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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모 Jan 06. 2022

우리집 가훈 - 먹는 게 남는 거다

정세랑 <시선으로부터>

 

“할머니는 정말로 우윤이 다시 귀국하기 전에 돌아가셨다. 우윤은 장례에도 가지 못했지만 괜찮았다. 할머니는 장례 같은 걸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예’가 들어가는 단어는 사실 묶어서 싫어했다. 모던 걸. 우리의 모던 걸. 내 모든 것의 뿌리. 아직 태어나지 않은 괴물의 콧등에 기대 많이 울었다.”






내 동생 초딩 때 일이다. 어느 날 동생이 아빠에게 물었다.

“아빠 우리집 가훈이 뭐야?”

“그런 거 없는데 왜?”

“학교에서 가훈으로 글짓기 해오래”

아빠는 갑자기 허공에 대고 한탄 섞인 화 같은 걸 내기 시작했다. 때마침 나타난 엄마도 이 얘기를 듣고 똑같이 혀를 찼다. 그러더니 아빠는 “oo아 누나한테 가서 물어봐. 니네가 가훈 정해봐” 그래서 결국 동생은 나에게 왔고 우리는 힘을 모아 가훈을 정했다.



<우리집 가훈 – 먹는 게 남는 거다>




동생은 우리가 정한 가훈으로 글짓기를 했고 뜻밖에 상까지 받아왔다.

아빠는 종종 우리가 학교에서 받아온 숙제나 시험지를 보며 혀를 찼다. 나는 틀렸는데 왜 틀렸는지 모르겠는 문제들을 갖다 대며 아빠한테 풀어보라고 했고 아빠는 정답을 맞히기는 하면서도 ‘이런 걸 문제라고’라는 말을 많이 했다. 특히 도덕이나 국어 문제에서는 나의 자존감이 힘껏 상승했다.



초딩 2학년 때인가. 도덕 시험에 “친구 생일파티에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가나요?”라는 문제가 있었다. 나는 ‘2번. 맛있는 거 먹으러 간다’에 답했고 틀렸다. 아빠는 그 시험지를 보더니 박장대소를 하며 “정답이네 정답! 맛있는 거 많~이 먹고 와”라고 했다. 지금 생각해도 기막히고 웃긴 문제다. 누가 누구에게 마음가짐을 가르친단 말인가. 마음가짐에 정답이 있나. 고작 초딩 2학년에게 ‘진심으로 축하하는 마음’이라니. 난 아직도 모르겠는데? 내가 내 친구의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 해 줄 수 있나? 오히려 그날을 핑계로 오랜만에 얼굴이나 보고 맛있는 거 먹고 수다 떨며 함께 보내면 그것이 진정한 축하 아닌가. 그래서 2번은 내게 지금까지도 정답이다.



책 속에 심시선 할머니처럼 아빠는 ‘예’ ‘도덕’ ‘인성’이라고 일컫는 부류의 가르침을 싫어했다. 그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틀에 박힌 ‘예절 교육’이 오히려 아이의 자연스러운 인격 성장을 방해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 부모 밑에서 자란 나는 때로는 싸가지 없고 때로는 격에 맞지 않으며 때로는 나보다 ‘어른’에게 대놓고 그건 아니라고 말한다. 그리고 후회도 하고 격려도 하며 스스로 부딪히며 깨닫고 성장한다.



‘어른을 공경해야 한다’ ‘예의를 지켜라’ ‘바르게 행동해라’라는 말보다 아이가 믿을 수 있는 어른이 되어주는 것. 아이에게도 인간적인 예의를 갖고 말과 행동을 존중해주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것. 물론 머리칼 쥐어뜯게 어렵지만 어른의 이런 ‘마음가짐’이 그 어떤 진지한 훈화 말씀보다, 바른말 고운 말인 가훈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게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우리에게 직접 가훈을 정하라고 했던 건 정말 아빠다웠다. ‘먹는 게 남는 거다’라는 가훈은 나와 내 동생이 지었지만 여전히 밥상머리에서 회자되는 진정한 가훈이 되었고 언젠가 아들에게 물려줄 ‘괴짜 외갓집 에피소드’로 남아있다. 거창함과 진지함에 알러지 있는 집안에서 스스로 습득한 ‘인생의 교훈’을 나는 또 어떤 재미있는 방식으로 아이에게 물려줄 수 있을지 궁금하다. 뭐 안 물려줘도 그만. 책 읽다 심시선 할머니한테 심하게 이입해서 또 이렇게 됐네. 너나 잘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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