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8. 나는 너 같은 남편은 싫겠어
중요한 일정이 있어 여자를 혼자 두고는 세시간 가량 외출했다. 가정주부를 둔 남편은 뭐 이런 느낌이려나. 시골 내 집에 여자 혼자 두고 잠시 다녀오려니 빨리 귀가하고 싶어지기도 했다. 돌아왔다. 이 집에 가족 말고 나를 반겨주는 사람이 있는것이 신기했다. 여자는 어제 체해서 아무것도 먹질 못했고 내가 다녀온 시간 대략 오후 2시 까지도 아무것도 안먹었다고 했다. 나 또한 매우 허기져서 뭐라도 먹어야겠는데 아픈 사람 두고 먹자니 또 미안해져서 이제 조금이라도 같이 먹어보자고 부대끼지 않을 식사를 준비했다. 혼자 하고 싶었는데 부엌으로 들어와 함께 아보카도를 찌부시켰다.
어제 한박스가 도착했는데 후숙이 덜 되어 정말 우리둘이 아주 애쓰면서 만든 과카몰리다. 거기에 에어프라이어에 돌린 두부까지. 아픈게 많이 나아져 저녁 요가에는 갈 수 있다고 했다. 사실 나는 돌아오는 길 내내 집에 달려가 오늘 일과를 신나게 떠들어줄 사람이 있다는게 신난 상태였다. 내 예상처럼 같이 기뻐해주어 좋았다.
밥을 먹고는 산책하러 나갔다가 오이들을 관찰했다. 관심도 안준 사이에 이것들은 이렇게도 잘 자라나고 있다는 사실이 언제나 신기하다 다 똑같이 생긴 초록색에서 똑같은 노란 열매가 열리더니 그 이후엔 각자의 모습으로 뭐라도 주렁주렁 열리는건 거의 마법과 같다. 이것도 점점 커진다는거 아닌가 진짜 기이하다 절대 이해가 안되고 신비롭고 아까워서 못따먹지 않을까
저녁엔 요가를 함께 갔다 오늘따라 날이 덥고 적당히 습해서 신들린것처럼 요가가 잘 됐다. 이 모습을 한장면이라도 여자가 봤어야 하는데! 실은 요가할때마다 정신이 한동안 나가있기도 하는데 오늘은 정말 육체이턀처럼 내 정신으로 한 수련이 아니었다 평소 안되던 자세도 잘 되어서 정신차리면 내 몸이 누가 조종하는것마냥 잘 움직이고 있었다. 수련이 끝나고 엘레베이터안에사 말 하고 싶은걸 꾹 참고 내려와 나를 봤냐고 재촉하기 시작했다
“ 나 오늘 완전 신들렸어 요가 신 너무 잘되더라니까?“
“언니가 그동안 수련을 많이해서 그런걸수도 있지“
“아냐 그럴리가 없다니까 내가 절대 아닌것 같았어 날 못본거야????“
“…”
“아 억울해 이걸 누가 알아줘야하는데 왜 왜 !!!아이고 답답해 정말 나 요가신들렸던것 같아”
피곤하고 나른할때 요가 동작이 더 잘됐는데, 여자도 그렇다고 했다 아마도 더 이완되어 있어 그런게 아닐까 추측했다.
“너 지금 배 많이 고파?”
“보통”
“그럼 집에가서 나좀 봐줘 정말 또 다시 그 자세가 되는지 봐야겠어”
돌아와서 에너지가 솟아서 요가를 한시간을 더 하고 싶었는데 안그래도 완치되지 않은 여자는 여간 피곤해보이는게 아니었다.
빨리 끝내고 번갈아가며 샤워를 한 다음 식사를 준비했다.
나는 고등어구이와 다른것들을 준비하고 여자는 치즈, 양파, 토마토를 넣은 오믈렛을 만들어줬다. 너무너무 맛있는 식사였다.
며칠간 여자가 다 읽어버린 책이다. 읽고 교환해서 의견 나누기로 했는데 나는 일을 하느라 읽는 속도가 느려서 따라가질 못했다. 나는 한권의 책만 끝내서 우리는 한 책으로 의견 나누기를 해봤다. 그러다 서로 만일 우리 서로가 상대의 남편이라는 가정을 해봤다.
“이렇게나 잘 맞는 사이인데, 그럼에도 싫은점이 있어서 나는 결혼을 꼭 해야하는걸까 또 생각했어 내가보기엔 너랑 내가 잘 맞는것처럼 남자 포함한 그 누구도 이 관계보다 더 잘 맞는 사람은 찾기 힘들것 같단 말이지“
“싫은점이 뭔데?“
“넌 너무 느려”
우리는 동시에 웃었다
“너는 친구라서 관계가 없지만 남편이라면 그러면 난 정말 답답할거같아”
“맞아 이해해 나도 그렇게 생각해”
“넌 내가 남편이라면 어때?”
“나도 싫어”
“왜?”
“에너지가 너무 넘쳐서 안돼”
하긴 우리가 정 반대인것도 많은데, 그 중 하나는 여자는 아침형 인간이라 아침에 컨디션이 가장 좋고 저녁이 되면 배터리 방전되듯 기운이 빠진다는것이고 내 경우는 저녁형 인간이라, 아침에는 정말 기운없다가 오후 4시부터 에너지가 차올라서 요가하고 돌아오는 길에는 하루중 최고의 상태가 되어있어서 여자는 그것을 고통스러워 한다.
우리가 친구로 만나 다행이지, 남녀관계였다면 아주 잘 맞으면서도 자주 싸웠을까? 아무래도 그랬을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