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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을 Jul 01. 2024

대인기피증이 있지만 빵과 우유는 먹고 싶어

오늘의 도전 : 빵과 우유 구매

*오늘의 도전 : 빵과 우유 구매


먹을 게 다 떨어졌다. 사실 냉장고를 뒤적이면 한 달 치는 족히 나오겠지만 당기는 게 없다. 나는 지금 탄수화물 덩어리, 씹을수록 단 맛이 나는, 빵 덩어리를 먹고 싶다. 거기다 우유까지. 참을 수도 있지만 미친 듯이 끌리기 시작했다. 오늘 나는 반드시 빵과 우유를 먹고야 말겠다. 그래, 결정했다! 집을 나서 장을 보고야 말겠다!




내가 사야 하는 것은 두 개. 빵과 우유다. 한 번에 살 수도 있겠지만 빵집에서 판매하는 우유는 비싸고, 마트에서 판매하는 빵은 맛이 없다. 이 말은 즉, 빵집과 마트를 둘 다 가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다... 퀘스트가 하나인 것 같았지만, 새끼 미션이 있는 것이다. 오늘은 다소 벅찬 하루가 되겠군.

커튼을 살짝 열어 밖을 바라보았다. 낮 2 시인만큼 열기가 땅을 누르고 있었지만 덕분에 인적은 드문 듯했다. 오케이, 운이 좋다면 사람을 많이 마주치지 않아도 됐다.

'뭐가 제일 눈에 띄지 않는 무난한 옷일까' 한참을 들여다봤지만 썩 마음에 드는 옷이 없었다. 배가 점점 고파지기 시작해, 아무거나 골랐다. 물론 정말 아무거나는 아니었다. 검은색 티에 회색 긴 바지, 그야말로 가장 눈에 띄지 않는 조연이 입을 법한 착장이었다.


옷을 입는 와중에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무모한 도전이었나, 빵과 우유를 꼭 먹어야 하는가.

아니! 반드시 먹고야 말겠다. 내 행복을 거머 줘야겠다. 나는 재빠르게 옷을 마저 입고 집을 나섰다.


장바구니를 들어 오른쪽 옆구리에 꼈다. 어디선가 증정해 줬을 저렴한 가방이라 그런지 여기저기가 쭈굴대고 있었다. '누가 나를 가난하게 보면 어쩌지' 신호등이 바뀌고 건너갔다. 모든 운전자가 내 걸음걸이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다 누군가 게임이라도 하듯 그대로 돌진해 나를 박아버릴 것만 같았다. 물론 아무도 쓰러져 있는 나를 도와주진 않겠지. 나는 고개를 젓고 이상한 허상을 떨쳐 보냈다. 생각이 왜 이렇게 많은 거지, N이라서 그런가?


그대로 죽 걸어가는데 갑자기 내 걸음걸이가 의식되었다. '팔자걸음인가? 안 좋게 보이려나?' 빵집까지 앞으로 3분, 짧은 시간 동안 내가 왜 이렇게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게 된 건지 생각해 보았다. 분명 그들은 아무 생각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왜 이러지. 끙끙거리며 머리를 감싸봐도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우선 퀘스트에 집중하자. 나는 그대로 첫 번째 장소인 빵집에 들어섰다. 매장 직원은 분명 내가 들어선 소리를 들었을 테도 인사해주지 않았다. '내 얼굴이 별로라서 그런가?' 나는 서둘러 생각해 둔 빵을 집고 매대에 섰다. 나를 보지도 않고 계산하는 바람에 마음은 편했지만 동시에 내가 싫은 건가, 하는 미묘한 감정이 교차했다.


드디어 마트 도착. 이제 우유만 사고 후다닥 집으로 들어가면 된다. 이번 직원분은 큰 목소리로 나를 반겨주셨다.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조금만 얌전히 해주셨으면 좋을 텐데. 이대로라면 차라리 빵집처럼 나를 무시하는 게 나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유를 고르고 계산을 했다. 이런, 들고 있던 동전을 그만 떨어뜨리고 말았다. 하필이면 지금 내 뒤에는 한 명의 손님이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분명 속으로 내 욕을 하고 있을게 뻔했다. 심장의 떨림은 그대로 손끝에 전이되어 떨어진 동전을 집을 수 없게 만들었다. 등이 오싹하고 식은땀이 났다. 우유 곽 옆으로 흐르고 있을 물줄기가 내 등에서도 흐르는 것 같았다. 직원분이 도와주셨지만 민폐를 끼친 것 같아 죄송스러웠다. 계산을 마친 나는 연신 고개를 꾸벅이고 집으로 향했다.


집 문을 열고 옷을 벗자 세상과도 단절된 느낌이 들었다. 나는 그대로 욕실로 들어가 땀에 젖은 몸을 얼굴에서부터 발가락까지 차가운 물로 씻어 내렸다. 뜨겁게 타오르던 심장은 깊은 바다에 잠기듯 빠르게 고요해졌다. 나는 쏟아지는 물줄기를 맞으며 소리 내어 울었다. 내가 왜 이렇게까지 된 거지? 하는 슬픔의 눈물이 아니라 오늘도 결국 해냈다는 환호성의 눈물이었다. 몸을 말리고 좋아하는 영상을 틀어 빵과 우유를 먹었다. 크, 속세의 맛. 오늘 있었던 일을 견디지 못했다면 지금 이 행복을 거머쥐지 못했을 거다. 아니, 견디지 못했더라도 나간 것 자체가 이미 성공이었다. 나간 순간 퀘스트 성공. 오늘도 고생했다! 그러니까 앞으로도 일단 나가자. 앞으로도 많은 기쁨의 눈물을 흘리자. 나는 웃으며 빵을 베어 물었다.


*오늘의 도전 : 빵과 우유 구매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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