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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시용 Mar 14. 2024

신뢰라는 자산이자 리스크 下

더퍼슨스 편집장의 회고찰 ep.5

앞선 글에서 이어집니다.


앞선 글에서 적었듯 신뢰는 언제나 양날의 검이다. 죽음에 다다른 마지막 순간에서 나를 구해줄 가장 강력한 생명줄이 될 수 있지만, 정상에 있던 사람은 단번에 끌어내릴 수 있는 비수(匕首)가 되기도 한다. 신뢰의 본질은 겸손이다. 어떤 상황에서든 내가 고꾸라질 수 있기에 타인에게든 자신에게든 자만하면 안 된다. 신뢰를 쌓는 시간은 평생이지만 무너지는 데는 5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 신뢰의 중요성을 다시 강조하지 않아도 될 만큼 이 글을 읽는 모두 원칙적으로도, 경험적으로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본래 주제로 돌아와 더퍼슨스 편집장으로서 인터뷰이(Interviewee)들의 신뢰 리스크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정리해보려 한다. 이에 대해 논하기 앞서 당연한 전제는 편집장인 필자와 더퍼슨스부터 독자 및 인터뷰이에게 신뢰를 쌓을만한 말과 행동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인터뷰이와의 인터뷰를 편파적으로 이끌어 나가거나 편집 과정에서 인터뷰이의 의도를 왜곡하는 등 단기적으로 편협한 시선으로 책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인터뷰 모음집을 출간하는 이상 책을 만드는 모든 과정에서 가장 먼저 확인하는 부분이다.


반대로 인터뷰이 각자에게 신뢰 리스크가 생겼을 때 이미 도서를 출간한 출판사 입장에서 하게 되는 고민도 쉬운 문제는 아니다. 아래의 그래프를 토대로 이야기 나눠보자.



#1 미미한 사건 & 사전적 예방

수직축은 신뢰 리스크를 일으킬만한 사안의 중대함 정도를 나타내고 수평축은 사건 발생 여부에 따른 사전적 예방과 사후적 대처로 나눴다. 우선 사전적 예방의 관점에서 사안의 크기가 작은 영역을 살펴보자. 결론부터 정리하자면 인터뷰이 선정 과정에서 신뢰성과 관련된 항목을 최대한 정량화하여 필터링해야 한다. 시스템적으로 평가하고 문제가 될 지점을 미리 걸러내는 방식이다. 물론 100%는 아니겠지만 이 과정에서 상당 부분 위험요소를 걸러낼 수 있다. 더불어 이러한 필터링 기준은 각 직업마다 다르기 때문에 오히려 조사 과정을 통해 해당 산업과 직업군에 대한 특성과 신뢰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과정이 되기도 한다. 가령 학자를 인터뷰할 때는 논문 표절이 중요한 지표가 되고 사업가를 인터뷰할 때는 분식 회계나 탈세 여부가 중요해지는 식이다. 참고로 통상적인 거짓말, 갑질, 유흥은 전 직업군 공통이다. 사실 앞서 열거한 사례는 미미한 신뢰 리스크라고 보기에는 큰 부분들이기에 실제 작은 리스크는 관련 업계 관계자들의 평판 조사만으로도 웬만큼 필터링이 가능하다.


#2 미미한 사건 & 사후적 대처

미미한 사안을 사전적으로 예방하는 작업의 난이도를 中이라고 봤을 때, 우려했던 사건이 실제로 벌어진 후 사후적으로 대처하는 것의 난이도는 오히려 下에 가깝다. 의아할 수 있겠지만 난이도가 더 낮다. 출판사 입장에서 취할 수 있는 행동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책에서 빼거나 그대로 두거나. 의기양양하게 성공 이야기를 인터뷰로 담은 사업가의 매출이 이후 급격하게 줄어 그 전문성에 의구심이 생겼다고 가정해 보자. 사기를 치거나 도덕성의 문제로 하락한 것이 아니라면 책 목록에서 제외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이전의 성공과 현재의 실패에서 어떤 점이 달라졌고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 좋은 참고 자료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이 경우 더퍼슨스 입장에서는 무대응이 대응이다.


#3 중대한 사건 & 사후적 대처

이제 중대한 사안의 영역으로 넘어가 보자. 이 영역은 사건의 발생 여부와 상관없이 난이도가 높은 영역이다. 중대한 사건이 일어난 후의 대처는 그대로 中 정도의 난이도다. 미미한 사안의 사후 대처와 마찬가지로 해당 인터뷰를 빼거나 그대로 두거나 둘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다만 네 가지 경우의 수 중 가장 먼저 처리해야 하는 영역이다. 어영부영 시간을 허비하다가는 더퍼슨스가 중대한 사안을 가벼이 여기거나 도덕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일에 암묵적으로 동의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 아직 이 영역에 해당하는 사례가 발생한 적은 없지만 추후 발생한다면 아무래도 책을 개정하며 해당 인터뷰이의 인터뷰를 삭제하는 선택을 내릴 것이다.


단지 더퍼슨스에게 신뢰 리스크의 불똥이 튀는 것을 걱정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버젓이 신뢰를 깎아먹을 정도의 큰 잘못(대부분 거짓을 기반으로 한)을 범했음에도 사건 이전의 인터뷰 내용을 그대로 놔두는 것은 독자를 기만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문제가 되는 부분만 별도로 편집하는 결정은 더욱 최악이고.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설득의 3요소에는 로고스(Logos), 파토스(Pathos), 에토스(Ethos)가 있다. 로고스는 이성에, 파토스는 감정에 호소하며 에토스는 화자의 인격과 전문성 등 자격에 호소한다. 대부분 경험적으로 느끼듯 이 세 가지 중 가장 영향력이 큰 요소는 에토스다. '어떤 교수가 말했다더라.' , '월간 펀드매니저가 준 정보라더라.', '평생 남에게 피해 안 주고 매주 봉사활동하며 살았다더라'라고 말하는 것들. 에토스에만 기대어 상대방을 신뢰하는 것도 문제이기는 하나 중요한 요소임에는 틀림없다. 이 요소가 사라지고 악명(惡名)만 남은 이의 인터뷰를 담기에는 더퍼슨스에게 효익보다 손실이 크다는 판단이다.


#4 중대한 사건 & 사전적 예방

마지막으로 중대한 사안을 사전에 예방하는 법. 가장 어렵다. 과연 누구에게 어떤 문제가 생길 것을 사전에 예상하고 방지할 수 있을까. 본인조차 모를 일이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만도 없다. 과거 진행했던 인터뷰 등의 자료를 탐색하는 것은 기본이다. 지금껏 활용했던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본 인터뷰 전에 사전 인터뷰 형태로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는 방법이다. 이 또한 모든 문제를 100% 예방할 수 없지만 사람과 사람이 직접 마주하면 느껴지는 무언가가 있다. 실무적으로는 인터뷰이의 더 상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장점과 더불어 여러 비언어적인 정보를 함께 얻을 수 있다. 타인에 대해 호의적인지 적대적인지, 타인의 눈치를 얼마나 살피는지, 내면의 도덕성을 얼마나 신경 쓰고 있는지 등. 나름 많은 전문가들과 이야기를 나눠본 결과 생각보다 '인격에 문제가 있나' 싶을 정도의 유명한 이들이 꽤 존재한다. 심지어 업계에서 많은 후배들의 존경과 인정을 받고 있는 이들이다. 겉에서 확인할 수 있는 지표만으로 인터뷰이를 선정할 때 빠질 수 있는 위험이 이 지점에 있다.


이렇듯 인터뷰이 선정 과정에서 섭외 후보들의 전문성뿐 아니라 살펴봐야 할 기타 요소가 많다. 어려운 접근성 등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리스크를 짊어지고 가야 하는 경우도 생기지만 위와 같은 고찰을 한 후의 대처와 그렇지 않은 때와는 양상이 확연히 달라질 것이다. 대비를 한다고 리스크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리스크는 대비하지 않은 자를 귀신같이 솎아내기 때문이다.



더퍼슨스 인터뷰이 리스트

https://thepersons.co.kr/pers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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