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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emune Jun 20. 2022

제2의 업(業)을 찾아서

뭐든 해보자는 심정으로


뭐든 해보자는 심정에는 두 가지 마음이 있었다. 뭐라도 해야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는 자괴감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 것 같은 마음, 그리고 육아 외에 정말 다른 무언가가 필요했던 마음. 두 가지 마음의 경중을 따질 수 없을 만큼 둘 다 간절했다. ‘일하지 않는 나’를 벗어나는 일, 무슨 일로 벗어날 수 있을까? 고민이 깊어지던 차에, 우선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싶어 디자인을 떠올리게 되었다.




마침 온라인 강의 플랫폼에서 인기를 끌던 '디지털 파일 판매'에 관한 강의를 홀린 듯이 수강하고, 이거다! 싶은 마음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것저것 디자인을 해서 파일로 만들어 Etsy라는 플랫폼에 올리기 시작했다. 디자인을 할 수 있다는 사실도 좋았고, 인쇄하거나 굿즈를 만들지 않아도 판로가 있다는 사실이 너무 좋았다. 해외 플랫폼이긴 했지만 가끔 파일이 팔릴 때면 기뻤다. 영미권 기념일이나 절기에 맞춰 Easter, Thanksgiving, Christmas 등에 필요한 패턴이나 배경화면, 프린터블 카드나 기프트 태그 같은 귀여운 파일들을 어렵지 않게 디자인해서 판매했다.


디자인 작업이나 판매 플랫폼에 리스팅 하는 작업 모두 재미있는 작업이었지만, 일정한 성과를 거두기에는 투자하는 시간이 너무 길었고 그에 비해 판매는 부진했다. 무슨 이유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한국 셀러들의 판매가 전격 금지되기도 하면서 의욕이 한 풀 꺾이기도 했고, 플랫폼 하나에 내 커리어를 건다는 게 불안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서 Etsy와 병행할만한 다른 플랫폼들도 찾고 다른 일도 탐색하기 시작했다. 이 모든 게 단 몇 주만에 생긴 변화였다. 디지털 파일을 판매할 수 있는 비슷한 플랫폼들을 찾아 해당 플랫폼에 맞게 수정해서 다시 리스팅을 하고, 디지털 판매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다른 일도 찾기 시작했다.




아빠 사무실에 쌓여있던, 심지어 공짜로 나눠주던 재고물품을 발견해서 갑작스럽게 스마트스토어를 열어 100개도 안 되는 그 재고품들을 팔기 시작했다. 물건을 가지고 있으니 당일 발송이 가능해 꽤 빠른 시간 안에 재고를 다 팔고 수익금을 아빠에게 돌려드렸다. 열어둔 스마트스토어에는 여러 가지 위탁상품을 올려두었고, 동시에 해외 수출로 분류된 한 플랫폼을 통해 해외로도 물건을 팔기 시작했다. 잘 팔리는 날도 있고 아닌 날도 있었지만, 판매율과 상관없이 내가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것이 너무 좋았고, 실수로 마진이 아주 적거나 역마진이 날 때도 배우는 중이라는 심정으로 스스로를 다독이며 꽤 오랜 기간 온라인 판매를 시도했다.




몇 달간 열심히 온라인 판매에 매진했지만, 현재는 많이 정리를 한 상태다. 지금도 스마트스토어 위탁판매는 하고 있지만, 해외 판매 플랫폼은 스토어를 닫아둔 상태이다. 이유는 디지털 판매부터 너무 다양한 일을 벌이기만 하다 보니 정신이 없는데 비해 마진이 적고, 성과에 비해 리스팅하는데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해서 플랫폼의 종류를 줄일 필요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결과적으로 많은 일을 시도했다가 많은 일을 포기하게 되었지만, 그 과정에서 내가 무언가를 할 수 있고 하면 된다는 가능성을 엿보았고, 무엇보다도 육아 외에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다는 자괴감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다. 다만 그 일을 ‘내 일’로 계속하고 싶을 만큼 매력적이지는 않았다는 것을 확실히 알았고, 확실한 ‘내 일’을 찾는다면 디자인, 온라인 판매 등 내가 시도했던 모든 일을 함께 활용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잠깐 했을 뿐이다.




지금은 스마트스토어에 간간이 들어오는 주문을 처리하면서 제2의 직업이 될 수 있는 진짜 일을 찾고 있다. 가능성을 타진해 보았다는 점에서, 지난 코로나19로 모든 것이 바뀌었던 2020, 2021년은 그리 아깝지만은 않은 시간이었다. 제2의 직업을 찾아내고, 그 일에 더 익숙한 사람이 된 시간이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겠지만, 여러 가지 일을 시도해보고, 가능성을 찾고, 나를 짓누르던 자괴감에서 벗어난 것으로 만족한다. 무엇보다 세계를 뒤덮은 지난했던 역병 중에도 굳게 훌쩍 자란 아이를 통해 지난 시간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억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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