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완성

나는 늘 빈소에서 왜 사람들이 웃는지 궁금했는데 이 날 처음으로 알았다.

by 밍경 emb


죽음의 완성


고등학교 선생님이 병으로 돌아가셨다.


아빠보다 젊었고 한문 선생님이었고 나는 여태 한자를 잘 쓰지도 읽지도 못한다. 그가 가르쳤던 내용과 방식은 하나도 생각이 안 나는데 이상하게 이름과 존재감은 잊혀지질 않았다.

마침 학교 선배이기도 하던 회사 윗사람이 같이 장례식에 가자고 제안했다. 혼자면 안 갔을 법도 한데 둘이라 갔다. 철야를 마친 일요일 저녁이었다.


대학병원 장례식장은 크고 넓었고 깨끗하고 좋았다. 죽은 이를 위한 마지막 공간은 강박증처럼 잘 관리되었다. 나는 이게 쓸모 없는 일인지 사람으로서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는건지 그도 아니라면 산 사람을 위로하기 위한 인테리어였는지 조금 헷갈렸다.


빈소는 지하 1층의 평범한 4호실이었다. 빈소 앞 복도에는 고등학교 선생님들 대여섯 명이 앉아 있었다.

사립 학교라 선생님들은 거의 바뀌지 않았다. 나는 그들을 알아봤지만 그들은 나를 몰랐다.


당연했다. 고등학교에 대해서는 좋은 추억이 별로 없다.

내 마음은 닫혀 있었고 선생님의 관심은 멀었다. 그래도 존경하거나 좋아하던 선생님은 있었던 것 같은데 그건 내 마음 속 일일 뿐이었다. 나는 존재감 없이 3년을 흘려 보내고 교복을 벗었다.

당시엔 상처가 조금 있었던 것 같은데, 상처를 땡겨 받아서인지 지금은 정말로 아무렇지도 않았다.

사실 아무도 잘못하진 않았으니, 그걸로 됐다 싶었다.


첫날이라 그런지 빈소엔 사람이 많았다. 가득 채워진 빈소 자리에서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웃었다.

나는 늘상 빈소에서 왜 사람들이 웃는지 궁금했는데 이 날 처음으로 알았다.


슬픔만으로는 빈소를 다 채울 수가 없었다. 그러기에 가족들은 지쳤고 빈소는 넓었다.

사람 없는 텅 빈 빈소는 슬픔보다도 지독한 쓸쓸함이 채우곤 했다. 내가 수습 때 돌아다니던 자살 변사자의 빈소들은 보통 그랬다. 그러니까 따지고 보면 나는 술과 웃음과 음식으로 채워진 빈소를 제대로 본 게 이번이 처음이었다.


빈소는 정확히 반으로 나뉘었다. 한 쪽에서는 웃으며 고인을 추억했고, 다른 쪽에서는 울면서 조문객을 받았다. 문턱도 담장도 없는데 두 감정은 어색하지 않게 합쳐졌다. 그 분위기가 망자를 위한 마지막 세레모니이자, 예의이자, 산 사람에 대한 위로가 뭉쳐진 것처럼 느껴져 조금 다행이라 생각했다.


죽음에 대한 산 자들의 공간이 상반된 두 모습으로 채워져야음이란 '한국식으로' 완성되는 거였다.


고인의 대학교 동기들이라는 탁자를 비껴 지났다.

빈소에 가서 나를 기억하지 못했을 선생님과, 그의 유가족에게 마지막 절을 올렸다.

때로는 망자에 대한 기억에 이렇게 종지부를 찍어야 하는 순간이 찾아왔다.

나는 이렇게, 관계가 거의 없었던 한 사람과의 관계를 정리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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