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의 모닝페이지

모닝페이지를 쓰길 잘했다.

by 루빈

단톡방에서 기분이 상함. 아주 사소하고 쓰잘데기없는 상황이 모여 마음의 변화를 일으키고 내가 못난 사람처럼 느껴졌다.

내가 글을 쓰고 싶어하는 이유는 나도 잘할 수 있는 게 있고, 못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서인지도 모른다.

- 2018년 5월 2일


2018년 나를 속상하게 한 단톡방은 한 독서모임의 단톡방이다. 나는 온라인에서건 오프라인에서건 사람들과 어울리는 데 서툴렀고, 그 보상심리로 독후감을 열심히 쓰고 발제를 잘하는 데 매달렸다. 어떻게든 사람들의 관심과 주목을 받고 싶었던 것 같다. 이렇게 쓰다 보니 스스로 짠해지네. 왜곡된 형태의 관종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해 5월 함께 읽었던 책은 가즈오 이시구로의 <나를 보내지 마>였다. <나를 보내지 마>를 읽고 모닝페이지에 이렇게 썼다.

나를 보내지 마. 인간적인 것이 무엇인가 하는 생각. 사소하고 미묘한 것, 인간의 추한 면이 있는 쪽이 클론을 더 인간답게 만드는 요소인 것 같다는 생각. 이렇게 못나고 모자란 면이 있어서 인간인 것이다.


- 2018년 5월 5일


인간적인 모습이란 선량하고 도덕적이고 의리를 지키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나를 보내지마>를 읽고 생각이 좀 달라졌다. 못나고 모자란 면이 있어야 오히려 더 인간 같다고 느끼게 된 것이다. <나를 보내지 마>에 나오는 클론, 캐시와 루스, 토미는 지나칠 정도로 인간답다. 인간처럼 욕심을 부리고 질투도 하고 복수도 한다. 그리고 후회도 한다.


이윽고 힐긋 루스를 돌아본 나는 정말이지 심한 충격을 받았다. 내가 어떤 상황을 기대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지난달 수많은 공상에 빠지면서도 진상이 밝혀지는 순간이 어떨지 정말이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이제 나는 루스가 얼마나 당황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그 애는 완전히 당황해 할 말을 잃고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 같았다. 그러자 나는 나 자신의 행동이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것으로 느껴졌다. 가장 친한 친구를 당황하게 하기 위해 그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그 모든 계획을 세웠었다니. 필통에 대해 거짓말을 좀 했기로서니 그것이 어쨌단 말인가? 우리 모두가 이따금 어떤 선생님이 규칙을 벗어나 자발적인 포옹과 은밀한 편지니 선물같은 특별한 뭔가를 우리에게 해 주기를 바라지 않는가? 루스는 다만 그런 무해한 백일몽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정도였다. 그 애는 제럴딘 선생님의 이름조차 언급한 적이 없었다.


-<나를 보내지 마> 중에서


인간과 클론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일까? 인간이 생각하고 감정을 느낀다는 점일 것이다. 하지만 위 문단에서의 나, 캐시는 마치 인간처럼 생각하고 인간처럼 느낀다. 캐시는 루스에게 배신을 당했다고 느낀 것 같다. 루스가 캐시에게 거짓말을 하고 캐시를 화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캐시는 루스에게 복수를 결심하고 행동으로 옮긴다.


하지만 막상 루스가 괴로워하고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을 보자 캐시는 ‘내가 바란 게 이런 거였나?’ 하는 회의에 잠긴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현타가 온 것이다. 이렇게 배신하고 복수하고 후회하는 클론들의 모습에서 나는 그들의 인간다움을 느꼈다. ‘못나고 모자란 면이 있어야 인간인 것이다.’라는 말까지 썼다.


이런 느낌을 내게도 적용할 수는 없을까? 클론이 실수하고 상처 주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고 감동했으면서 왜 내가 실수하고 물러나고 괴로워하는 모습은 받아들이려 하지 않을까? 단톡방에서 편하게 말하는 게 어려울 수도 있고, 여러 사람이 모이는 자리에서 긴장해서 오바하거나, 위축되어서 말을 잘못할 수도 있는 건데 말이다.

그런 나 자신이 못마땅해서 더 열심히 책을 읽고 글을 써서 인정받으려 노력할 수도 있다. 그런 것으로 자존심을 채우려고, 억눌린 마음을 달래려고 애쓸 수도 있는 것이다. 누군가를 질투하고 미워할 때도 그런 나 자신을 속상해하기보다 나를 안쓰럽게 여기고 이해해 주려 하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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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힘들구나. 실망했구나. 너도 저런 걸 잘하고 싶은데 그게 안 돼서 속상했구나. 남들처럼 잘 어울리고 싶고 누구처럼 주목도 받고 싶은데 생각처럼 안 돼서 그런 게 다 힘들었구나. 하지만 너 자신과 다른 사람의 부족한 면이 너를 힘들게 할 때도 너무 괴로워하거나 속상해하지는 말았으면 한다.


그냥 그럴 땐 잠시 멈추고 이런 생각을 해보자. 네가 5년 전에 쓴 것처럼 인간에게는 누구나 모나고 모자란 면이 있다. 각자의 모난 부분은 자기 자신을, 서로를 찌르라고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서로 채워주고 도와주라고 있는 것일 테지.


혼자서는 날카롭지만 서로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바퀴처럼 인간은 서로의 모난 면을 감싸주고 맞춰가며 사는 동물이 아닐까? 그러면서 각자 자신의 부족하고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을 더 사랑스럽게 느끼고, 좀 더 받아들이게 되지 않을까? 너의 예민함이 너를 아프게 하면서도 너를 쓰는 존재로 바꾸어가는 것처럼 말이다.


인간다움에 대해 고민하던 5년 전의 내가 있다. 덕분에 내가 잘 안 되는 것, 내 마음대로 풀리지 않는 상황에 대해 돌아보고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게 되었다. 지난날의 기록을 곱씹어 보며 나 스스로 나의 마음을 달랜다. 오늘도 모닝페이지를 쓰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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