우리 모두는 가르치는 동시에 배우려는 자세를 지녀야 한다.
20대에게도 배움과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아버지와 내가, 혹은 훗날 나와 내 아들이 서로에게 가르침과 배움을 교환할 수 있으면 좋겠다.
(나는 아빠 말을 아주 잘 듣는다. 그리고 훗날 아들의 말에 귀 기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