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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모 Mar 31. 2022

야심한 밤, 아빠 엄마들이 책을 들고 모였다.

3주에 한 번씩 새 책을 들고


나는 아이를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보낸다. 이곳은 ‘공동육아'라는 이름처럼 '니 아이 내 아이 할 것 없이 아이를 함께 키워보자'라는 의미에서 뜻 맞는 부모들이 모여 만든 협동조합 어린이집이다. 이것이 우리나라에서 생겨난 것은 벌써 몇십 년 전이고 지역마다 삼삼오오 모여 시작한 것이 나라 전체를 아우르는 '연합'이 있을 정도로 조직화 되었으니, 나로서는 그저 '뜻'만 얹었을 뿐 미리 닦아놓은 선배들의 피와 땀으로 혜택을 얻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이곳은 알면 알수록 신기하다. 아이를 맡겼다가 찾아가는 것 이외에도 부모들이 직접 나서야 할 일들이 있다. 예를 들면, 부모는 협동조합의 조합원으로 어린이집 즉 조합 운영에 적극적으로 참여를 한다. 처음 가입을 하면 각 가정의 아빠 엄마(이곳에서는 줄여서 '아마'라고 부른다)가 재정, 홍보, 기획, 시설 등 본인이 기여할 수 있는 영역을 찾아 운영 소위에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아이가 졸업하기 전까지 그 소위의 소위장으로 한 해 동안 일을 하게 된다. 또 주말엔 돌아가며 어린이집 청소도 하고 선생님이 휴가 낸 날에는 '종일 아마'라는 이름으로 대체 교사 역할도 한다. 이렇게만 보면 머리가 지끈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혼자 애 키우는 거 힘들어서 같이 키워보자고 모였으니 '키우는' 데 품 드는 건 당연한 거 아닐까. 비슷한 가치를 갖고 모였지만 저마다의 생각이 있을 터이니 개인의 생각으로 큰 울타리가 무너지지 않도록 일종의 약속과 장치를 마련해 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한다. 솔직히 말해 귀찮을 때도 있다. 하지만 귀찮은 몸 이끌고 나갔는데 예상치도 못한 무언가를 얻고 온 느낌, 누구나 한 번쯤은 느꼈을 그거. 그거다.


그리고 '일'만 있는 것도 아니다. 부모 아이 할 것 없이 다 같이 모여 즐길 일도 많고 무슨 잔치 무슨 잔치 그놈의 잔치도 매달 있는 것 같다. 애 낳고 파티 못해 안달 난 사람에겐 딱이다. 거기다가 아마들의 소모임이 있는데 요것이 요물이다. 오늘 이 이야기하려고 서론이 길었다.

 



공동육아 어린이집의 매력 중 하나는 아빠 엄마 누구든 취미든 공부든 하고 싶은 걸 같이 하자고 꼬실 사람들이 있다는 거다. 애 낳기 전에야 자유의 몸이었으니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허나, 애를 낳았다. 세상은 '워라밸 워라밸'을 외치고 '주 52시간 근무'로 저녁 시간이 보장됐다 하는데 나는 느닷없이 투잡이 생기고 하나 퇴근하면 또 하나 출근하니 주 52시간? 시계를 잘못 보나 싶다. 세상이 이렇게 나와 별개로 돌아가다니 내가 이상한 건가 세상이 이상한 건가 의문을 품다가 이런 의문 품을 새에 집을 치우든 애랑 놀든 둘 중 하나 해라 하고 외치고 있다. 누가? 내가, 내 마음이. 그러다가 또 이런다. 괜찮아, 괜찮아. 아직 살 날 많잖아. 내 인생의 지금이 이런 구간일 뿐이지. 평생 이럴 거 아닌데 뭐. 이걸 겪으면 더 나은 내가 될 거야! 애 이쁘잖아? 더 바랄 게 뭐 있어. 이러고 있다. 애가 네 살쯤 되었을 때야 휘몰아치는 '바람'들을 대충 잠재웠다 생각했는데 그때 나타난 것이 소모임이다. "책모임 있는데 같이 갈래요?"라는 말을 듣는 순간 속으로 생각했다. '오! 내가 바라던 거야!' 바라는 게 없긴 개뿔.




그런데 내가 이것에 이토록 열광하는 데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일단 모임의 구성원들이  나와 비슷한 처지이기 때문에 넘치거나 모자라지 않게 서로의 상황을 봐가며 진행을 조율  있다. 둘째, 어린이집 내에 소모임이기 때문에 배우자의 반대가 적고 알고 보면 배우자가 속으로 결사반대하고 있을지라도  반대를  힘을 다해 표현하지 못한다는 암묵적인 가이드까지 있다. 주위를 둘러보라,  사람이  봐주니 다른  사람이 소모임 나가지 않나.  가게 하면 공식적으로 쪼잔한 인간 되는 거다. 내가 무작정 '3주에  번씩 밤에 나가서 자유롭게 놀고 올게' 하면 '그래 내가   테니 정기적으로 나갔다 '  배우자  명이나 될까. 지금   사람 조용히  내리고 당장 실천하라. 마지막으로, 처녀 시절  많던 자유시간에 생산적인 일이라곤 눈곱만큼도 안하고 술이나 퍼먹고 다니다가  낳고 나니 느닷없이 온갖 생산적인 모임들이  나를 위한  같았는데 그들의 저녁 시간이 나와 같은 시간이 아니라는 것에 좌절하고 쓰리는  부여잡고 씨름하고 있는 중에 이렇게나 맞춤형 자기 발전적 모임이 나타났으니 펄쩍 뛰지 않고 견디겠나. 나도 이제  먹고  치우고 씻고 씻기고  싸고  치우는  외에 다른 일을 한다! 게다가 그렇게나 책도  읽던 내가 3주에  번씩 새로운 책을 잡는다니. 역시 인생 바로  앞을 알지 못한다. 오래 살자.


그렇게 나는 첫 책을 들고 2020년 어느 토요일 밤 열 시에 터전(이곳에서는 어린이집을 터전이라 부른다)으로 향했다. 그렇게 터전을 들락거린지 1년이 좀 넘은 지금, 2022년 3월, 어느 소녀의 끔찍한 학대 경험을 쓴 소설 같은 실화 <완벽한 아이>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사실 글을 쓰기 시작할 때는 이 책을 읽고 난 소감을 쓰려고 했는데 다음번에 해야겠다. 계획대로 되는 게 없네, 인생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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