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한 그릇 나왔습니다
필자가 처음 수영 배울 때를 생각해보면 참 고욕이었다. 물에 들어가기 전에 미리 호흡하는 법, 팔을 휘젓는 법을 숙지하지만 막상 물에 들어가는 순간 머리는 백지가 되고 땅에서 생활하던 대로 호흡하고 몸을 움직이게 된다. 그에 대한 보상은 배부르게 마셨던 수영장 물.
비단 수영뿐이랴. 어떤 일이든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까지 수많은 고생이 필요하지 않는가. 이리저리 부딪히고 이렇게 하면 안 되는구나, 저렇게 하면 되는구나를 체득하며 조금씩 성장해가는 과정. 수영, 디자인, 음악, 프로그래밍 모두 비슷하다. 제삼자인 우리는 그 노력과 시간, 결과물을 인정하고 기꺼이 값을 지불하고서 서비스를 구매한다.
하지만 유독 값을 지불하고 서비스를 구매하는 데에 인색한 분야가 있다. 생각. 또는 기획이라고 부를 수도 있는 것. 다른 이의 아이디어, 기획력, 생각하는 법은 아무리 브랜딩을 하고 포장을 하고 돌려 말해도 공짜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모든 일에서 가장 근본이 되지만, 그래서 더욱 당연시 여겨지는 아이러니. 생각에 대해 생각해볼 시점이다.
아무리 브랜딩을 하고 포장을 하고 돌려 말해도 공짜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이 아이러니를 유쾌하게 비꼬는 가게가 있다. 생각을 파는 가게. 생각식당. 전체 사업 중의 일부, 업무 처리 과정 중 하나로 여겨지며 소위 '쩌리' 취급받던 개념이 아닌 진짜 '생각'을 파는 곳. 십수 년간 이리저리 부딪히며 멍들고, 허우적거리며 수영장물 마셨던 경험을 차곡차곡 쌓아 하나의 메뉴로 판매한단다. 어떤 셰프가 메뉴를 만드는지 궁금해지는 것이 당연지사. 내가 구매할 수 있는 생각은 어떤 모습일까. 허기진 배와 머리를 부여잡고 한남동으로 향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합니다.
김우정(이하 우) : 안녕하세요. 영화사 풍류일가의 프로듀서이자 생각식당 마스터 김우정입니다.
궁금한 점이 많습니다. 먼저 풍류일가와 생각식당이 각각 어떤 사업인지 궁금하네요.
우 : 풍류일가는 시작한 지 5개월 된 신생 제작사입니다. 제 꿈이었던 영화 제작을 하기 위해 원래 운영하던 회사를 물려주고 시작했어요. 제가 만든 영화가 극장에서 상영되는 시기는 아마 몇 년이 더 흐른 후가 될 것 같아요. 사실 영화업이 인내와의 싸움이에요. 낚시와 비슷합니다. 미끼를 던지고 기다리듯이 글을 맡기고 기다리죠. 너무 지루하잖아요. 또 영화업으로 업을 바꾸고서 가장 결핍을 느낀 부분이 수입이에요. 영화가 수익을 내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하죠.
꾸준하게 수익을 낼 수 있는 방법에 어떤 일이 있을까 고민했어요. 15년 사업을 하다가 프리랜서가 된 셈이니. 디자이너는 디자인 작업을 만들면 되고, 영상 만드는 분들은 영상 작업을 하면 되는데 기획자에게는 돈을 안주잖아요. 기획서 써주고 돈을 받을 수도 있지만 그 일은 하기 싫고. 기획이 결국 생각이고, 생각으로 어떻게 돈을 받을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차린 곳이 생각식당이에요. 그래서 생각식당은 생각을 파는 식당이에요. 물론 음식도 드리지만 생각이 메인 메뉴입니다.
풍류일가라는 이름이 심상치 않네요.
우 : 제가 첫 직장에 다닐 때 대표님이 지어주신 이름이에요. 원래 회사명으로 지어주신 이름은 아니지만. 굉장히 스마트하시고 중국어도 잘 하시는 분이었는데 장난 삼아 전 직원의 별명을 칠언절구(七言絶句 ; 칠언 네 구로 된 한 시)로 지어주셨어요. 저에게는 풍류일가김태랑(風流一家金太浪)이라는 별명을 지어주셨죠. 제가 한자에 약해서 무슨 뜻이냐고 여쭤봤더니 ‘문화의 바다에서 큰 일가를 이루고 큰 파도가 되어라’라는 뜻으로 지었다고 하시더라고요. 제가 ‘문화’를 참 좋아했는데 중국에서는 ‘풍류’가 문화보다 더 큰 의미라고 하시면서. 나중에 내 회사를 설립하면 사명을 ‘풍류일가’로 짓고, ‘태랑’은 내 호(號)로 삼기로 했어요. 결국 지금 회사의 이름이 ‘풍류일가’가 되었습니다.
현재의 회사를 설립하기까지 어떤 일을 해왔는지 궁금합니다.
우 : 직장생활이 길지는 않았어요. 대학교 전공이 임상병리학이었어요. 보통 병원이나 제약회사에 들어가서 일을 하게 되는데 저는 그 일을 죽기보다 하기 싫었어요. 결국 축제 기획사에 들어가서 축제 기획을 했죠. 그 뒤에 마케팅 분야로 전향해서 시공테크라는 기업에서 박물관 마케팅 업무를 맡았어요.
이렇게 2년 반에서 3년 정도 직장 생활을 하다 보니 ‘나는 직장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다’라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당시에는 제가 제일 똑똑한 줄 알고서 건방지고 오만했던 거죠. 남의 말을 듣지 않았어요. ‘내 사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뜻 맞는 사람들과 같이 나와서 회사를 설립했어요. CMJ 인터내셔널이라는 문화 투자 회사였어요. 공연, 뮤지컬, 영화, 캐릭터 상품 등에 투자하는 회사였는데 사업을 하다가 망했어요. 크게. 그 뒤에 힘든 시기를 겪다가 제가 단독으로 설립한 회사가 지금의 ‘풍류일가’인 거죠.
전공과 전혀 다른 분야에서 일을 하고 있네요.
우 : 이 질문을 천 번은 받은 것 같아요(웃음). 대학교 강연 가서도 이런 이야기 하면 정말 좋아해요. 적어도 대한민국에서 본인의 전공을 따라 일 하고 싶은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이에요. 전공을 모르고 선택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경영학과 졸업해서 모두 경영자가 되지는 않잖아요. 의대나 법대 같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전공을 제가 원해서 선택하지도 않았거든요. 제 부모님과 담임 선생님의 바람이었지. 대학교 들어가서 나와는 전혀 맞지 않는 전공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고민을 많이 하다가 군대 전역 후에 경영학을 복수로 전공했어요. 저의 실질적인 전공은 대학교 3학년부터 배운 경영학이고 2학년까지의 진짜 전공은 술, 연애, 당구라고 보는 편이 맞을 것 같아요. 대부분 그렇지 않나요(웃음)?
임상병리학이라는 학문은 큰 도움이 안 되었다가 졸업 후 10년이 지나서 도움이 됐어요. 문화, 콘텐츠 업계에서 이과 출신이라는 점이 메리트가 있더라고요. 체계적이고 합리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을 배웠던 점이 정말 큰 도움이 됐죠. 가설을 설립해서 실험을 하고 결과를 도출하는 일련의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이 임상병리학의 기본 토대가 되기 때문에 사업에서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됐어요.
성격 측면에서 바라봤을 때, 전공을 선택하거나 직장 생활을 하며 다른 누군가의 가치관에 맞춰 사는 삶이 본인의 가치관과 다르다는 사실을 어떤 계기로 깨달았나요?
우 : 일단 너무 오래전 기억이라(웃음). 고등학교 3학년까지는 정말 생각 없이 살았어요. 공부만 하면 되는 줄 알았죠. 19살까지의 제 인생은 제 인생이 아니었다고 생각해요. 물론 재미있는 학창 시절을 보냈지만 제 의지대로 살지는 않았어요. 직장 생활에서의 잘못된 권위나 문화를 알게 된 이유는 제가 지방에서 대학 생활을 했기 때문이에요. 학창 시절 성적이라면 서울의 웬만한 대학은 갈 수 있었으나 부모님과 선생님의 의지로 연세대 타이틀을 얻기 위해 연세대 원주 캠퍼스로 갔죠.
지방에서 살면서 성격이 바뀌었어요. ‘자유’라는 개념에 대해 알게 된 거죠. ‘자유’가 저에게 가장 중요한 철학이 되었어요. 아무리 돈을 많이 버는 곳에서 일을 하더라도 자유를 억압받는 곳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을 했어요. 당연히 직장 생활을 오래 못했죠. 더군다나 제가 일했을 때는 주 6일 근무라 토요일까지 일을 했으니까. 자유를 찾아 창업을 했어요.
지금의 회사를 창업하기 전 ‘팀버튼’이라는 회사도 설립했습니다.
우 : 풍류일가는 다른 기업의 문화 마케팅을 대행해서 기획하는 회사였어요. 제가 누군가로부터 지시받는 것을 싫어한다고 했잖아요. 대행 사업도 결국 지시하는 사람이 회사 내부가 아니라 밖에 있다는 것 말고는 똑같은 거죠. 고민을 하다가 ‘내 상품을 팔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잘 했던 일이 콘텐츠를 만들고 마케팅하는 일인데 어떻게 상품화할 수 있을지 여러 고민을 했죠. 그러다가 교육 상품을 만들기로 했어요. 일반적으로 예술로 제품화할 수 있는 방법은 작품을 만드는 방법밖에 없으니 문화예술인들과 교육 상품을 만들기로 했던 거예요. 그 회사가 ‘팀버튼(Teambutton)’입니다. 기업들이 직원 교육을 위한 워크숍을 진행할 때 2~3시간의 맞춤형 강의가 필요하거든요. 맞춤형 강의를 만들어 판매하면서 팀버튼이 시작되었죠. 벌써 13년째 수많은 대기업의 교육을 해왔네요.
오랜 기간 동안 경영해왔던 팀버튼을 후임 경영자에게 물려주었습니다. 쉽지 않은 결정으로 생각됩니다.
우 : 양날의 검이에요. 일단 고정적으로 받던 월급을 안정적으로 받지 못하죠. 꾸준히 받던 수입을 포기한다는 결정이 두려운 일이지만 다행히 잘 극복해냈어요. 그럼에도 다른 면으로는 당연한 선택이었어요. 한 분야의 일을 12년간 해왔잖아요. 기업을 상대로 한 문화 교육, 행사, 공연 기획 업무를 수년간 해오니 지겨워진 거예요. 더군다나 2013년 국내 유수 대기업의 큰 프로젝트를 성공시키면서 제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정점을 찍었어요. 그때 결심했던 생각이에요. 어느 순간 내려놔야겠다고. 결국 다시 한번 자유를 찾아 떠난 거죠.
자유를 찾아 떠난 일환 중 하나로 현재 ‘생각식당’을 오픈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어떤 공간인지 더 자세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우 :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어떻게 생각을 팔 수 있냐고. 생각해보면 지극히 상식적이에요. 생각은 에너지니까. 물론 나쁜 생각이 아닌 좋은 생각을 팔아야죠. 제가 지난 9년간 좋은 생각을 하기 위한 훈련을 해왔고, 저 나름대로 만든 생각 방법론이 충분히 돈을 받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예전에는 상황이 달랐어요. 다른 사람의 창작물에 대한 지적재산권을 잘 인정해주지 않던 시기에는 제가 수많은 사람들에게 수많은 좋은 아이디어를 전달해주면 밥만 사주고 끝나는 거예요. 나는 돈이 필요한데. 밥도 비싼 밥을 사줘요. 그 밥값을 돈으로 주지(웃음). 여기서 역발상을 한 거예요. ‘내가 밥을 사주자. 그리고 밥값을 비싸게 받자’라고. 그래서 식당이 된 거예요. ‘기획사’가 아니라 생각을 음식과 같이 팔 수 있는 공간. 새로운 컨셉이기도 하고 아무도 쉽게 따라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욕먹을까 봐. 사실 지금도 저를 사기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와봤던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생각식당의 메뉴가 세 가지 있네요. ‘통찰력 라떼’, ‘컨셉 브런치’, ‘경영의 양식’인데 각각 어떤 메뉴인지 소개 부탁합니다.
우 : ‘통찰력 라떼’는 한 시간 티타임을 가지면서 상담을 15분간 들어주고 45분간 일대일 강의 형태로 생각 훈련법을 배운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컨셉 브런치’는 90분간 브런치를 함께 먹으면서 아이디어와 관련된 상담을 하는 메뉴예요. ‘기획서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요’, ‘컨셉이 떠오르지 않아요’, ‘책 제목이 떠오르지 않아요’ 등 여러 고민을 미리 보내주시면 제가 90분 동안 솔루션을 찾아주는 형태죠. ‘경영의 양식’은 스타트업이나 벤처, 중소기업, 사회적 기업 등의 CEO와 임원들이 와서 경영 코칭을 받는 메뉴예요. 총 3시간 중 1시간 30분은 코칭을 받고, 나머지 1시간 30분은 함께 식사를 하면서 고민을 상담해주는 메뉴입니다.
마스터 셰프
마스터 셰프
마스터 셰프 생각식당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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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시용 @사진 : 배대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