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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우정 Oct 13. 2019

프라하 천문시계탑(Orloj)

인간은 왜 시계를 보는가?

프라하에 도착한 날은 밤 11시어서, 호텔에서 잠을 자고 다음날 아침에 본격적으로 관광을 할 수 있었는데 여행 첫날의 기대감으로 마음이 한 껏 부풀었고, 이 날은 날씨가 너무 좋고 하늘도 청명해서 사진도 많이 찍고, 정말 많이 돌아다닌 것 같다. 


어쨌든 천문시계는 구시가지에 위치한 숙소에서 10분거리에 있어서 오다가다가 많이 본 건물이다. 그만큼 정도 많이 들었고, 프라하에서 제대로 관광한 몇 안되는 건물이기도 하다.

프라하 천문시계는 큰 원형의 시계가 위 아래로 두 개 붙어있다. 위에 것이 1490년에 하누슈라는 시계공에 의해 만들어진 첫번째 시계이고 두번째 시계는 중세 이후로 여러번의 보수와 증축을 거치면서 추가된 것이라고 한다. 농사를 짓는 계절과 일하는 시간, 해가 지는 시간, 별자리와 해의 위치, 달의 모양까지 많은 정보를 담고 있다. 무려 500여년 전에 만들어진 시계는 지금봐도 첨단의 기계 전동장치와 명확한 천체의 움직임을 담고 있어서 대단히 과학적이고 정교한 시계이다.


중세의 건축양식인 고딕양식으로 지어진 천문시계는 지붕과 천장이 첨탑으로 뾰족하게 세워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건물의 석재는 바랜듯한 회벽의 느낌인데, 오랜시간을 견디어 오면서 얼룩과 때가 탔고, 빛에 따라서는 황색으로 보이기도 한다. 무척 고즈넉하고 신비로운 모습이다. 아침 일찍 겉으로 보이는 천문시계의 경관을 보고, 팁투어를 통해서 시계의 의미와 역사를 들었는데, 천문시계를 더욱 깊이 있게 보고자 한다면 팁투어를 추천한다. 팁투어를 담당해주신 이혜진 가이드님이 시계 보는 방법을 하나하나 알려주셨다. 500년 전에 농사시기, 일하는 시간, 해가 지는 시간 등을 과학적으로 계산했는 지 놀라웠다. 체스키 크룸로프에서도 해시계가 벽에 그려져 있는 곳이 많았는데 암흑시기라 불리우는 중세시기에도 체코는 나름의 관찰력으로 자연과학을 발전시킨 것 같다. 물론 천문시계가 지동설이 아니라 천동설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는 큰 오류가 있지만 현재에도 시계의 정보가 유효할 정도로 높은 지식수준을 보여준다.

시계의 시간과 천문학적인 지식이 천문시계의 전부는 아니다. 관광객들이 천문시계를 찾는 건 매 시간 정각에 펼쳐지는 시계의 퍼포먼스 때문이다. 12사도들이 정각이 되면 시계 속에서 나오고 오른쪽의 해골은 줄을 잡아 당기면서 종을 친다. 마지막으로 닭이 울면 퍼포먼스가 끝이난다. 블로그 후기나 가이드북에서는 너무 빨리 끝나서 기대만큼 큰 감동은 없다고 해서 정말 별 기대없이 봤더니 기대 이상으로 인상 깊었다.


"죽음의 시간이 왔다"라고 종을 치는 해골의 퍼포먼스와 해골 옆에 있는 사람들이 각각 인간이 경계해야 할 것들을 상징한다. 쾌락을 상징하는 악사, 허영을 상징하는 남자, 탐욕을 상징하는 상인, 그리고 새로운 아침, 부활을 상징하는 닭이 정교하게 조각되어 정각때마다 움직인다. 중세의 교리에 충실하여 교훈적이지면서도 표현방식이 상징적이고 동적이어서 낭만적이었다.  

오전시간에 시계 아래에서 관람하고 점심에는 천문시계의 탑으로 올라갔다. 꼭대기로 올라가는 방법은 유리로 된 엘레베이터와 나선형 계단을 걷는 방법이 있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나는 밑이 다 보이는 엘레베이터보다 무언가 단단하고 안정감있는 돌계단이 나을 것 같아서 걸어 올라갔다. 그냥 눈 감고 엘레베이터를 타는 편이 낫다. 돌계단을 올라가도 탑으로 올라가기 위한 밑에가 뻥 뚫린 철제계단을 또 올라가야 된다. 고소공포증인 나는 거의 울다시피 올라갔다....


그래도 올라가서 본 광경은 입이 떡 벌어졌다. 시간상 프라하에서 전망대를 한 곳만 가야한 다면 천문시계탑을 추천한다. 적당한 높이에서 구시가지 광장과 프라하 성이 360도로 펼쳐지는 장관이 어찌나 평화롭고 아름다운 지! 시계탑 안에서 틴 성당이 바라보이는 풍경도 멋있고, 얀 후스 동상과 성 미쿨라셰 성당도 보이고, 구시광장 너머의 붉은 지붕으로 늘어선 집들도 아기자기하고 고즈넉한 중세도시를 수 놓고 있다. 어느 곳을 찍어도 그림이었다. 




프라하 천문 시계와 시계탑을 보고 적은 인문학 단상


인간은 왜 시계를 볼까? 

프라하의 시계탑을 보고 든 생각이다. 


사람은 왜 시계를 볼까? 규칙적인 생활을 위해서? 시간을 나누어 일과를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해서? 아니면 시계 속 시간, 즉 표준 시간은 사회의 약속이니까? 사회의 일원으로 지내려면 시간 약속을 지켜야 하니까? 

이유가 구체적이지 않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계를 보고 하루의 일정을 계획하며 약속을 정하고 일과를 처리한다. 과학의 발달로 시간을 정확하게 잴 수 있는 표준시라는 것이 생기고 이런 표준시가 전세계적으로 통용되는 현대를 살고 있는 인간은 그가 살고 있는 지역 뿐만 아니라 지구 반대편에 있는 나라의 날짜와 시간을 분과 초 단위까지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면 오늘날이 아닌, 근대화 이전의 사람들은 어떻게 시간을 측정했을까? 그들은 어떤 필요에 의해 시간을 측정했을까?


근대 이전, 기계식 시계가 나오기 전의 사람들은 주로 해시계를 사용했다고 한다. 시간은 해가 떠 있을 때가 기준이 되었다. 고대에는 나무를 땅에 꽂고 나뭇가지에 걸리는 해의 그림자의 변화로 시간을 측정했을 것이다. 중세에는 앙부일구와 같은 정밀한 기술력의 해시계가 발명되었다. 앙부일부의 영침에 드리워지는 해 그림자로 시각과 절기를 동시에 알 수 있었다. 해가 뜨고 지는 하루의 시간을 대강 알 수 있는 기존의 해시계에서 발전하여 앙부일구는 날짜와 절기, 계절까지 알 수 있어 농민에게 도움이 되었다. 기계식 시계가 도래하기 전, 근대 이전에는 이렇게 해시계를 비롯해 물시계와 같은 물리장치로 시간을 측정했는데 이는 현대의 표준시와 30분 이상의 차이를 보이기도 한다.


중세에는 대부분 해시계를 사용하기는 했지만 유럽에서는 기계식 시계장치가 발명되기도 했다. 대표적인 중세의 기계식 시계장치는 건물형태의 탑으로, 1410년 마쿨라시와 얀 신델의 프라하 구 시청사의 시계가 유명하다. 프라하의 천문시계는 1490년에 달력 부분이 추가되고, 1552년 얀 타로르스키가 기존의 시계를 수리하면서 지금의 형태로 증축되었다. 이 시계는 천동설을 기반으로 만들어져 오늘날의 천문학 관점과는 많은 차이가 있지만 시계가 제공하는 정보는 현재에도 유효할 정도로 정확하다고 한다. 천문시계를 통해 당시의 사람들은 농사의 시기와 일하는 시간, 해가 지는 시간(귀가 시간), 별의 위치에 따른 계절의 시기 등을 알 수 있었다고 한다.

이렇듯 근대 이전에는 해시계가 광범위하게 사용되었고 일부 천동설을 기반으로 한 기계식 천문시계가 사용되었다. 또한 고대와 중세 시대의 시계 사용목적은 농사와 관련이 깊었다. 대다수 사람이 농업에 종사했기 때문에 파종 시기와 수확시기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했고, 하루의 일과도 해가 뜨고 지는, 농업에 종사하기 위한 시간으로 짜여졌다. 그런데 근대화 이후에는 이러한 시계의 사용목적이 달라진다. 산업이 농업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분업화되고 전문화 되면서 시간을 더 정밀하게 측정하여 사회적 노동시간과 개인의 일과를 통제하고 관리하고자 하는 욕구가 생겨났다. 크게는 계절이나 절기, 작게는 12지 정도로 측정되었던 시간은 근대 이후로 시, 분, 초 단위의 국제 표준시로 측정되고 있다. 이러한 시간의 분절은 산업화된 도시의 특성을 반영하고 있다.

“서대문 버스 정거장에는 사람이 서른두 명 있는데 그 중 여자가 열일곱 명이었고, 어린애는 다섯 명, 젊은이는 스물한 명, 노인이 여섯 명입니다.”
“그건 언제 일이지요?”
“오늘 저녁 일곱 시 십오 분 현재입니다.”
“아”하고 나는 잠깐 절망적인 기분이었다가 그 반작용인 듯 굉장히 기분이 좋아져서 털어놓기 시작했다.
“단성사 옆 골목의 첫 번째 쓰레기통에는 초콜릿 포장지가 두 장 있습니다.”
“그건 언제?”
“지난 십사일 저녁 아홉시 현재입니다.” 
(김승옥,『서울 1964년 겨울』,동아출판사)


위의 구절은 1960년대 한국의 산업화된 도시의 일면을 차갑게 드러내고 있다. 시간의 분절이 곧 사회적 차원에서의 산업화를 반영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가지 못하는, 겉도는 현대적 개인의 분열상을 내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십사일 저년 아홉시 현재’로 표현되는 ‘현재’의 시간의 강조, 초 단위로 나뉜 시간을 보내며 불안을 느끼는 개인의 분열은 국제표준시를 살고 있는 현대인이라면 당연히 겪는 일과가 되었다. 


인간은 왜 시계를 볼까? 시계는 현재, 그리고 표준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기준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준으로 현대적 개인은 일과와 삶을 계획한다.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하나의 지역 공동체 속에서 살아야 했던 전근대의 사회 속에서는 직업을 선택할 자유라든지, ‘표준’으로 채택된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시간을 효율적으로 보내야 하는 가치 효용적 시간 선택의 자유가 없었을 것이다. 현재적 순간은 개인에게는 의미있지만 산업화 된 표준의 사회 관점에서는 무의미한 기표처럼 흘러간다. 이 속에서 개인은 무한히 던져진 자유라는 허상과 실상은 어느 것도 현재로 느끼지 못할 만큼 빠르게 흘러가는 과거를 살게 된다. 


도시를 배회하는 개인의 모습은 단지 문학작품 속에 등장하는 소설가나 철학자 같은 모더니스트만은 아닐 것이다. 백수, 노숙자, 병자, 노인… 도시는 현재와 표준을 살아가는 현대적 개인의 집합이지만 도시 속에서 살아가는 개인은 현재와 표준을 살아가고자 하지만 늘상 균열 속에서 배회하는 분열의 가능성을 가지고 살아간다. 

다시, 인간은 왜 시계를 볼까? 불안하기 때문이다. 주민등록번호에서부터 우편번호, 날짜와 시간으로 정해진 숫자의 객관지표를 확인하고 효율적으로 시간을 관리하고 사회적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이다. 객관지표에 대한 현대적 강박. 산업화 된 도시에 살고 있는 개인에게 뗄레야 뗄 수 없는 증상일 것이다. 시간을 잘 관리하고 계획한 일과를 잘 처리하는 일은 사회적 덕목이기도 하다. 하지만 객관지표에 대한 강박과 이로 인한 자괴와 분열은 현대의 개인이 떠 앉고 살아야할 짐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사회가 요구하는 객관지표의 강박과 불안이 심해지면 심해질수록 사회에서 일탈하고 싶은 욕구는 더욱 커진다. 이런 욕구가 해소될 수 있는 가능성은 극히 적기 때문에 도시의 개인은 불안 속에 ‘던져진 삶’과 ‘출구 없는 삶’에 매번 권태를 느끼며 분열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이처럼 개인에게 의미가 있는 ‘현재’도 산업화 된 도시의 기준에서는 무의미한 것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시계를 보는 인간은 시계를 보지 않아도, 시계 속 시간과는 상관없이 시간을 재창조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시간이 지나가도 퇴색되지 않는 무엇.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은 무엇. ‘절대’를 꿈꾸며 사는 존재이기도 한 것이다. 그런 꿈으로, 욕망으로 인간은 수천년이 지나도 원형을 유지하는 피라미드를 만들기도 했고, 언제 어디서든 연주될 수 있는 음표를 악보 위에 그렸으며 세월을 이겨내는 미술 도료를 개발하기도 했다. 개인에게만 의미있는 ‘현재’를 절대적 시간으로 편성하려는 시도, 그 자체를 긍정하면 어떨까? 사냥을 나가지 못할 때 혹은 잉여 시간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원시인의 동굴벽화와 현대의 미술작품을 창조하는 행위의 기본적인 욕구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현대적 개인은 객관지표에 대한 강박과 표준시의 상대적 결과를 추구하고 살아간다. 하지만 개인에게 의미있는 시간은 각기 다르며 이는 시간을 넘어서는 절대를 추구하는 인간의 속성이기도 하다. 시간은 흘러간다. 시, 분, 초 단위로 흘러간다. 시간은 다시, 또 흘러간다. 인간은 왜 시계를 볼까? 불안하기 때문이다. 시간은 흘러가기 때문이다. 시간은 소유할 수 없다. 시간은 되돌릴 수도 없다. 효율적으로 살고 있는 걸까? 잘 살고 있는 걸까? 늦지는 않은 걸까? 생각하는 순간에도 시간은 흘러간다.

시간은 흘러간다. 흘러간다는 것을 잊지 않는다. 잊지 않는다는 의지는 절대에 대한 열망이다. 시간 속에서 퇴색되고 닳아가는 인간의 숙명이기도 하다. 잊지 않겠다는 의지를 잃게 되더라도, 인간은 잊지 않을 것이다. 그 어떤 표현과 재창조와 발명을 해서라도 잊지 않겠다는 의지를 되새기면서 지나가는 시간을 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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