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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음 Dec 30. 2023

서른을 맞이하는 자세

어른과 아이의 가교 사이에서



내일모레 서른이 현실로 닥쳤습니다(소름). 아무도 묻지 않은 심경과 포부를 밝혀야겠어요. 생각해 보니 직업상 남의 심경과 포부를 들을 일은 많은데, 제 얘길 꺼낸 적이 거의 없는 듯합니다. 사실 묻지 않으면 새삼스러워서 말하지 않게 되니까요. 하루는 인터뷰이와 진득한 대화를 나누는데, 지금 한 말이 박제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니 조심스럽다고 하더군요. 돌이켜 보니 너무 솔직했나 봅니다. 공감형 인간인 저는 그도 그럴 법하다면서 고개를 끄덕입니다. 괜히 쑥스럽고 지키지 못할 말 했는데 기록되면 부담될 것 같다면서요. 아이와 어른의 차이라면 뱉은 말에 대한 책임에 대한 경중을 달리 느낀다는 게 아닐지요. 어린이가 "내 꿈은 대통령"하면 귀엽게 봐주겠지만, 삼십줄 평범한 직장인이 이런 의지를 내비쳤다가 확신의 맑눈광이라는 오해를 받기 십상입니다. 맑은 게 마냥 좋아 보이는 나이가 아니니까요. 해를 거듭할수록 아이의 마음이 그립습니다. 아이에게만 있는 혜택이 있다는 걸 어른 비슷한 게 돼서야 깨닫습니다.


눈 펑펑 쏟아지는 눈부신 날입니다. 뽀득뽀득 눈 밟는 소리가 제법 운치 있습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골칫거리(쓰레기)라는 생각이 안 듭니다. 출근날이 아니라서 그런가 봅니다. 연말 버프도 좀 있고요. 한 어린이가 가족과 함께 눈사람을 만들러 나왔습니다. 본인 몸집만한 삽을 들고 신나게 눈을 퍼다 나릅니다. 그 모습이 퍽이나 예뻐 보여 입꼬리에 미소가 번집니다. 너의 마음은 맑고 흠 없는 것일까 싶어서, 그 마음을 오래도록 지켜주는 어른이 곁에 있기를 바라며 말이죠.


흔히들 아홉수라고 하는 나이를 지나 서른을 앞두고 있습니다. 피부의 기미와 잡티, 주름이 늘었습니다. 다달이 나가는 지출 탓에 만남이 부담스러운 나이가 됐고요. 부모님에게 강아지 양육비와 쌈짓돈 챙겨 드리는 정도는 법니다. 꼴랑 몇 푼 주면서 "내가 이거 어떻게 버는 줄 알아?~"라고 거드름도 피웠습니다. 효녀 행세를 하고 싶은 건지, 불효녀는 면피할 생각인지 노선을 확실히 해야겠습니다. 솔직히 후자를 택하는 게 나을지 싶습니다. 매번 "대충해~"하면서 기대치를 낮추면 평타 이상 치기 쉽다는 직장 선배의 인생 답안지 같은 명언이 떠오릅니다. 하지만 그는 베테랑 기자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학생 땐 서른이 무척 멋져 보였습니다. 체력과 재력과 능력을 두루 갖춘 대체 불가 유능 인재가 되겠다는 희망 사항이 있었죠. 사원증을 목에 걸고 한 손에는 아메리카노를 쥔 직장인이 어찌나 근사해 보이던지요. 이 좁아터진 서울 구석에 네놈이 일할 데스크 하나를 선사하겠노라. 소속과 직책, 직함이 적힌 명함을 파주겠노라. 네놈의 노동값을 급여로 쳐주겠노라. 동의하면 계약서에 서명하거라. 일련의 과정을 거쳐 서울의 직장인 인증 절차를 마친 지 몇 년이 지나도 여전히 막내입니다만.


"서른 되면 어때요?"라는 막연한 질문을 주변에 던진 적 있습니다. "오늘 점심 뭐 드셨어요?"라는 질문과 진배없습니다. 특별한 대답을 기대하지 않았단 의미입니다. 상대가 어떤 답변을 내놓아도 수긍할 것 같았기 때문이죠. 계란말이를 먹었나, 돌솥비빔밥을 먹었나, 제육볶음을 먹었나, 반찬이 생각보다 별로였나, 오늘은 간이 싱거웠다나, 예상외로 맛집이었다나 아무렴 어때. 이는 오랜 시간 서른이라는 나이가 품은 느낌에 대해 어렴풋이 짐작해 왔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어른, 서른 그 어느 하나 온전히 내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이토록 애매한 나이를 맞이할 준비를 합니다. 한 해가 되면 세우게 되는 다이어트 계획과 어학 점수 목표, 그 외의 것들을 다가오는 해 만큼은 내려놓으렵니다. 삶의 계획은 계속 수정되기 마련이니까요.


부디 안온한 서른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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