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ersons : Musical Music Director
스무 살이 되던 해 봄, 대학로 소극장에서 생애 처음 봤던 뮤지컬의 감동은 십여 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도 생생합니다. 세세한 내용과 음악이 기억나지는 않지만 마치 첫사랑을 갓 시작한 사춘기 시절의 들뜬 감정 같은 여운이 일상까지 감싸던 느낌은 지금도 잊히지 않죠.
뮤지컬의 무엇이 나를 그토록 감동하게 만들었을까 생각했던 적이 있습니다. 배우들의 노래와 연기, 조화로운 세션, 화려한 조명과 무대미술, 그리고 숨소리까지 들을 수 있는 현장감까지. 모두 뮤지컬을 뮤지컬답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지만 그중에서도 감정을 압도했던 부분은 단연 음악 그 자체였습니다. 인간 삶을 한줄기 꿰뚫어 행복으로 산란(散亂)하는 음악.
우리가 음악이라고 부르는 개념의 원류를 따라가 보면 인류가 자연에서 들을 수 있었던 소리들로부터 시작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물소리, 새소리, 나뭇가지 밟는 소리, 폭포 소리, 천둥 치는 소리 등이죠. 무엇보다 타인이 만들어내는 많은 소리, 돌망치로 무언가 박자감 있게 두드리는 소리, 소통하기 위해 입에서 내는 다양한 소리가 큰 영향을 미쳤을 테고요. 우연하게 낸 소리들에 박자가 붙고 음의 높낮이가 생기면서 인류는 듣는 즐거움을 알게 됐고, 그 즐거움을 의도적으로 기획하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음악이라는 장르가 인간 삶에 점차 스며들었습니다.
음악을 통한 감동은 우연에 기반한 진심에서 나왔지만 그 감동을 뒤에서 기획하고 조정하는 역할 덕분에 더 풍성하게 즐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번 《더퍼슨스 No.5: 뮤지컬 음악감독》의 주제인 뮤지컬 음악감독 역시 음악이라는 도구를 활용해 진심이 담긴 감동을 조립하고 포장하여 관객들에게 선보이죠.
통역가의 역할에 빗대어 볼 수도 있습니다. 음악이라는 언어에 메시지를 담아 관객들에게 전달하기 때문이죠. 배우들의 발성과 성량, 음악 시퀀스의 시작과 종료, 오케스트라 연주의 하모니 등 말과 글로 모두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을 표현해 줍니다. 대부분의 우리는 음악으로 감정을 표현하고 싶어도 완성도 있게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기에. 뮤지컬 무대 뒤에서 음악이라는 언어를 세련되고 인상 깊게 구성해 우리가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통역해 주는 음악감독의 역할, 이번 편의 부제가 ‘Interpreter behind the stage’인 이유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시리즈에서는 각 인터뷰이가 작업했던 작품 목록을 함께 살펴보며 즐기기를 추천합니다. 연애를 글로 배울 수 없듯이 뮤지컬의 비언어적 가치와 풍부한 매력을 이 책의 한정된 테두리 안에 가두는 것은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죠. 이미 봤던 작품이나 넘버 또는 아직 보지 못했지만 한 번쯤 보고 싶었던 작품들을 인터뷰이들이 어떤 의도로 기획하고 음악을 구성했는지 살펴보면 그 자체로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어떤 작품이든 하나의 작품은 결국 관객에 의해 완성됩니다. 뮤지컬 역시 마찬가지이기에 뮤지컬 음악감독을 비롯해 배우, 오케스트라, 스태프, 기획자 등은 선보이고 싶은 요리를 열심히 만들어 선보일 뿐이죠. 어떤 취향이 내 입맛에 맞을지는 먹어봐야 알겠으나, 거꾸로 생각해 보면 내 취향을 찾기 위해 여러 요리를 맛보는 경험도 필요합니다. 뮤지컬이라는 장르에 조금이라도 흥미가 있다면 이번 시리즈에 담긴 일곱 명의 뮤지컬 음악감독이 자신 있게 선보이는 레시피를 슬쩍 들여다보길 바랍니다. 머릿속에서 뮤지컬 무대의 은은한 실루엣이 그려지고 잔잔한 선율이 들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죠. 그럴 수만 있다면 이 책 역시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에 의해 완성된 것입니다.
사족으로 스무 살에 봤던 뮤지컬은 <뮤직 인 마이 하트>라는 작품입니다. 이번 시리즈에 담긴 인터뷰이 중 한 명이 작곡, 음악감독을 맡았던 작품이니 그분과의 인터뷰 내용 안에서 필자가 감동받았던 이유를 찾아보시길. 들뜨게 만들었던 그 감동을 함께 공유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습니다.
편집장 이시용
https://thepersons.co.kr/book/?idx=165
- 위 글은 <더퍼슨스 No.5: 뮤지컬 음악감독>에 실리는 Interviewer's Note 전문입니다.
- 위 글의 모든 저작권은 더퍼슨스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