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하게 여기는 것

by seetoday

아이와 지내다 보면 눈에 담기에도 벅찬 순간들이 있다. 동시에 내 눈에 녹화기능이 되어서 파일을 드라이브에 자동업로드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뭐 이런 순간들. 예를 들면 반경 내에 핸드폰이 없는데,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아이가 처음으로 '엄마'를 말했던 순간, 벽을 짚고 이제 막 자리에서 서는가 싶더구먼 갑작스레 첫 발걸음을 몇 발자국 뗀 순간. 언어 발화가 이제 막 시작되던 시기에, 단어가 아닌 단어+단어+단어로 하나의 문장을 어설프게 표현하는 순간.


꼬마가 태어나고 자란 지 1300일이 넘어가는 지금. 내 드라이브 용량이 매우 부족하다. 더 많이 그리고 더 선명하게 기억하고 싶은 순간들은 나의 마음과는 달리 흐릿해지기도, 부분 삭제가 되기도 한다. 아쉽고 또 아쉬운 순간들. 이런 감정들 마저 아이를 키우는 데에 같이 녹아내는 것이라고 여기면 한결 나아지긴 하지만 아쉬운 마음은 여전하다.


꽤 많이 자란 꼬마는 매일 매 시간마다 또 커간다.


키와 몸무게뿐만 아니라 아이의 마음도 함께 커가는 게 느껴진다. 절대적 T인 엄마와 함께 지내느라 고생하는 우리 F아들. 그나마 아들이 F라서 꽁꽁 얼어붙은 나의 T가 조금은 녹아져 막대기 반절은 더 붙는다. 그렇게 소문자 f정도 되는 것 같기도. 그렇게 녹아지는 내 모습이 낯설지만 반갑다. 애써도 잘 안되던 내 마음이 아들로 인해 쉽게 녹아지는 건 그렇게 나에게 반가운 일.


사진을 찍는 일을 하면서, 한창 예쁠 시기의 아이들을, 가족들을, 순간들을 담아내고 있다. 그러면서 어떤 점이 가장 중요할까 에 대한 고민은 끊임없다. 가까운 사람들은 날 보며 '피곤하게 산다'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드라이브 용량이 부족하다면서 항시 드라이브를 돌리고 있는 내 모습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늘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무엇이 좋을지'에 대해서 말이다.


사진을 담는 순간에 나 또한 즐거워야 하고, 담기는 존재들 또한 즐거워야 한다. 시간은 똑같이 주어지는데, 나에게 주어진 나의 시간 외에 다른 존재들의 시간까지 합쳐서 함께 흘려보내야 한다는 건 꽤 막중한 책임감이 주어진다고 해야 할까나. 아무튼 그런 약간의 부담감과 책임감을 안고 시간을 보낸다. 자연스러운 사진을 추구한다면서 부담감과 책임감이 같이 있다고 하면 아이러니하게 여겨질 것 같기도 하다.


가끔씩 주변에선, 우리 집 꼬마를 보며 '좋겠다'라는 표현들을 많이들 해주신다. 아무래도 엄마 아빠 모두 사진과 영상을 담는 일을 해서일까. 어쩌면 꽤 많은 부모들은 본인의 자녀의 순간들을 담아내는 일에, 나와 같이 용량 부족을 경험하고 있는 건 아닐까 싶다. 모두가 모든 순간들을 담아내고 싶은 그 마음이 어쩌면 같은 것 같달까. 하염없이 셔터를 눌러대다가도 눈으로도 봐야 하고 담아야 하기에 사진첩 속 사진을 보면 sns에 올릴만한 마땅한 사진을 발견하지 못하는 뭐 그런 순간들.


어쩌면 그래서 전문가의 손을 빌려 사진을 담는 일이 더 많아지는 걸 수도!


그럼에도 아쉬운 점은, 전문가의 손엔 기술이 담겨 있지만, 내 아이와 소통하는 정말 날것의 교류가 조금은 덜한 장면으로 담긴다는 게 아쉬운 점이다. 특히나 아이들은 정말 날것의 상태, 마음이 편안한 공간에서만 보이는 표정들이 있다. '집에서는 잘 웃는데', '낯을 조금 가려서요', '스튜디오만 가면 얼음' 등의 이야기들이 오간다. 이건 뭐 카메라에 익숙한 우리 집 꼬마도 마찬가지이다. 어째 나이가 지날수록 비협조적으로 바뀌는.


"찍지 마!"를 외치는 모습을 보기도 한다.


아이는, 그 순간에 엄마랑 아빠랑 더욱 날것의 정서적 교류를 나누며 그 시간에 녹아지는 것을 원한다. 같이 보내는 시간에 대한 갈증은 아이들에겐 더욱 끝없는 욕구와 같지 않을까 싶다. 채워도 채워도 더 원하는 듯할 때가 있다. 그런 모습이 애착이 잘못 형성된 건 아니냐, 애정결핍 아니냐 둥둥 떠다니는 사회 안에 다양한 단어들로 그룹 지어 아이들을 묶고 진단을 하려고 할 수도 있지만.


난 캥거루 주머니 속 꼬마 캥거루처럼. 모든 아이들은 그렇게 품 안에 있고 싶은 마음이 있다고 생각이 든다. 스킨십을 싫어하고 극단적인 T였던 나의 어린 시절에도, 나는 나만의 방법으로 품 안에 머물고 싶은 욕구를 표현해 왔으니 말이다.


그렇다 보니, 아이의 순간을 자동녹화할 수 있는 나의 안구가 필요하다고 더욱 생각이 드는 요즘인데. 보고 또 보고 남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내 마음이니까. 아무튼 그건 언젠가 개발이 되려나. 개발이 되면 합리적인 가격에 판매가 되었으면 좋겠네. 나도 하나 장착(?)하게.


우리 집 꼬마랑 시간을 공유하면서 중요하게 여기게 된 것이 있다. '진심'으로 시간을 보내는 일. 하루에 1시간을 놀아주더라도, 10분을 놀아주더라도 '내가 너와 진심으로 놀고 있다', '나는 너와 진심으로 교류하길 원한다'라는 마음을 전하는 일이다. 이 문장에 공감하는 엄마들도, 비난하는 엄마들도 있을 수 있지만, 아무튼 난 진심으로 하려고 노력을 한다.


꽤 힘든 시간을 보낼 때, 아이가 태어난 지 만 일 년도 채워지지 않은 시기였다. 눈물이 워낙 없고 잘 참는 편이었던 나는, 꼭 아이가 잠들면 그 옆에서 어떤 소리도 내지 않고 눈물만 뚝뚝 흘리곤 했다. 아무도 모르게 말이다. 그런데 태어난 지 만 일 년도 안된 그 작은 돌멩이 같던 꼬마는 기가 막히게 내 감정을 캐치해 냈다. 잠들면 몰래 울었던 나였지만, 그런 날이면 꼭 자다가 깨거나, 잠들기 전까지 내 품에 안겨있거나. 어쩌면 내가 꼬마를 안고 있는 게 아니라 꼬마가 날 안아주었던 밤이었던 거겠지.


그렇게 아이가 커갈수록, 시간 안에서 진심을 다하는 게 아이와 나에게, 가족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닫게 되었다.


아직은 기술 개발이 덜 되어서, 안구에 녹화기능이 없으니 이 소중한 순간들을 사진으로 담아야 되는데. 그러다가 문득 자연스레 된 일은. 카메라를 든 상태로 아이랑 즐겁게 노는 것이었다. 물론 그렇게 놀다 보면 담고 싶은 장면 10장 중 4~5장을 놓치는 일이 잦았다. 그럼에도 남겨진 컷 중 2~3컷엔 누구보다 자유롭게 웃고 있는, 카메라 렌즈를 보고 있는데 마치 노는 순간의 엄마와 눈을 마주한 듯한 표정에 꼬마를 담을 수 있었다.


그렇게 내 아이와 충분하진 않아도 진심을 다하는 일. 그 시간 안에 완전하게 녹아드는 일을 통해 내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게 무엇인지 조금은 더 선명해지게 되었다. 우리 집 꼬마를 통해 배운 것으로 또 다른 꼬마들과의 만남을 이어가고 있고, 그 안에서 아이들을 온전히 사랑해 본다. 내 마음이 미처 닿지 못하더라도, 꼬마들의 일생에 짧은 시간일지라도. 내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진심 어린 마음으로 꼬마들을 마주할 때면, 어느 순간 시간과 사진 안엔 서로가 녹아져 있다.


아무쪼록 모든 시간이 행복하고 달콤하기만 바라는 것은 꽤나 큰 욕심이겠지만, 바라는 일에 까지 책임을 물으며 화를 낼 사람들은 없을 테니. 매 순간이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대로, 흘러가지 못하더라도 지금처럼 생각을 멈추지 않는 일, 마음이 닿도록 애쓰는 일, 이 모든 게 결국 어디론간 새어갈 것이고, 그곳은 꽁꽁 얼어붙기보단 녹아지는 일 일 테니. 그것만으로도 설레고, 감사한 일이다.


오늘도 꼬마를 통해 생각하고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음이 참 감사한 일. 여전히 너로 인해 배울 수 있어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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