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떡국을 얼렁뚱땅 삼켰어

by 세은


금요일 아침.



세 사람이 우당탕탕 함께 나왔다가 혼자 들어간다. 월요일도 그랬고 화요일도 그랬는데, 이상하게 금요일은 혼자 들어가는 발걸음이 무겁다. 주말을 앞두고 마음이 분주해지는 것은 주말병이라고 해야 하나. 월요병은 익숙한데. ‘일요일 저녁부터 마음이 가벼워지는 걸 보면 월요병은 완치가 된 건가’라고 생각하며, 21층에서 도무지 내려올 생각이 없는 엘리베이터를 멍하니 기다린다. 슬쩍 옆을 보니, 이사 오는 날이구나. 갖가지 물건들 틈에 끼어 있을 21층의 주말을 떠올리며 나의 주말을 위로한다. 덩치 큰 장롱으로 가득 찬 엘리베이터에 겨우 몸을 구겨 넣었다가 다시 나왔다. 그냥 걸어 올라가기로 한다.



5층쯤 올라가니 아이 생각이 난다. 엄마가 되고부터는 모든 생각의 연관검색어가 아이가 되어버린다. 아무 연관이 없는데도. 계단을 오르다가 초록색 비상구 유도등과 눈이 마주쳤을 뿐인데. 유치원에서는 한 달에 한번 화재대피훈련을 한다. 훈련을 받고 온 날에는 종일 그 이야기로 온몸이 들썩거린다.



“코를 막고 몸을 숙이고 침착하게 대피해야 해 엄마. 엘리베이터는 절대 안 돼. 계단으로 내려가야 하는데 초록색 비상구 있지? 그걸 따라가면 돼. 알겠지? 엄마도 해봐.”



몸소 대피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따라 하라는 말에 덩달아 긴박해졌다. 성대를 납작하게 눌러 화재경보음 소리를 내고 코를 막고 엉거주춤히 허리를 숙여 후다다닥 대피했다.



“엄마 그게 아니고. 마구마구 뛰면 사람들이랑 부딪혀서 위험해. 이렇게. 침착하게 하는 거야. 다시 해봐.”



너무 후다다닥이었을까. 저도 못지않게 파닥거렸으면서 나의 몸짓이 영 위험해 보였나 보다. 아마도 비상계단이었을 거실 몇 바퀴를 돌고 안방으로 대피하기를 반복했다. 안방에도 연기가 들어오기 시작했다며 놀이방으로 후다다닥 뛰어가더니 병풍을 빙 둘러 작은 대피소를 만들었다. 나더러는 침착하게 움직여야 한다고 해놓고서.



“포포야. 마구 뛰면 안 된다고 하지 않았어? 침착하게 대피해야 한다더니 너무 마구마구 뛴 거 아니야~?”

“엄마! 불이 너무 커져서 연기가 가득하지 뭐야. 얼른 들어와!! 자. 내가 대피소 만들었어. 여기로 들어와. 여기는 안전해.”



이 정도 연기면 후다다닥 대피해도 되는구나 싶어, 후다다닥 대피소 안으로 들어갔다. 안심하듯 가슴을 쓸어내리며 하는 말.



“우리가 얼렁뚱땅 여기로 대피해 버렸어.”



‘얼렁뚱땅’을 어디서 익혀왔는지 요 며칠 여기저기 써먹더니, 이 긴박한 순간에까지 등장하고야 말았다. 음. 얼렁뚱땅은 아닌 것 같은데. ‘허겁지겁’ 정도로 고쳐주려다 이내 말을 삼켰다. 정말 얼렁뚱땅 도망쳤을지도 모를 일이니까. 얼렁뚱땅이라고 하니, 대피하는 척인데도 괜히 긴장한 목소리와 힘이 잔뜩 들어간 눈썹이 스르르 풀려버렸다. 안방 대피소에까지 연기가 흘러들어와 어쩔 줄 몰라하다 얼렁뚱땅 만들어진 그 작은 대피소가 마치 보호막을 씌운 성역처럼 느껴졌다. 아무리 불길이 거세져도 여기만은 안전하겠다 싶은.



그 일이 있은 후로 삼일쯤 지나서였나. 저녁으로 떡국을 먹다 또 ‘얼렁뚱땅’이 등장했다. 뜨거우니 후후 잘 불어서 먹으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첫술에 입에 불이 났다며 냉수를 찾았다. 뜨거운 떡국과 차가운 물을 단숨에 삼키더니 씩 웃는다.



“엄마. 내가 떡국을 얼렁뚱땅 삼켰어. 너무 뜨거워서 차가운 물이랑 같이 얼렁뚱땅 넘겨버렸어.”



아무래도 얼렁뚱땅을 잘못 배운 것 같은데. 이번에야말로 바로 알려줘야겠다고 생각하는데 아이의 말이 이어졌다.



“떡국이 너무 뜨거운 거야. 목구멍으로 넘기려는데 그만 해가 되어버린 거야. 그래서 차가운 물을 부었지. 그랬더니 얼렁뚱땅 잘 넘어갔어.”


떡국이 너무 뜨거워 해가 되었다니. 그럼에도 얼렁뚱땅 삼켜주었다니. 혀가 데일 정도로 뜨거운 음식을 준 엄마를 탓하지 않고, 충분히 후후 불어먹지 않은 저를 탓하지도 않고. 그저 차가운 물로 얼렁뚱땅. 이번에도 제대로 알려주긴 글렀구나 하며 아이의 말에 맞장구쳤다.


“그러네. 해처럼 뜨겁긴 했지? 좀 더 식혀서 줄걸.”

“아니야 엄마. 너무 뜨거울 땐 차가운 물만 있으면 돼. 얼렁뚱땅 삼키면 안 뜨거워져.”

“맞아. 포포말이 맞네. 얼렁뚱땅 삼키면 되겠다.”



뜨겁다고 파닥이며 입안에 넣고 있어 봐야 혀만 고생일터. 얼마나 뜨겁든 차가운 물 부으면 식겠지. 그렇게 얼렁뚱땅 먹어버리면 그만이지. 그러니까 ‘얼렁뚱땅’이 맞겠다.



주말을 고민해 봐야 뭐 하나.



후회 없는 주말을 보내야 할 것만 같고. 주말의 세 끼는 평일보다 특별해야 할 것만 같고. 핸드폰을 열어 그럴듯한 것들을 열심히도 찾았다. 바빠질 집을 대비해 이틀 치 집안일을 서둘렀다. 냉장고는 채우고, 빨래바구니는 비우고. 손이 닿는 곳은 모조리 닦아둔다. 그렇게 초조하게 주말을 기다렸다. 내가 자초한 주말병이었구나. 얼렁뚱땅 주말을 보내면 될 것을. 그러면 금요일도 얼렁뚱땅 어제처럼 보낼 수 있을 텐데.



각자 보냈을 어제의 시간들이 한자리에 모여있으니 주말은 내내 함께 흐를 수 있다. 시계를 보지 않아도 된다. 눈이 떠지는 대로 일어나고, 배꼽시계 소리가 들릴 때 설렁설렁 주방으로 향하면 된다. 더는 못 먹겠다 싶게 배가 부르면 어쩌겠어. 산책을 해야지. 가는 길에 바다를 만나면 신발을 벗으면 되고, 카페를 만나면 후식을 먹어야겠다. 혹시 몰라 책도 두어 권 챙기고. 산책이 길어지면 점심은 밖에서 먹지 뭐. 냉장고는 가득 차 있지만, 일요일이 지나면 월요일이 올 테니까. 그렇게 얼렁뚱땅 주말을 보내야지.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17층. 우리 집은 12층인데. 5층의 비상구 유도등에서 떠오른 아이를 따라가다 보니 다섯 개 층이나 더 올라와버렸다. 얼렁뚱땅 내려가야겠다. 냉장고가 많이 비어있던가? 남편이 주말에 과학관에 가자고 했던가? 모르겠다. 어차피 얼렁뚱땅 주말을 보낼 테니.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오늘도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