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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을 Jun 17. 2024

대인기피증이 있지만 산책은 하고 싶어

오늘의 도전 : 공원 산책

*오늘의 도전 : 공원 산책


사람이 무서워 집에서 웅크리고 산다면 그건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그것도 오늘은 날이 너무 좋다. 그렇지만 공원에는 사람이 바글거릴게 분명하다. '내가 사람 많은 곳을 갈 수 있을 까?' 잠시 고민하긴 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 일단 나가자. 나는 무작정 씻고 좋아하는 옷을 입어 밖으로 나왔다.


집 앞에 있는 호수 공원은 편도 30분 거리. '누군가와 같이 걷는 것도 아니고 혼자 걷는 건데 문제 될게 뭐가 있겠어?' 스스로 주문을 걸어봤지만 애석하게도 나의 당찬 각오와는 다르게 집을 나선 순간부터 심장은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모든 사람들이 나만을 지켜보고 있을 것 같은 기분. 다리가 엇박자로 꼬이기라도 하면 내게 손가락질하며 비웃을 것 같은 기분. 좋아하는 빨간색 옷은 괜히 입은 걸까, 누군가 내 옷이 너무 튄다며 나무랄 것 같은 기분.


아직 공원에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다리가 떨려 주저앉아버릴 것만 같았다. 포기하지 말자, 나는 기어가다시피 걸어 겨우 공원 입구에 도착했다. 물론 집에서 공원 입구까지의 거리는 단 10분. 앞으로 30분을 더 견딜 수 있을까. 더운 날씨도 아닌데 등에 식은땀이 났다. 겨드랑이는 축축해지고 손마디 사이로 습기가 차는 것 같았다.


움직이는 두 다리에만 집중하자, 나는 고개를 숙여 번갈아 사라지고 나타나는 다리를 바라보았다. '지금 너무 죄인같이 걷고 있나? 이상해 보이나?' 다시 고개를 들어 올렸다. 혼자 걷는 것도 못하다니, 이건 대인기피보다 더 심한 게 아닌가? 설마 공황인가? 별의별 생각이 들면서 머리가 지끈거렸다. 안돼, 이럴 때일수록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 지금 내겐 병명 따위야 중요하지 않다. 그저 집을 나섰다는 것, 그리고 지금 엄청난 시도를 하고 있다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한 포인트다. '그러므로 무너지지 말자. 주저앉더라도 끝까지 걸어가자. 단, 무리는 하지 말자.' 나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대인기피를 꼭 이겨내야 하는가?


내 대답은 물론 'No'이다. 어떠한 것에도 '반드시'는 없다. 오히려 이겨내야 한다는 강박이 되레 스트레스가 될 수 있다. 그래도 내가 산책을 시도하는 까닭은 단지 슬펐기 때문이었다. 내가 나로 살고 있지 않은 것 같아서. 대인기피자체가 내게 중요하진 않지만 그게 인생을 가로막는 무언가라면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결국 이겨내지 못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얻어낼 수 있는 무언가가 있을 거라 믿었다.


왕복은 하지 못했지만 호수공원을 편도로 걷는 것엔 성공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치는 공간에서 30분이나 걸어 다닌 것이다.

'야호!'

마음속으로 작게 소리쳤다. 그대로 자리에 앉아 눈앞의 분수대를 보았다. 동그란 원을 그리며 물을 뿜어대고 있는 분수는 홀로 춤추는 백조 같아 아름다웠다. 심장은 여전히 쿵쾅 거렸지만 와중에 아름다운 것은 인식할 수 있는 모양이었다. 오늘 나는 해 냈구나. 두려워했으면서, 고개를 연신 떨궜으면서 나는 결국 나왔구나. 뿌듯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래도 이제는 심장도 휴식해야 할 것 같아 서둘러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 도착해서야 내 심장은 다시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물론 도착한 지 20분 후였지만 말이다. 나는 침대에 누워 심장을 쓸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한걸음 나아갔구나, 이렇게 결국 해냈구나.' 감격스러워지는 하루. 오늘 내겐 아주 중요한 첫걸음이었다.  


*오늘의 도전 : 공원 산책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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