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평 원룸에서의 시작
내 집 마련을 하고
노동은 더 이상 신성하지 않았다
어쩌면 대치강남에서 유청소년기를 보낸
내가 전업주부 무리들의
끝내주는 집테크를 보고
급여에 침을 흘리지 않는 파블로브의 개가
진즉부터 되었던 걸 수도 있다.
급여는 끽해야 천만 원 단위
집값이 오를 때는 하루아침에 억 단위
그게 내가 속한 세상이었고
남들이 못 들어와서
깨끔발로 엿보고 침 뱉는 세상이었다.
남편은 첫 만남에서
자신의 연봉이 오천이라고 했고,
나는 남편의 연봉이 오백이라도
노후를 걱정하지 않게 해 줄
근거 없는 자신감이 뿜뿜이었다.
일은 거들뿐
쌀과 고기를 일터에서 기대할 순 없다는
내 나름이 산 지식이 뼛속 깊이
박혀 있었다.
자본가계급이랄 것도 없지만
중산층 집안의 자녀들이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은 많지 않다.
변호사, 의사 어렵고 힘드니까 제끼고...
마냥 가방끈 길어지는 소리 난다.
간호학 영어영문학 보건사회학에서 다시 간호학으로 한 번도 일이 끊인 적이 없으나 한 번도 치열하게 일터에 나간 적은 없다. 그저 학교에서 학교로.....이 건물에서 저 건물로....
온실 속 화초처럼 그렇게
찬 바람 안 닿게
더위로부터 피해서 살았다.
많이 탐내지 않고
쓰임새 늘리지 않고
나름 조심조심
출신성분 맞추어
가성비 있게 산 인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