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야 할 하늘은 여전히 검다

by 밍경 e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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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에서 한 걸음도 나가지 않은 날은 방에서 세계를 찾는다 따듯한 커피 한 잔이면 무슨 생각이든 할 수 있었고 주어진 시간만큼이나 여유와 압박이 공존했다


전성기가 지나갔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꽃 피는 주기라는 게 어디 교과서에 적혀있지마는 않았다 아쉬운 건 그냥 과거일 뿐이었다 미래는 불투명했고 또 그만큼 구깃했다


해가 뜨면 그림자가 생겼다 지나가는 시간조차 순서가 있는 듯해 부러웠다 밤에서 찾은 내 세계는 언제나 멸망했고 멸망한 세계 밖엔 엔딩크레딧이 올라갔다 축축한 하늘은 더러운 색깔로 변화하고 있다 마당의 초록이라 믿었던 나무들은 사실 싱그럽지 않았다


회색 담장 위로 올라오는 어둠이 무서워 불을 켰다 그 곳엔 아무 것도 없어서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날이 개기를 하늘에 빌었는데 개야 할 하늘은 여전히 검다 집 밖으로 이삿짐을 나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서 나는 집값을 생각했고 겨울 외투를 생각했고 노트를 생각했고 내일이 오지 않기를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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