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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가오니 May 28. 2020

20세기 비디오게임 모임

21세기 어른들에게 보내는 지난 세기의 보물같은 추억

20세기, 동네 친구들과 게임을 즐기던 소년이었던 나는 21세기, 2020년되면 우주의 원더키디에서 본 것처럼 우주선이 날아다닐 것 같았다.

[img source = 2020년 우주의 원더키디 KBS,1989]

그런 상상을 하면서 동네 친구들과 집에 모여 원더키디 비디오 테이프가 늘어질 때까지 보고 또 봤다.


그렇게 집에 모여 놀던 친구들 중 처음보는 친구도 있었지만 하지만 개의치않고 너나할 것 없이 즐겁게 뭉칠 수 있었다.


우리를 뭉치게한 힘은 비디오외에도 매우 중요한 매개체가 하나있었는데.....

바로 ‘전자오락’이었다.

[source= 경향신문 1983]

전자오락 화면 속 도트로 된 우주선은 마치 삼삼오오 모여 보던 비디오화면 속 그것과 같았다. 그리고, 서로 먼저해보겠다고 화면 앞에 달라붙어 당시 유행하던 군것질거리 왕사탕같이 생긴 스틱을 잡겠다고 자기 순서를 기다리곤했다.


20세기 어느날, 이름모를 동네 친구들과의 전자오락의 추억이었다.


그때 떠들고 웃던 소년에서 어느새 콧수염이 거뭍 거뭍 나기 시작한 고등학생이 된 나는 여전히 전자오락을 친구들과 즐기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게임잡지를 보다 게임친구 모집 글을 읽다가 충동적으로 펜을 들었다.

[source= 1990년대 나의 당돌하기까지한  게임모임 모집글이 실린 모습]

바로 그냥 동네에 모여서 게임을같이 하자는 모임모집글이었다. 당시 수십만부가 팔리던 인기 잡지였음에도 운이 좋게 다음달에 나의 모집글이 바로 실렸고, 두근두근거리며 답장이 오길 기다리던 어느 날..


학교끝나고 집에 돌아와 문앞에서 우편함에 손을 넣자 무언가가 만져졌다. 낯선  편지지가 들어와있었다.

맙소사 진짜 답장이 온 것이었다. 부랴부랴 답장을 쓰고 좋아하는 게임 이야기부터 신변잡기등을 나누며 얼굴도 모르는 친구와 나는 어느새 게임을 매개체로 마치 어제만난 친구처럼 친해져 있었다.

[source = 편지함과 서재에 꽂혀있는 90년대 그 편지들]

편지를 주고 받고, 한번도 못본 친구지만 형동생을 맺기도하고,  때로는 동네 근처 버스 정류장에서 모여 서로의 집에서 게임을 즐기곤했다.


그렇게 90년대를 관통한 내 삶의 키워드는 '전자오락', 그리고 이것을 매개로 만난 ‘다양한 사람들’이었다.


21세기가 되고 여전히 우주여행은 먼 미래 이야기였고 어느새 중년이 된 내가 있었다.

그로부터 30년이 넘게 지났다. 90년대초의 추억은 바쁜 사회생활에 치이다보니 가끔 꺼내보는 즐거운 기억들일 뿐이었다.

[source = warner bros. pictures]

어느날 검색을 하다가 어딘지 모르게 낯익고 아련한 느낌이 나는 포스터 이미지를 발견했다.


마치, 어린 시절 게임 카트리지를 꽂고 게임을 시작할 때   <READY!! PLAYER 1!!> 문구를 보며 조이스틱을 만지작 거리며 시작을 기다리던 그 흥분을 표현한 것 같았다. <레디플레이어원>이라는 영화는 중년의 추억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만화,게임, 친구들 키워드 하나하나 옛 생각을 나게했다.


영화를 N회차 돌려보다 옛 기억이 떠오르기 시작했다.그리고, 그냥 그때 그 시절처럼 모르는 친구들을 모아 비디오게임 모임을 해보자는 지극히 충동적이고 즉흥적인 발상을 하기에 이르렀다.

 

잡지에 모임 모집 글을 보내고
편지로 약속을 정하고 모여 게임을 즐기던 시절을
익명의 온라인 SNS로 재현해보자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20세기 비디오게임 모임을 하다!

시작은 충동적이지만 결국 몸은 고생이니라.


홈파티를 제법 해봤지만 여전히 혼자서 몇 명이 올지 모르는 모임준비를 하나부터 열까지하는 일은 벅차다.특히나, 이번 모임은 전혀 모르는 분들을 부르는 최초의 홈파티이다보니 어느 정도 어떻게 준비를해야할지 감이 없었다.

온라인 SNS에서 일면식도 없는 분들대상으로 공지를 했음에도 15명 이상이 참가의사를 밝혔왔기에 평소 홈파티할 때보다 넉넉히 장을 보았다.


장을 봤으니 이제 게임을 셋팅할 시간. 20세기의 비디오 게임을 즐기는 모임이 아니었던가..

게임기를 셋팅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와 90년대를 아우르는 20세기와 21세기를 관통하는 아날로그와 디지털 게임기들을 셋팅했다. 참가자분들이 어떤 게임을 좋아하는지 또 개인적인 삶 속의 인생게임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는 상황이었기때문에 마음가는대로 셋팅하기 시작했다.


 (영상은 파티가 끝나고 아쉬운 마음에 혼자 놀면서 찍은 영상이다.)


준비는 얼추 끝났으니 다함께 모여 즐기는 일만 남았다. 


코로나시국이 위기로 격상되기 이전인 2월 중순이었지만,  나날이 심각해져가는 코로나 시국과 더불어 개인적 사정으로 참석의사를 밝혔던 다섯명이 홈파티 당일 불참의사를 밝힘으로서 아무도 오지 않으면 어떡하나란 불안감이 잠시 스쳤다.


코로나 시국이 되기 한달 전,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을 개인 SNS(트위터,FB,인스타그램)에서 모집하는 글을 올리고 나서 아무도 관심이 없을까봐 유예기간을 한달간 두었던게 패착이었다. 정신없이 바쁜

시기였지만 그냥 1월에 생각난 김에 할 걸하는 후회가 0.005초 뇌리를 스쳤다.


잠시 끙끙되며 혼자서 장본거 쟁여놓고 고기 구워먹으면서 게임하고 놀면 되겠지라고 스스로를 위안할 찰나, 설상가상으로 옥상에서 식사를 하기로했지만 비가 오기 시작했고, 준비를 하던 나는 더욱 불안해져만 갔다.


그러나 오후부터 핸드폰에 불이나기 시작했다.그렇게 한명 두명...이어서 10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 산 속 집을 찾아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우린 비가 내리는 악천후에도 옥상에서 고기를 구워먹고 웃고 떠들었다. 마치 어제 만난 동네 친구들처럼

밖에서 고기를 굽고 나르는 사이, 다락방안은 훈훈한 분위기였다. 서로 처음보는 사람들끼리 게임이라는 추억을 매개체로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리고, 또다시 고기를 구웠다.

게임을 할 때는 집중했다. 마치 어린 시절 처음으로 재믹스에 롬팩을 끼고 화면을 바라보던 그 호기심어린 눈빛을 처음보는 분들에게서 느낄 수 있었다.

[source=오랜만에 즐기는 추억의 양배추 인형]

으레 오락실에가면 동네 친구들과 함께 놀면서 진행하던 간이 게임자랑대회도 열렸다.

화면 속 주인공의 움직임을 보며 아슬아슬한 장면도 연출되자 마치 20세기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왁자지껄 떠들면서 흥분하는 모습 속 우리는 영락없이 동네 게임 친구들이 되어있었다.


20세기에대한 추억이란
함께 꺼내 즐길 수 있는 것


바쁘고 지친 일상 속 20세기 비디오 게임을 주제로 충동적으로 진행했던 모르는 사람들과의 모임은 내게 신선한 자극이자 즐거움이었다.


그리고, 기꺼이 시간을 내주고 멀리서 와주신 분들께 감사한 마음도 들고 나도 이런 모임에 참여할 일이 있다면 꼭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했다. 좋아하는 것을 서로 이야기할 수 있고 함께 즐길 수 있었던 그때 그 시절은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이지만, 지금은 또 다른 방식으로 다양한 사람들과 그 시간을 음미할 수 있다는 것

다락방에 돌아와 1980년대말 지금 국민학교때 가지고 다니던 '2020 우주의 원더키디'지갑을 만지작 거렸다.

이 지갑 안을 꽉 채운 1220원이면 하루 종일 즐겁게 놀 수 있었던 20세기 그 어떤 날. 이때 먼 미래라고 생각했던 <2020 우주의 원더키디> 해가 되면 우주여행도 자유롭게 가고 로보트 가정교사도 있고 세상은 천지개벽해있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비록 2020년이 된 지금 우주여행은 아직 먼 이야기같고 1220원은 단 5분의 만족감으로 끝나는 아이스크림 하나 살 때도 고민해야될 정도로 가치가 낮아졌지만 이때의 나와 2020년의 나는 여전히 호기심을 가지고 즐거운 것을 찾아 경험하고 있다.


어쩌면 20세기 비디오게임모임을 통해 호기심을 가지고 두려움을 걷고나면 세월의 흐름과 상관없이 즐거운 경험을 할 수 있다는 단순한 진리를 새삼 깨달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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