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여행 D-35] 여행을 준비하며 알게 된 것들
여행의 준비는 으레 그 여행의 기간보다 훨씬 오래 걸린다.
우리의 여행 준비도 그랬다.
올해 4월 15일에 출발하는 이 세계여행을 위해서 우리는 2016년 1월 부터 자금을 준비해왔다. 그리고 2017년, 결혼 준비를 할 때에도 모든 것은 2018년에 떠날 여행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신혼집은 언제든 뺄 수 있는 월세로 계약했고, 가구는 일절 사지 않았다. 예쁜 주방용품들만 보면 설레는 내가 혼수의 로망을 모두 버리고 스무 살 때 부터 자취하던 그의 작은 살림에 내 짐을 얹어서 살았다. 옷은 결혼 전에 거의 다 처분하고 매일 입어도 질리지 않을 편한 옷들만 남겨 왔다.
여행 준비를 시작했던 2016년 부터 시나브로 나의 마음가짐과 씀씀이가 여행자로 만들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긴 여행을 준비하는 일은 인생을 여행처럼 살다가는 법을 알려준다.
인생을 여행처럼 산다는 것의 핵심은 나의 몫으로 무언가를 축적하려하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배낭 하나만을 가지고 여행을 하려는 사람의 입장에서 몸에 지니고 다닐 수 없는 물건은 가질 수가 없다. 사고 싶은 것이 생겨도 '이거 여행갈 때 들고갈 수 있나?'의 기준으로 판단했을 때 No라면 바로 마음을 접고, 여행갈 때도 도움이 될만한 물건이라고 생각이 들면 구매한다. 자연스럽게 내 삶의 무게가 이 배낭 하나에 맞춰진다. 하나 둘 배낭을 채워가고 삶을 정리하다 보면 배낭 안에는 정말 생존과 직결된 물건들만이 남게 된다. 사실은 삶이라는 게, 고작 이 작은 배낭 하나에 들어가는 것들만으로도 살아진다는 것을 알게 된다.
또한 여행은, 헤어지는 일이다. 추억은 가슴 속에 간직하고 또 다른 여행지로 떠나가는 것, 매일 끊임 없이 이어지는 새로움 딱 그만큼 이별하는 것,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내 곁에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것, 그것이 여행이다. 인생을 여행처럼 산다는 것은 곁에 있는 무언가를 영원히 내 것으로 옭아매놓으려고 하는 그 집착에서 벗어나, 흐르는 세상과 공존하는 것을 의미한다. 내 삶 속에 녹아있던 많은 집착을 덜어내면서 조금씩 여행자가 되고 있는 것 같다.
약 2년의 시간 동안 일상과 작별하는 일은 삶의 우선순위를 정돈하는 기회를 주기도 한다.
결혼을 하고 나니 여행은 6개월 앞으로 훌쩍 다가와있었다. 늘 아무렇지도 않게 오가던 나의 동네, 나의 학교, 늘 보던 부모님, 친구들 모두, 이젠 아무렇지 않은 것이 아니게 되었다. '여행 가기 전 마지막,'이라는 수식어가 하나 둘 붙어가기 시작하면서 나의 마지막을 온전히 내가 소중히 여기는 것들로 채우려고 하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을 하고,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좋아하는 것들을 먹었다. 이번 기회를 통해 알게 된 내 삶의 우선순위는 첫째로 생존 그 자체, 둘째로 관계였다.
여행이 한 달 남짓 남았다. 출국은 한 달 하고도 보름 남짓 남았다.
그동안엔 더 무엇을 하고 더 무엇을 느낄 수 있을까.
한 이틀 안 먹으면 꼭 생각나고, 먹고 난 직후에도 또 먹고 싶어지는 내 사랑 떡볶이를 나는 출국 전 까지 몇 번 쯤 더 먹을 수 있을까.
세계여행 D-35,
셋째는 떡볶이.
2018.0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