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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 Jul 17. 2022

정세랑 김초엽 유니버스에 살면서: 언니들을 사랑해

그냥 제 사랑 고백입니다.

(처음 제목은 ‘친절이란’이었는데, 친절에 대한 내용은 하나도 없고 그냥 제 고백이어서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바꿨습니다.)



한동안 정세랑 작가님과 김초엽 작가님의 글을 여럿 읽었다. 내가 여태껏 읽지 않았다는게 원통할 정도로 너무 좋았다. 남는게 시간일줄 알았던 자유 라이프이지만 은근히 또 시간이 없어서, 매일 두세 시간씩 짬을 내서 한 권을 뚝딱했다. 글을 읽어나갈수록 현실과의 경계가 모호해졌고, 내가 젤리 세상에 사는지, 내 친구가 혹시 휴머노이드인지, 혹시 지금 나는 아주 먼 미래의 우주선 안에 동결된 채 꿈결같은 과거를 회상하고 있는지 희미해졌다.






나는 나만의 이야기 분류법이 있다. 장르로 이야기를 구분해두기보다는(그런 사람은 별로 없을 테지요) ‘읽고나면 마음 따뜻해지는 이야기’, ‘정말 좋은데 두 번은 못 읽겠는 이야기’, 뭐 이런 식으로 나눈다. (두 번째 목록에는 주로 내가 너무 질질 짜면서 보는 바람에 2차 관람을 하려면 마음의 각오가 필요한 스토리들이 포함된다.) 내가 사랑하는 작가님들의 이야기는 대부분 첫 번째 목록에 들어있다. 작은 것을 다정하게 바라보는 태도, 여린 마음을 아무렇지 않게 다독여주는 센스, 주류가 아닌 것을 이야기의 가운데로 끌어오는 의도, 포기하지 않으려는 마음, 그 와중에 놓치지 않는 웃음. (간혹 작가님들의 유머 코드는 좀 독특한데 그것도 너무 귀엽고 사랑스럽다.)


두 작가님의 세계는 묘하게 덧대어진 것 같다. 어느 시점에 어떤 마음상태로, 또 어떤 사회 현상이나 사건을 마주하며 썼는지에 따라 다르겠지만 서로 다른 두 선의 접점, 혹은 교차점이 있다. 각자가 살아온 시간을 막대그래프로 그린 다음, 그 기둥의 중간 어딘가를 쓱 관통하는 감정들이랄까. 그 감정은 어쩌면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언니들, 동생들, 그리고 언니들에게 힘이 되어주는 누군가들과 맞닿아 있을테다.






나는 따뜻한 이야기를 어떻게 잘 전달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신파’와 ‘과한 감성’으로 가기 전에 비상벨이 있었으면 좋겠는 마음이다. 삐, 거기를 밟지 마시오. 한 글자라도 더 치면 거기가 바로 낭떠러지입니다. 초고를 쓴 뒤 한 번 훑어만봐도 오그라들어서 지우기 일쑤다. 그러다가도 가끔은 그냥 냅다 새벽 3시 감성에다가 날 좀 내버려두라고 외치고 싶다. 내일 아침에 일어나서 쪽팔리면 제가 지우겠지요. 하고 싶은 말을 가감없이 해보기도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래도 내 말이 박제되어 5000년 후에도 남아있을 것 같은 디지털 세상에 살다보니, 다정한 이야기를 솜씨좋게 엮는 언니들의 솜씨가 너무 멋지다. 감탄스럽다. 온기가 도는 이야기를 차분하게 전달하는 에너지. 눈물도 나고 웃음도 나고 약간 슬픈데 또 아주 행복한 마음으로 만들어주는 마법.


『보건교사 안은영』 책 맨 앞장, ‘작가의 편지’에서 정세랑 작가님이 책의 주인공 안은영에 대해 이야기한 부분이 기억에 남았다. ‘심드렁하게 심지 있는’ 보건교사 안은영. 작가님은 이 책이 평생 쓰고 싶은 주제가 들어있는 이야기라고 했다. 어떤 사회적 가치에 대해 생각하다보면 내 세상이 확장되는 것을 경험한다. 인간의 권리에 대해 생각하다 몇 년이 지나니 자연스럽게 채식주의자가 되었고(아직 갈 길이 멀지만), 수많은 소수자들과 비인간, 그리고 지구를 사랑하게 됐다. 우주도 사랑하고, ‘미물’들도 사랑하고, 만나보지 못한 무수한 존재들도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다. 가장 마지막으로, 나를 사랑하게도 됐다. 그 길을 언니들의 인물들이 함께 걸어줬다. 심드렁하고, 그렇지만 누구보다 오랫동안 걸어갈 것만 같은 걸음걸이로 내 뒤를 바라봐줄 것 같다.


며칠 전 전자책 플랫폼 ‘밀리의 서재’를 통해 공개된 김초엽 작가의 신작 『수브라니의 여름휴가』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틈새홍보) 다정하고 따뜻한 어떤 마음, 내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려는 다정한 시도, 다른 사람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선량한 노력. 우린 모두 그런 순간의 ‘덕분’으로 살아가는게 아닐까.






사랑하는 언니들이 가득 있어서 다행이다. 한 번도 손을 잡아본 적은 없지만, 내적 친근감이 지나치므로 사랑하는 님들의 의사와 관계없이 다 언니가 되어버렸다. 영생했으면 좋겠는 자우림의 윤아 언니, 초엽 언니, 세랑 언니, 선란 언니, 슬아 언니, 혼비 언니, 그리고 은영 언니, 시선 언니, 그리고 또또, 현실과 우주의 어딘가에 있을 언니들. 지구를 떠받치고 있는 사랑이 하나가 아니라서 정말 다행이에요. 가끔 눈물이 날 만큼 언니들을 사랑해.






그냥 덕후의 외침입니다. 오늘도 열심히 외칩니다 언니들을 사랑해 단독콘서트 열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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