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지나가기로 했다

어젯밤, 낯선 전화 한 통

by 정은세

인생은 살만해서 가치가 있다는 말도 있지만,

꼭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다만, 내 경우엔 직업상 책을 읽고 꾸준히 글을 쓰고, 생각을 많이 할 수밖에 없는 환경인지라, 다행히 "훌훌" 털어내는 편이다.


어쩌면 뒤늦게 체험하고 배운 쓰라린 경험들이

모든 이에게 인정을 받지 않아도, 때로는 체념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음을 배우게 된 것 같다.


다행인 건, 나쁜 경험 혹은 나에게 좋지 않았던 대상에게 받은 억울함이나 원망들을 고스란히 다른 이에게

돌려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쩌면 내가 성숙하지 못해서 벌어진 일들이고, 나를 힘들게 한 대상이나 상황은

배우지 말자는 주의다.




어젯밤, 띠리링~모르는 번호로부터 전화가 왔다.

노년의 음색을 지닌 한 남성의 목소리..


"여보세요~"

"저.. 선생님.. 제가 차를 주차하다 실수로 차를 긁었습니다.

잠깐 나와서 보시면 안 될까요?.."


모든 일을 마치고 옷을 갈아입고 쉬려던 상태라

순간 짜증이 모락모락 밀려왔다.

"알겠습니다~"


통화를 끊고 주차장으로 나가니, 약 70대 초~중반의 노인이 긴 세단을 반쯤 세우고, 고개를 떨구고

손을 모은채, 마음을 졸이고 있었다.


"제가 주차하다 긁었는데, 좀 보시겠어요?"

"네~많이 긁힌 것 같진 않은데, 내일 날 밝고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네~"


속상하고 억울한 마음에,

"제 차가 작아서 웬만하면 긁힐 일은 없을 텐데요.."

한마디 덧붙였다.


"죄송합니다~"




뒤돌아서 생각하니 CCTV가 있는 지하주차장도 아니고,

외부 주차장이니 일반적인 사람이면 그냥 지나칠 법도 한데, 오히려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노년에 방향성과 공간감각이 떨어져 동네 인근 밖에 운전 못하는 아빠의 모습도 지나갔다.

그리고 한참 전이지만, 운전 초보시절 옆에 주차된 차를 긁었을 때 괜찮다고 용서해 주시던 중년의 남녀-지금은 노년이 되었을 분들이 스쳐 지났다.






그렇게 또 잊고 아침..

"안녕하세요.. 차량 확인하셨나요.."


이미 마음은 어제 무마하려고 결심했었지만,

다시 차 상태를 확인하고, 문자를 했다.

예의를 갖추고 "어르신"이라는 문구를 사용하려다가 주춤한다. 중년이 "생신"이라는 문구를 싫어하고

"생일"이라는 단어를 선호하는 것처럼, "나이 듦"을 질책하는 것 같은 생각도 들었기 때문이다.


"네~확인했습니다. 흠집은 있지만 경미해서 그냥 지나가기로 했습니다. 걱정 안 하셔도 될 것 같아요."

"예... 감사합니다."






화창한 날씨처럼, 마음이 갠 하루.

청명한 가을 하늘처럼 싱그런 날들이 펼쳐지길 기대한다.





#선택 #성찰 # 일상 #감정 #마음다짐

-평창. 이효석의 "푸른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