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행과 한국식 좀비

부산행이 대한민국 좀비영화의 대표작이 되는 것이 옳은가?

by 이상우



연상호 감독의 수작으로 평가받는 한국 대표 좀비 영화 '부산행'.


여전히 나는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지만 이미 전 세계의 많은 좀비 영화 팬들이 인정했다고 SNS와 매스컴에서 떠들썩 했다. 주변에서 유난 떨지 말라고 한마디씩 한다. 다들 좋다 그러는데 왜 너만 난리냐고, 국뽕을 제외하고도 전 세계에서 열광하는데 네가 뭐라도 된 것처럼 굴지 말라고. 내가 부산행이 싫었던 이유를 하나하나 정리해보면서, 내가 정말 유난 떠는 걸까? 그냥 유별난 척하고 싶어서 그랬던 것일까? 싶을 무렵, 연상호 감독의 또 다른 작품 '반도'가 나왔고, 여전히 아니 더욱 비판적인 눈초리로 영화를 다 보고 난 후 나는 내가 진심으로 연상호 식, 아니 한국식 좀비 영화를 싫어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어디선가 많이 본 것 같지만 새로운 좀비들.


공포 영화 마니아 출신 뮤지션으로서 좀비에 심취했던 적이 있다. 물론 지금도 블로그 개설 후 첫 칼럼을 좀비 영화에 대해 쓸 만큼 좀비라는 컨텐츠에 열성적이다.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리턴 오브 더 리빙데드(바탈리언)을 비롯해 전통적인 좀비 영화들의 좀비들은 대부분 죽었다 되살아난 시체들이다. (엄밀히 따지면 좀비보다는 오컬트 영화에 가까운 이블 데드는 제외하고) 현대 좀비 영화들에서는 죽었다 살아나는 대신 '28일 후'나 'World War Z'처럼 바이러스에 의해 인간이 변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상 언급한 소위 인기 있는, 유명한 좀비 영화들의 좀비들은 뚜렷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어 각각 좀비들의 움직이는 모습만 봐도 어느 영화인지 알아챌 수 있을 정도이다. 문화 사대주의자처럼 판단되어 버리기 전에 서둘러 넷플릭스 '킹덤' 연상호 감독의 '부산행'으로 이어지는 한국 좀비들의 특징에 대해서 말하고 싶다. 분명 이 작품들의 감독들은 나만큼, 아니 나보다 훨씬 많은 전 세계의 좀비 영화들을 봤을 것이다. (자막에 의존해 영화를 보는 것이 싫어서 미국, 영국, 호주, 한국 영화만 보는 필자에 비해) 단순히 감상만 하는 편한 필자의 입장과 달리 그들은 기존 좀비들과 다른 점을 만들어야 했을 것이다. 그리고 수많은 고심 끝에 한국형 좀비들이 탄생했을 것이라 믿고 싶다.




오컬트 영화? 좀비 영화?


고전 좀비 영화 팬으로서 한국 좀비들을 볼 때마다 가장 낯설었던 것은 좀비들의 움직임이었다. 좀비에게 물려 감염이 돼서 변하는 움직임은 오컬트 영화에서 흔히 보이는 (악령에 빙의 될 때) 그것이었다. 기괴하게 온몸이 비틀리면서 괴로워하다 마침내 좀비로 변하는 그 모습은 수많은 오컬트 영화에서 보여준 모습일 뿐 전혀 좀비라는 캐릭터의 특성에 맞지 않아 보였다. 전혀 과학적이지 않은 장르 영화에 그런 게 뭣이 중허냐 할 수 있겠지만, 필요 이상으로 기괴한 모습에 좀비 특유의 느낌이 들지 않았다. 새벽의 저주와 28일 후의 좀비에 오컬트 영화들의 신체 꺾기를 추가하고 때때로 골룸이나 디센트 같은 크리쳐들의 빠르고 동물적인 무브먼트를 합쳐놓은 느낌이었다. '방구석 1열' 이었던가, 부산행 특집에서 좀비를 연기하는 배우들 중에서도 그 움직임과 포즈의 난이도에 따라 급이 나눠진다는 에피소드를 들었다. 인간이 변한 괴물의 대표인 좀비가 대한민국으로 넘어오면서 가장 대표적인 특성을 버리고 보는 사람에게 공포심을 주기에 급급한 나머지 인간적인 모습이 주는 공포를 잃어버린 것이다. 결국엔 새로워 보이지만 조금만 멀리서 찬찬히 뜯어보면 전혀 새로울 것이 없는 끔찍한 혼종이 탄생한 것이다. 정말 억지스럽고 찌질하게도 부산행과 킹덤을 보면서 저 좀비 역할의 배우는 왜 몸을 저렇게 비틀고 손을 저 각도로 허공에 든 힘든 자세로 엄청나게 빠르고 날렵하게 주인공들을 위협할까 생각해보게 된다.



새로워서는 안되는 상업 영화의 한계.


'킹덤'이나 '부산행' 두 작품 모두 엄청난 자본이 투자된 상업 영화와 드라마이다. 시청자들에게 낯설게 느껴져 외면당하는 상황은 절대 피해야 하는 작품들인 셈이다. 그 결과 기존에 성공한 작품들의 모든 요소들이 모자이크처럼 가득 들어차 있다. 좀비의 등장에 고통받는 사람들, 그리고 그 후 인간들의 이기심과 권력욕으로 자멸하고, 결국엔 가장 약하지만 순수하고 선한 사람들이 살아남는다. 강한 주인공들이 갈등 속에 결국 자신을 희생하여 정의를 이룬다. 식스센스와 쏘우 이후 온갖 트위스트가 판을 치는 영화들 속에서도 꿋꿋이 남아있는 요소이다. 이런 고리타분한 플롯을 전개시키는 장치들 또한 전혀 새로울 것이 없다. 킹덤은 백귀라는 큰 위협에도 하나로 뭉치지 못하고 싸우는 인간들을 그린 '왕좌의 게임'의 분위기를 따라간다. 물론 조선시대의 시대상과 문화로 매끄럽게 포장해서 큰 위화감 없이 풀어낸 점은 훌륭했다. 하지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작품으로 대중들과 언론이 뿜어대는 열광적인 찬사는 다소 과분하다. 부산행은 정말 심각할 정도로 올드하다. 한 단계씩 더욱 강한 적을 상대하며 나아가는 횡스크롤 액션 게임처럼 열차 앞 칸으로 이동해가며 생기는 여러 에피소드들은 설국열차와 새벽의 저주를 섞어놓은 것뿐이었다. 좀비보다 인간이야말로 최고의 빌런이라는 점을 보여주기 위한 김의성 배우의 역할 역시 새벽의 저주, 워킹데드 등 수많은 영화에서 수없이 등장한 캐릭터의 모습을 답습하고 있다.


물론 연상호 감독이 부산행에서 이러한 좀비에 대한 사랑을 멈췄으면, 나는 고전 헐리우드 자본에 물든 좀비 영화에 정통성만 주장하며 자국의 영화를 트집 잡아 가며 무작정 까는 문화 사대주의 시청자에 불과할 수 있었지만, 연상호 감독은 반도라는 속편을 만듦으로써 나에게 어느 정도 정당성을 부여해 주었다. 대한민국의 수많은 상업 블록버스터 영화가 그렇듯, '반도'는 과하다 싶을 정도의(결코 오마주라는 단어로 넘어갈 수 없는) 표절력(?)을 보여준다. 폐허가 돼버린 도시 속을 유유히 운전하며 다니는 장면은 충격적일 정도로 '나는 전설이다'의 장면들과 닮아있다. 군복을 입은 용병단이 자신들의 세력을 구축하며 힘의 질서 안에 나름 체계적인 시스템으로 살고 있는 부분은 '시체들의 낮' '랜드 오브 데드' '28일 후' 그리고 드라마 '워킹데드'에서 조금의 가공도 없이 그대로 차용한 느낌이었다. 인간 포로들과 좀비들을 이용해 스포츠를 즐기는 장면 역시 여러 헐리우드 영화에서 인간의 포악한 본성을 보여주기 위해 보여졌던 전혀 새로울 것 없는 장치이다. (사일런트 힐이나 레지던트 이블 같은 호러 게임에 등장할 것 같은 비주얼의 여러 좀비가 합쳐진 괴물? 은 덤이다.) 화룡점정으로 최고의 액션 블록버스터 영화로 회자되는 '매드맥스'의 자동차 액션신을 서울 한복판으로 옮겨 놓은 마지막 하이라이트 장면은 턱 밑까지 차있던 실소를 큰 웃음으로 터지게 해주었다. '부산행'은 그래도 기차라는 고속으로 이동하는 밀폐된 공간이 주는 최소한의 독창성이 있었다면, '반도'는 단 한 개의 독창성도 없이 '헐리우드'같은 블록버스터를 만드는데 급급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런 식상함을 새롭게 만들기 위해 머리를 짜내어 떠올린 것이 바로 굳이 백덤블링 해가며 좀비로 변하는 장면이 아니었을까 싶다.





영화판에는 매니아가 부족하다? (웨스 크레이븐, 존 카펜터)


최근 (그래봤자 2년 전) 대학시절 감명 깊게 봤던 '기담'의 감독이 새로운 공포 영화를 만들었다고 해서 '곤지암'이라는 영화를 보고 너무 실망한 기억이 있다. 기담이 보여줬던 동양적이고 은은한 공포감 때문에 자신만의 바이브로 공포 영화를 찍는 감독이라고 생각한 내가 문제였을까, 너무도 밋밋하고 뻔한 장치들로만 가득한 곤지암은 내가 제목을 기억하는 공포 영화 Worst 5 안에 들 것이다. 곤지암을 안 봤다면 모르겠지만 그 감독이 방구석 1열에 나와 공포영화에 대한 자부심을 보여주며 하는 설명들을 차마 귀담아들을 수 없었다. 진또배기라고 생각했던 감독이 파라노말 드라이브, 라스트 엑소시즘 유형의 유명 영화의 포맷과 플롯을 따온 부산물 같은 작품을 만들었다는 사실은 너무나 실망스러웠기 때문이다.


연상호 감독의 좀비 영화 세 편(서울행을 포함)은 좀비 영화 교과서를 정말 엄격히 따른 작품들이다. 하지만 위에 언급한 연상호 좀비 영화의 특징들을 보면 한 가지가 눈에 띈다. 모든 아이디어들은 2000년대 이후 유명한 좀비 영화들에서 나온 점이다. 상업 영화 특성상 트렌드를 따라가야 한다는 것은 명백한 룰이다. 아무도 60~80년대 유행했던 느릿느릿 걸어 다니며 허공에 팔을 휘두르는 좀비들을 기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감독이 조금 더 욕심과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면 2000년대 히트작들의 편집물 수준의 작품을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컨저링이나 겟 아웃, 미드 소마 같은 현대 호러물들은 이미 고전적이면서 동시에 현대적일 수 있는 모습들을 충분히 보여준다. "한국식 좀비 영화 한번 만들어보자" 가 아니라 한국식 좀비 영화를 만들고 싶어서 안달이 난 감독이 필요하다. 대한민국에는 히트할 만한 좀비 영화가 아닌 좀비 영화사에 길이 남을 좀비 영화를 만들고픈 욕망에 가득 찬 좀비 매니아 감독이 필요하다.



그래도 부산행은 충분히 훌륭한 작품이다.


TV를 켜면 영화 채널만 보는 시청자로서 부산행은 그래도 충분히 훌륭한 작품이다. 다른 영화 채널에 볼 만한 영화가 없을 때, 부산행을 켜면 초반이든 중반이든 다른 채널에 재밌는 영화가 시작할 때까지는 계속 보게 된다. 좀비와의 액션신도 볼만하고 주인공들의 연기도 흥미롭다. 잘 만든 팝콘 영화랄까. 하지만 부산행에 쏟아지는 대중(그래봤자 SNS와 포털 사이트에 글을 쓰는 사람들일 뿐, 내 주변에는 부산행을 별로라고 평가하는 사람들이 태반이다)들의 찬사는 조금, 아니 많이 불편하다. '부산행' 그리고 '반도' 같은 영화가 한국판 공포 영화의 표준이 되면 어쩌나 하는 위기심 때문일 것이다.


'나는 네가 지난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는 90년대에 히트한 슬래셔 무비이다. '스크림'과 더불어 슬래셔 영화의 붐을 이끌어 냈고 그에 따른 부산물로 '해변으로 가다' '찍히면 죽는다'등 많은 아류작들이 (평균 이하 수준의) 생겨났다. 그렇게나 히트한 영화지만 누구도 그 영화를 명작으로 뽑지 않는다. 나에게 부산행은 딱 그 정도의 영화로 느껴진다. 발전해가고 있는 대한민국 영화에는 그보다 더 훌륭한 스탠다드가 필요하다. 이미 대한민국에는 '봉준호'라는 장르 영화로 전 세계를 제패한 전례가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