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변화는 누군가에겐 기회다
기회를 잡기 위해 나를 소용돌이 속에 던졌다
그렇게 회사 생활에 지쳐갈 때쯤, 탈출의 기회는 한번 더 찾아왔다.
바로 내부에서 일어난 획기적인 조직 개편!
보직장은 혁신을 원했으나, 파트장급들은 이를 원치 않는 대치 상황이 수개월간 지속되었다.
이러한 대치 전선에 나타난 한 사람이 있었으니 주재에서 복귀하신 이후 각종 T/F를 섭렵하시다가 이 그룹에 손을 들고 오신 부장님이셨다.
그는 기존 파트장과는 매우 다른 결의 사람이어서 새로운 매출 동력을 찾아내야 한다는 그룹장과 생각이 잘 맞는 분이셨고, 우리 그룹에서 유일하게 이런 성격의 프로젝트를 주도할 수 있는 분이셨다.
조직개편을 하며 이 부장님을 파트장으로 한 신규 사업 파트가 만들어졌다.
아무에게도 말한 적 없지만 그분이 우리 그룹에 오신 건, 기존 파트에서 반복되는 일과 이 회사를 나가면 쓸 수 없는 일들에 파 묻혀 일하는데 지쳐가던 나에게도 한 줄기 빛이었다.
어차피 지금의 내 관리자는 내 업무나 커리어에 관심이 없다. 아무리 말해도 밀어줄 사람은 따로 있으니까.
밀어주는 사람들의 업무 평판은 평범했지만, 파트장의 학벌이나 경제력에 대한 열등감을 잘 이해해 주는 사람들이었다.
애초 성향상 난 누군가 나에게 열등감을 느끼면 가까워질 수 없다. 특히 그 사람이 내 상사라면 더더욱. 평가의 기준도 모호하고, 업무마저 지루한 이 상황. 탈출 밖엔 답이 없다 생각했다.
새로운 매출 동력을 찾는 건 쉽지 않지만 그만큼 일이 다이내믹하다는 뜻이다.
어차피 지금 상황에서 잃을 게 없다고 생각한 나는 과감하게 손을 들고 신규 파트로의 이동을 단행했다. 이동의 과정도 쉽지 않았다. 이동하겠다고 파트장에게 선언했을 때 왜 가는 것인지, 꼭 가야만 하는지 파트장의 질문이 이어졌고 나는 그의 마음이 상하지 않도록 고민하며 최대한 업무와 추구하는 커리어 방향을 구실로 답해야 했다. 그룹장은 신규 파트원을 찾고 있었기 때문에 뒤로는 그룹장님께 직접 가서 이동을 원한다고 면담하며 자연스러운 이동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탈출만 성공하면 이것이 내 회사생활에 전환점이 될 기회일 거라 생각했기에 과감하지만 신중하게 이동을 위한 작업을 했고, 결국 난 그룹장의 강력한 지지 하에 이동에 성공했다.
신규 파트에서 나에게 주어진 미션은, 새로운 프로덕을 만들어내어 신규 매출 동력을 확보하는 것과 함께 이제 과장이라는 직급을 달았으니 후배를 양성해 보라는 것이었다.
사실 후배 양성이 가장 마음에 들었는데, 기존 파트에선 진급 한 지 얼마 안 된 나는 중요도가 낮은 업무를 부여받았기 때문에 (위에서 신경 안 쓰는) 다른 사람들과 교류 없이 혼자 일하는 시간이 많았다. 8시간 이상의 회사 생활에서 짝이 된 동료와 업무 이야기 + small talk을 섞으며 삭막한 회사생활을 이겨낼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기대였다.
하지만 우리 파트를 향한 기존 세력의 반발은 매우 거셌다. 치열한 밥그릇 싸움 속에 파트의 머릿수를 뺏긴 기존 파트장들의 뒷다리 잡기가 시작됐다.
우리 파트장은 기존 파트장들의 공격 1순위 대상이 되었고, 우리 파트원들이 주간 보고를 할 때면 파트원의 직급과 상관없이 기존 파트장들의 폭격이 이루어졌다. 일을 되게 하겠다는 일념하에 밀어붙이는 우리 파트장의 성향이 기존 사람들에게는 불편했으리라 이해는 되지만,
그 아래 식구들을 대상으로 사원/대리 직급을 가리지 않고 행해지는 부장 어르신들의 폭격은 그 자체가 인류애 상실의 현장이었다.
주변은 이렇게 매일매일 폭격이 오가는 전선이었지만, 나는 기존에 쌓아놓은 성과와 평판 덕에 그들의 전방위 공격대상에 포함되지 않아 비교적 안전했고, 자유로운 의견 개진이 가능했다.
적어도 그동안 맡은 업무는 제대로 해 왔고, 담당 업무에 대한 사전 공유도 정확히 하는 편이라 딱히 기존 세력에 공격의 빌미를 제공할 게 없었다.
또한 그들을 자극해 봤자 좋을 게 없기 때문에, 업무 외 필요한 대화는 최소화하되, 그들과 대화할 땐 위장된 친절함을 장착하고 대응했다.
외부에 적이 있으면 내부의 결속력은 공고해지는 법. 공격의 최전방에서 매일 얻어맞기 바쁜 파트장과 파트원들은 서로의 상처를 닦아주고 위로하며, 동료애를 넘어 전우애를 다져갔다.
파트의 허리였던 나는 위와 아래의 고충을 들어주며, 치열하게 할 일을 밀어붙여가며 매일 바쁜 나날을 보냈다.
그렇게 나는 이 파트에 오래 남을 수 있길 바라며 입사 이래 가장 만족스러운 회사생활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