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 Habitat with Yongsan
* 앞선 글을 먼저 읽으면 더 깊은 이해가 가능합니다(클릭 시 앞선 글로 이동)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유엔 해비타트(UN Habitat) 한국위원회에서 일하고 있는 이재성이라고 합니다. 유엔 산하에 유니세프(Unicef), 세계 보건기구(WHO) 등 여러 기구들이 있는데 그중에서 도시와 관련한 업무를 맡고 있는 국제기구가 유엔 해비타트예요. 사람들이 도시에 정착하기 위해 필요한 주거, 인프라, 커뮤니티, 정책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해비타트라고 하면 한국해비타트를 많이 떠올리시기도 하는데 ‘Habitat for huminity’가 정확한 명칭이고 편의상 한국해비타트라고 부르고 있어요. 한국해비타트 역시 해비타트 운동, 사랑의 집짓기 등 다양한 주거환경 개선을 진행하고 있는데, 유엔 해비타트와 파트너십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유엔 해비타트라는 용어를 들었을 때 단번에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는데요. 보통 개발도상국 위주로 사업이 진행될 것 같은데 대한민국에 유엔 해비타트가 있다는 점이 의아했습니다.
말씀 주셨듯 한국은 더 이상 개발도상국으로 분류되지 않죠. 따라서 도시 계획과 관련된 부문 중 한국에서 잘하고 있는 영역을 하나의 모델로 정립한 후 개발도상국에게 전수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면 편해요. 그밖에 도시화에 대한 이슈, 주거권과 개발에 대한 이슈 등을 전반적으로 다루고 있죠. 대한민국이 잘하고 있는 개발 모델과 관련하여 다양한 이슈를 다루고 있습니다. 물론 한국에서도 활동을 진행하고 있어요. 한국에 설립된 지 2년 정도 되어서 많은 사업을 진행하고 있지는 않지만 주거권 교육, 청년을 위한 사업, 대한민국 도시 포럼 등의 사업을 진행하고 있어요.
생각보다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었네요.
보통 도시 계획이라고 하면 말 그대로 계획만 하거나 인프라를 갖춰주는 형태에서 그친다고 생각되는데 사실 하드웨어가 갖춰졌다고 해서 도시가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에요. 정책과 제도 같은 소프트웨어도 함께 필요하죠. 그리고 이와 같은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데 있어서 유엔 해비타트가 기조로 삼고 있는 비전 중 하나가 ‘포용적인 도시(the inclusive city)’라는 개념이고요. ‘주거권'에 대한 인식 개선 노력과도 연관이 되어 있는데요. 말 그대로 ‘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는 권리’에 대한 인식 개선이 중요하다는 판단이 들었고, SH공사와 함께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 관련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어요.
워낙 많은 키워드가 융합되어 있다 보니 내용을 정리해보면 좋을 듯해요. 유엔 해비타트가 바라보는 도시에 대한 정의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앞서 말씀드렸던 키워드인 ‘포용적인 도시’라는 개념으로 정의할 수 있어요.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도시를 목표로 하고 있죠. 예를 들어 신체가 불편한 분들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이 소외되지 않고 도시 안에서 어우러져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도시가 유엔 해비타트가 바라보는 도시예요.
2020년부터 COVID-19 사태가 본격화하면서 도시 개발 등의 사업에 접근하는 관점과 방식에도 변화가 생겼을 것 같아요.
한국만 해도 일상생활이나 업무 패턴에 많은 변화가 생겼죠. 예를 들어 재택근무가 어느 정도 활성화되면서 주거 형태에 대한 고민도 생각하게 되었고요. 아마 앞으로의 주택 건축 양식은 업무 공간까지 고려해서 설계될 거예요. 가령 일상의 대부분을 업무에 할애한다고 하면, 집에서 근무하더라도 창밖을 바라보며 근무할 수 있는 위치에 작업실을 마련해야 하는 식으로요. 비슷한 맥락에서 슬리퍼를 신고 돌아다닐 수 있는 소위 ‘슬세권'의 개념도 강화될 테고요. 덕분에 주택뿐 아니라 사무실의 개념 자체도 바뀔 거예요. 물리적인 공간보다도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과 사람의 연결에 더 집중하기로 하는 식으로요.
특히 유엔 해비타트가 청년들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들었어요.
맞아요. 현재 유엔 해비타트 한국 위원회는 도시와 관련한 주제를 통해 청년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어요. 청년들의 역량을 강화시켜야 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죠. 대한민국 도시 포럼(Korean Urban Forum)이라는 행사도 기관을 대상으로 진행했지만 청년을 대상으로도 진행했었고요. 결국 앞으로 세계를 이끌어 나갈 이들이 청년들이잖아요. 그래서 대한민국이 국제사회로 청년들이 나가야 한다는 것이 제 개인적인 생각이에요. 역량 있는 친구들이 국제사회에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바라보는 현장과 실제로 가서 보는 현장은 다를 수 있거든요. 예를 들어 보통 개발도상국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어떤 교육을 진행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물어보면 우리가 한국에서 배운 교육 과정이나 직업교육을 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하지만 실제 현장에 가보면 밥 먹기 전에 손을 씻어야 한다는 위생 교육이 더 중요한 경우가 많죠. 그들의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들이거든요. 교과 과정이나 일자리보다 기본 삶을 영위하기 위한 요소가 중요한 나라들도 있어요. 직접 눈으로 봐야 알 수 있는 부분이 있는 거죠.
현지에 가야만 얻을 수 있는 경험이 중요한 만큼 기본적인 이론 교육도 병행해야 될 텐데요. 어떤 형태로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나요?
SH 어반 스쿨이 대표적이에요. 해당 분야 각 전문가들이 주거권이 무엇인지에 대해 강의를 진행하고 있어요. 현재는 해외를 나갈 수 없는 상황이다 보니 한국 사회 안의 취약계층을 살펴보고 그들의 주거권이 보장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보는 내용으로 교육이 진행돼요. 예를 들어 근래에 진행되었던 교육 내용은 ‘아동들의 주거권'에 대한 주제였어요. 아이들이 생활할 공간이 보장될 수 있도록 여러 해결책을 고민하고 시제품까지 나왔던 사례였죠.
유엔 해비타트 한국위원회의 사업 범주를 고려해 봤을 때, 앞으로 더 많은 청년들이 한국에 머무르지 않고 해외로 진출할 것 같아요. 현재 청년들의 준비 단계가 어느 정도 되었다고 보고 있나요?
요즘 시대에서 청년의 범주는 50세 중반까지도 포함할 수 있죠. 경제생활을 하면 청년이라고 부를 수 있는 시대니까요. 그 안에서 20대, 30대, 40대, 50대 각자가 해야 할 역할이 다르다고 생각해요. 시니어일수록 주니어들에게 경험과 노하우를 전수해주고 20대라면 아직 배움의 단계에 있는 식이죠. 그렇다고 40대에게 전혀 배움의 과정이 없다는 말이 아니에요. 그들도 다른 세대와 소통하면서 배워가게 되죠. 적어도 유엔 해비타트 한국위원회에 함께 참여하는 청년들 안에서는 그 소통이 원활해지고 서로의 경험을 나누는 단계까지 왔다고 봐요. 과거에 학습하던 속도와 비교했을 때 요즘은 지식을 습득하는 나이도 어려지고 속도도 빨라졌잖아요. 앞으로도 세대 간의 지식 나눔이 풍성해지지 않을까 생각해요.
용산에 대한 주제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현재는 여의도로 이전했으나 원래 유엔 해비타트 한국위원회의 사무실이 용산에 있었죠. 용산이라는 곳에 속했던 경험과 외부자로서의 시선을 토대로 봤을 때 용산 전자상가 일대가 갖고 있는 특성이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서울 다른 지역과의 허브 역할을 하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서울 중심부에 위치해 있다는 특성 덕분이죠. 다만 다른 모습도 함께 존재해요. 우선 용산 전자상가 일대의 모습을 떠올려 볼게요. 출퇴근 시간 전후의 분위기가 전혀 달라지는 곳이에요. 업무 시간에는 많은 이들이 왕래하면서 시끌벅적하다가도 퇴근 시간이 지나고 밤이 되면 무섭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어두운 도시가 되죠. 주거 측면에서 봤을 때도 우범지대처럼 보이는 면은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럼에도 많은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는 공간이라는 점은 분명해요. 특히 용산의 메이커 스페이스가 시설과 장비 면에서 봤을 때 가장 다양하고 많은 범주의 분야를 다루고 있어요. 뭐든지 다 만들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에 작은 규모에서 창업을 시작하려는 이들을 위해 든든한 지원이 되죠.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서울 중심에 위치해있고 용산역도 있어서 대한민국 어느 곳과도 교류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고요.
용산을 포함한 서울이 가진 도시적인 특성 중에서 어떤 특징들이 개발도상국 도시 발전을 위한 사례로 제시되고 있나요?
도시의 회복 탄력성이라는 개념이에요. 본래는 의료 용어죠. 신체가 질병에 걸렸을 때 얼마나 빠르게 정상으로 회복할 수 있는 지를 나타내요. 코로나로 인해 전 세계 각국의 도시가 마비된 적이 있었죠. 사람들은 집 밖으로 나갈 수도 없고 모임도 가질 수 없을 정도로 도시가 멈춰버린 거예요. 한국 주요 도시들 역시 여러 정책적 제약들로 인해 힘들었지만 지금은 적절하게 대응해가고 있죠. 회복 탄력성이 높다고 평가할 수 있어요. 어찌 보면 당연하게도 개발도상국들은 회복 탄력성이 낮거든요.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다고 도시가 잘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정책적인 면 등 여러 부분이 상호 유기적으로 잘 짜여있어야 하기 때문에 그래요. 그런 면에서 용산을 포함한 서울의 기술, 인프라, 정책 등 여러 특징들을 함께 전수해주려 노력하고 있고, 과거에 성행했으니 현재 침체되어 있는 용산 전자상가 일대가 어떻게 문제점들을 타파해 나가는지도 하나의 훌륭한 선례가 될 수 있어요.
유엔 해비타트가 수행하고 있는 도시 개발, 도시 재생 등의 분야로 진로를 생각하는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나요?
저희 팀에는 다양한 분야를 전공한 분들이 많아요. 문화예술을 공부했던 팀원도 있고 법을 전공한 팀원도 있고. 저 역시 도시 개발 관련 학문을 전공하지 않았고요. 유엔 해비타트에 몸담게 되면서 도시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됐고 열심히 공부하고 있어요. 비단 도시에 대한 내용뿐 아니라 문화, 인프라 심지어 코딩에 대해서도 공부하고 있죠. 유엔 해비타트에 입사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오로지 도시라는 개념에 대해서만 집중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예요. 도시 안에서 이뤄지는 여러 분야 중 본인이 더 재미를 느끼는 분야를 더 깊이 파고든다면 해당 분야의 전문성을 가질 수 있어요. 실제 업무를 할 때도 매 프로젝트마다 주제가 달라지고 다른 내용이 등장하다 보니 새로운 내용에 대해 학습하게 되거든요. 도시는 결국 성장을 하게 될 테고 성장함에 따라 새로운 사례들이 속출하게 되니까요.
용산 전자상가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