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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자리는 티가 나야 비로소

by 세은



친구의 둘째가 병원에 입원한 주말. 마침 동네에서 바다 축제를 한다기에 그녀의 남편과 첫째도 함께 가자고 제안했다. 돈독한 부자 관계를 알기에 축제가 아니어도 충분히 즐거운 주말을 보낼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네 사람이 빙 둘러앉아 늘 복닥복닥했을 동그란 식탁이 괜히 신경 쓰였다. 남은 두 사람이 널찍하게 마주 앉아있을지, 여전히 양 옆으로 딱 붙어 앉아있을지. 그들은 흔쾌히 수락했고, 우리는 바다에서 만났다.



나의 아들 지안과 친구의 첫째인 지원. 둘은 갓난쟁이일 적부터 같이 커왔다. 이름도 비슷해 언뜻 형제 같기도 한 두 사람은 종종 진짜 형제처럼 투닥거린다. 다른 친구들에게는 쉽게 양보하는 것들에도 야박히 굴다가, 엄마의 눈을 피해야 하는 일에는 둘도 없는 협력자가 된다. 기질도 취향도 무척 다른 두 사람이 서로에게만 off 모드가 되어 긴장을 푸는 걸 보면, 세월은 생각보다 힘이 세다. 52개월의 역사를 함께 썼으니 그들에겐 세월이고 평생일터.



점심시간이라 일단 먹거리구역으로 향했다. 각 동별 부녀회에서 편육, 해물부추전, 순대, 떡볶이 등 비슷하면서도 다른 음식들을 팔고 있었다. 두 팀으로 찢어져 적당히 실패하지 않을 만한 것들을 들고 파란색 플라스틱 테이블에 모여 앉았다. 옆 테이블의 막걸리가 부러운 것만 빼면 그럭저럭 먹을만했다. 오랜만에 먹는 떡볶이에 자꾸 손이 갔는데 친구가 생각났다. 친구와의 20대는 8할이 떡볶이였다. 대학시절 자주 가던 떡볶이집을 이야기하며, 병원 복도에서 둘째를 졸졸 따라다니고 있을 그녀를 떠올렸다. 지안은 점점 장난을 치기 시작했고, 식사에 집중하라는 말과 장난감은 그만 내려놓으라는 말이 앞다투어 오고 갔다. 밖에서 밥을 먹을 때 더욱 산만해지는 아이의 모습은 익숙한 일이었는데 그날따라 뭔가 이상했다. 그러고 보니 한놈이 얌전했다. 지안은 늘상 하던 대로 장난을 치고 있었고, 지원은 평소와 달리 엉덩이가 무거웠다. 아침을 많이 못 먹었다기에 ‘배가 많이 고팠나 보다’ 했지만, 아무래도 익숙한 모습은 아니었다. 내가 아는 지원은 배가 고프다고 저렇게 고상하게 앉아 음식에 성의를 다하는 사람이 아닌데.



식사 미션을 끝낸 아이들은 바빠졌다. 볼거리와 체험거리가 즐비한 구역을 빠르게 지나, 파도가 모래 위로 올라왔다 돌아갔다 하는 바다의 초입에서야 걸음을 멈추었다. 바지를 걷어올리고 조개를 줍기 시작했다. 큰 조개, 작은 조개, 부서진 조개. 혹시 몰라 챙겨간 모래놀이 장난감들을 꺼내어 제대로 모래놀이를 시작했다. 그래도 명색이 축제인데. 축제를 등지고 앉아 모래만 성실히 퍼담는 그들을 멀뚱히 바라보았다. 오른쪽으로 또 왼쪽으로 두리번거리니, 바다는 축제가 아닐 때보다도 모래놀이로 떠들썩했다. 그럼 그렇지. 바다가 눈앞에 있는데, 모래알이 신발 속으로 파도처럼 밀려오고 있는데. 축제는 배경이 될 수밖에.



뒷배경에서 넘어오는 꽹과리 소리. 겹겹이 밀려오는 파도 소리. 달그락달그락 조개를 바구니에 담는 소리. 해초더미를 쓸어 담고 가는 중장비차 소리. 이따금씩 존재감을 드러내는 갈매기 소리. 이 모든 소리가 신기하게도 잘 어우러졌다. 소리들의 한가운데서 엉덩이 붙이고 앉아 아이들의 모습을 그저 눈에 담기만 하면 되는 그 순간은 꽤 낭만적이었다. 현실감이 들지 않을 정도로. 그 순간, 빽 하고 울리는 지안의 성난 목소리가 낭만에 잠길뻔한 나를 다시 현실로 불러들였다.



“내 거야! 내가 먼저 하고 있었어!”

“아니야! 이거 내 거야!”



지안과 지원이 익숙한 톤으로, 익숙한 대사로, 몹시 익숙한 상황을 두고 투닥대고 있었다. ‘네 것도 내 것, 내 것도 내 것’이어서 나는 싸움. 하나의 모래틀에 두 사람이 붙은 상황이었다. 물건을 선점한 사람은 지안이였고, 물건의 주인은 지원. 양보할 마음이 한 톨도 없는 두 사람은 경쟁하듯 언성을 높였고, 급기야 지안이 지원을 밀쳐버렸다. 두 손으로 밀다 보니, 손에 꼭 쥐고 놔주지 않던 모래틀이 툭 떨어졌다. 지원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재빨리 모래틀을 챙겨 열 걸음 정도를 종종거리며 달아났다.



“전지안! 안되지. 미는 건 안 되는 거지. 이리 와. 지원이한테 뭐라고 해야 해?”

“근데.. 내가 먼저 하고 있었는데!”

“지원이 장난감이 맞잖아. 주인이 달라고 하면 주는 게 맞아. 설사 네 것이었다고 해도 미는 건 안 되는 행동이야. 뭐라고 해야 해?”

“미안해 지원아..”



아무래도 억울한지 지안의 사과가 모래 속으로 기어들어갔다.



“사과는 모래 말고, 지원이 보고 해야지.”



지원은 열 걸음 너머에서 모래틀을 꼭 움킨 채 우리를 보고 있었다. 지안은 다른 삽 하나를 쥐고 터덜터덜 지원이 있는 곳을 향했고, 나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뭔가 또 이상했다. 익숙한 다툼이라고 생각했는데 묘하게 위화감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지안이만 밀었다. 보통은 서로 밀었는데. 한놈이 밀면, 또 한놈도 밀고, 그러다 끝내 지원이 울며 엄마를 찾고, 서둘러 달려가 각자의 아이를 혼내고 달래고. 이들은 늘 이 순서로 싸웠는데, 오늘의 싸움은 한놈이 밀고 끝. 그러니까, 지원의 싸움방식이 달랐다. 덩달아 밀지 않고, 울지 않고, 엄마를 찾지 않고, 떨어진 목표물을 영리하게 쟁취했다. 아무래도 내가 아는 지원이는 아니었다.



그 뒤로 나의 시선은 내내 지원을 맴돌았다. 호기심과 오지랖이 뒤섞인 시선으로. 지안이 혼나고 있으면 동그란 눈을 더 동그랗게 뜨고 “저는 안 그랬는데요.”라고 덧붙이는 지원의 사투리가 영 구수하질 않았다. 지원의 옆에 있는 지원아빠의 어깨도 왠지 모르게 지난번보다 매가리가 없었다. 더없이 평화로웠지만 무언가 부족했다. 제 기량을 마음껏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느낌이었달까. 지원아빠가 핸드폰을 들더니 놀고 있는 지원과 바다를 번갈아 비추더니 이내 핸드폰을 향해 활짝 웃었다. 그 속엔 나의 친구와 그들의 둘째 딸이 있었다. 그리고 무엇이 부족했는지 단박에 알았다.



‘역시.. 빈자리는 티가 나지.’



사람들에게는 여러 개의 얼굴이 있다. 어떤 건 진짜고 어떤 건 가짜라고 하기엔, 모든 얼굴이 때마다 참으로 진심이다. 아이도 이런저런 얼굴들을 만들고 있겠지. 나에게 보여주는 얼굴은 그중 하나일 테고. 친구의 빈자리로 드러난 지원의 또 다른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보고 보고 또 보았더니, 그 뒤로 어딘가 낯선 지안의 얼굴이 잔상처럼 아슴푸레하게 떠다녔다. 내가 없는 곳에서 너는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에이치 투 오. 두 개의 수소 원자와 산소 원자가 결합하면 물 분자가 된다. 수소일 때도 산소일 때도 온전하다. 그러나 서로를 공유하면 전혀 다른 성질인 액체로 변한다. 화학에는 문외한이지만 물을 보며 가족으로서의 우리를 떠올렸다. 나는 나로도 온전했다. 다만 나의 빈자리는 그러질 못했다. 무엇이든 될 수 있었겠지만, 어떤 것으로도 채워질 수 있었고 비어있더라도 표가 나지 않았다. 나는 이 세상의 한 부분으로 확실하게 존재했지만, 나의 부재는 어떤 것도 바꾸지 못했다. 지금의 남편을 만나 가족을 이루었다. 아이가 내 삶에 들어와 가족의 모양새가 바뀌었다. 그리고 나의 빈자리는 드디어 온전해졌다. 내가 없으면 물이 될 수 없다. 나 또한 그들이 없으면 물이 될 수 없다. 여전히 수소로 또 산소로 온전하겠지만, ‘우리’가 되며 성질이 변했다. 엄마로, 아빠로, 또 우리의 아이로. 내가 누군가에게 빈자리가 될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하니 마음 한켠이 차올랐다. 너를 낳아 내 마음껏 사랑하고 있을 뿐인데 대체 불가한 사람이 되다니.



빈자리는 티가 나야 한다. 내가 나가도 잘만 굴러가는 회사. 나 하나 빠져도 즐거운 친구 모임. 아쉬울 수는 있겠지만 변하는 건 없는, 서로에게 확실한 빈자리가 되어주지 못하는 존재들. 다른 얼굴의 지원을 보았다. 엄마와 동생이 없을 뿐인데, 그 옆에 아빠가 있고 익숙한 친구가 있음에도, 그의 얼굴은 분명 달랐다. 방긋방긋 잘도 웃었지만 투정 부리지 않았다. 무엇으로도 대체될 수 없는 자리를 품은 채 어느 때보다도 의젓하고 씩씩했다. 아마 앞으로 더 단단해지겠지. 그 자리를 온전하게 비워두고 성실히 여물어가겠지. 아이들은 그렇게 때때로 도저히 알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가, 또 때때로 가장 익숙한 얼굴을 하고 우리를 찾을 것이다. 대부분의 얼굴은 시간의 흐름을 견디며 부서지기도 하고 전혀 새롭게 바뀌기도 하겠지만, 엄마와 함께 쌓아온 가장 최초의 얼굴만은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바래지 않을지도 모른다. 빈자리의 가치가 이 정도라면 엄마가 되길 잘했다.



모래놀이가 한창 무르익었고 바구니는 갖가지 조개로 가득 찼다. 진짜 같은 갈매기 연을 보며 누군가가 “우리 애들도 저거 사주고 싶다.”라는 말을 했고, 우리는 엉덩이를 털고 일어났다. ‘우리 애들’은 지안과 지원 그리고 병원에 있는 둘째까지를 말한 거겠지. 빈자리가 온전하기에, 부재하는 순간에도 함께 할 수 있다.



“같이 사우나 갔다가 집에 가요.”

“지금 가야 병원에 들를 수 있어서..”

“저녁은요? 먹을 거 있어요?”

“죽. 어제 시켜놓은 죽 먹으면 돼요.”



남은 일정을 함께 하자고 제안했지만, 두 남자의 마음의 끝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가 너무도 훤히 보였기에 붙잡지 않았다. 주차장에서 작별 인사를 하는데 왠지 모르게 지원의 얼굴이 바다에서보다 들떠 보였다.



“윤슬이 두 밤 자면 와요!”



드디어 그의 사투리가 구수해졌다. 두 밤 자고 만날 엄마와 동생을 씩씩하게 기다리고 있구나. 매일 밤을 헤아렸을 지원의 작은 손가락이 기특했다. 빈자리의 주인들이 얼른 오길. 둘째의 열이 이왕이면 두 밤이 되기 전에 땀으로 흘러나오길 바랐다. 동그란 식탁은 네 명 정도는 모여야 동그랗게 앉을 수 있다. 아무래도 두 명으로는 부족하지.



“응! 다음번엔 엄마랑 윤슬이도 같이 만나자!”



지원이 창문을 내리고 방긋 웃었다. 역시 모래 정도로는 엄마와 동생의 빈자리를 채울 수 없다. 빈자리는 티가 나야 비로소 온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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