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등가와 노숙자, 영등포의 신발

노숙자는 내가 아닌 가래침을 뱉던 아저씨에게 온기를 선물받았다

by 밍경 emb

너절한 1호선

서울의 중심이지만 서민만의 공간

지저분한 골목에 넘치는 노숙자

정점을 찍는 홍등가


적어도 나에게 영등포란 좋을 게 하나도 없는 이미지를 가진 동네였다.


출처 문화일보



홍등가 골목을 지나친 적이 있다. 열넷쯤 된 어린 때였다.

부모님과 외식을 나갔는데 길을 잃었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이라 무작정 헤맸는데 어쩌다 들어간 골목은 이제 막 개장을 하려는 홍등가였다.

날씨가 쌀쌀했는데 여자들은 다들 얇은 원피스만 입었다. 그게 '홀복'이라고 하는 업무용 옷이고, 꽤 비싸다는 걸 알았을 땐 스물을 한참 넘었다.

붉은 빛이 쏟아지는 유리창 안에서 한 여자가 걸터앉아 머리카락을 다듬었다. 밖에서는 하이힐을 신은 다른 여자가 담배를 피웠다. 아이에 아내까지 옆에 있는데도 여자들은 아버지에게 "놀다가라"며 손짓을 했다. 가족 모두 호들갑을 치며 도망나왔는데 꽤나 인상깊었던지 아직도 그 골목을 기억한다.


출처 중앙일보


다른 한편으로 영등포는 노숙의 성지였다. 이것도 직접 경험한 기억이 있다.

막 대학에 입학했을 때, 친구들을 만나러 가면서 영등포역을 지났다. 1호선을 타러 에스컬레이터를 올라가는 길에 피를 뚝뚝 흘리던 노숙인을 지나쳤다.

한참을 기른 듯한 희끗한 수염에 꼬질꼬질한 얼굴, 그리고 깊게 패인 주름과 회색이 되어버린 흰 모자. 옆구리를 움켜쥐고 있었는데, 어디서 칼에라도 찔린건지 손가락 사이로도 피가 뚝뚝 흘러내렸다.

공익처럼 보이는 청년이 병원에 가야 한다고 재차 화를 냈지만 노숙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모자와 수염으로 가려진 얼굴 속에서도 거부의 표정은 분명했다.

대합식 돌바닥까지 이어진 핏방울은 너무나도 선명해서 소름이 돋았다.


이렇게 나의 영등포 기억은 완성된다.



타임스퀘어와 신세계백화점는 일종의 혁신이었다.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는 쇼핑센터를 홍등가 바로 옆에 세운 뒤 영등포는 옛날 이미지를 참 많이 벗겨냈다.

그러나 편견이란 무서워서 내 머릿속 영등포는 여전히 열넷과 스무살 언저리를 오갔다.

몇년 간 영등포를 꺼린 이유였는데, 며칠 전 불가피한 약속이 생겨 타임스퀘어에서 지인을 만나게 됐다.


오후 3시쯤이었다. 밥을 먹지 못해서 지인을 만나자마자 다짜고짜 지하 1층 식료품 코너로 갔다.

들어던 데가 하필 디저트 코너였는지 빵과 아이스크림, 뭐 그런 것들이 잔뜩 있었다.

지인과 와플 두개에 커피 한 잔, 아이스크림 하나를 골랐다. 이만원이 조금 넘었고 내가 계산을 했다.


지인과 볼일을 마치고 이른 저녁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타임스퀘어에는 맛집이 없고 걸어서 10분만 가면 자기가 아는 양고기집이 있다고 해서 따라 나섰다.


출처 https://www.pinterest.co.kr/pin/376895062535752587/


아직 밤은 오지 않아 휑한 술집 골목, 낡아빠진 체육센터를 지나치려는데 하필 싸움이 났다.

중년의 남녀 에닐곱 명이 모여 있었다. 그중 두 명이 너가 개새끼라는 등, 서로 마주보며 악다구를 썼다.

놀랍게도 30초 거리에 경찰차가 있었는데, 경찰차도 싸우는 일행도 서로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10초쯤 지켜보다가 그 이유를 알았다. 악다구는 결코 주먹다짐으로까지 번지지 않았다.

말싸움으로 끝날 고성 정도야 이 곳에서 너무나도 일상적인 일이었다. 영등포는 여전히 영등포였다.



바다이야기니 게임랜드 같은 불법 도박 업소를 지나치다 한 아저씨를 봤다. 아무 생각 없이 지나친 행인이 뇌리에 박힌 이유는 사실, 가래침 때문이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여파인지 마스크를 끼긴 꼈는데, 입술 아래로 턱만 가리고 있어서 도대체 마스크를 왜 꼈는지 모를 아저씨였다. 50대로 추정되는 아저씨는 작업복을 입고, 왼손에 검은 비닐봉지를 들고 있었다.

더러운 먹자골목의 전봇대에 카악 퉤, 침을 뱉는 모습에 비위가 확 상해버렸다. 얼마나 대단한 양고기집인지 모르겠지만 역시 영등포는 사람 올 데가 못 된다며, 약속을 잡은 지인만 투덜투덜 원망했다.

빠르게 지나치고 걸어가려는데 2초쯤 뒤 "어이 아저씨, 거기 잠깐 서봐요!" 하는 소리가 들렸다.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봤다.



가래침을 뱉은 그 아저씨가 웬 노숙자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

"추운 날 진짜 뭐하는 거에요, 한참을 찾았는데 보이지도 않고. 아이씨!"

노숙자 할아버지는 맨발이었다. 발은 피부색이라고 하기도 뭐할 정도로 지저분했다.

"여기 좀 앉아봐요!" 아저씨는 검은 비닐봉지를 열었다. 발목 위로 껑충 올라오는 새 양말을 꺼냈다.

"일단 양말부터 신고, 도대체 신을 어디다가 팔아먹은 거에요!"


눈빛이 텅 빈 할아버지의 동작은 굼떴다. 답답했는지 아저씨는 본인이 꿇어앉아 할아버지의 발을 치켜들었다. 그 지저분한 할아버지의 발을 자신의 무릎 위에 얹었다. 본인이 직접 양말을 신기면서도, 아저씨는 투덜거림을 멈추지 않았다.

싸구려 운동화까지 야무지게 신긴 아저씨는 또 한번 화를 냈다.

"밥은 도대체 먹고 다녀요? 어? 안먹었으면 따라라도 와봐요! 거참!"


출처=축구선수 에브라 인스타그램

난 아직도 세상에 정의라는 게 뭔지 모르겠다.

착한 것, 선이라는 단어는 쉽고 당연해보지만 사실은 너무 어려웠다. 어느 정도냐면, 너무나도 힘든 일이라 마치 우리가 선이란 걸 늘 시행하고 있는 듯한 착각을 만들 정도로 말이다.


2만 원의 와플에 2만원이 조금 넘을 신발.

더러움 가득한 영등포의 골목과 가래침을 뱉던 아저씨의 검은 비닐봉지.

고백하건대 나는 주머니 속 2만원이 있어도 결단코 그런 선행을 해본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대학을 다닐 땐 친구들과 책을 읽으며 대의나 이상, 올바른 길 같은 걸 쉽게도 떠들었다.

직업을 가진 뒤에도 비슷했다. 기사로 글로 말로, 공공성과 선행이란 단어들을 쉴새없이 썼다.

단어는 너무나도 묽어 금방 흘러 내려가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결국 노숙자 할아버지는 내가 아닌 가래침을 뱉던 작업복의 아저씨에게 온기를 선물받았다.


그 실체가 부끄러워 자꾸만 숨어버렸다.

영등포엔 또 다시 당분간 가지 못할 것만 같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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