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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고래 Apr 30. 2022

바다는 시대를 따르지 않는다

시대를 운운하는 자는 보라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지"


"시대?.. 무슨 시대 말씀이시죠?"


"이제 세상이 바뀌었고, 시대가 바뀌었으니 그거에 맞춰서 살아가는 것이고, 자네가 언급한 그건 이제 아니라는 것이지"


"그 시대라는 단어, 그 의미가 정확히 무엇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죠?"


"그냥 시대 말이야 시대, 문명을 얘기하는 거 아니겠나"


"그럼 시대를 말씀하실 때는 인간시대를 말씀하시는 거네요"


"뭐 그런 것이지"


"하지만 어떡하죠? 바다는 시대를 따르지 않던데요?"


.

.


"그놈의 시대, 스스로 열어본 적도 없는 시대"


이 조선반도의 누군가가 무엇을 주장할 때, 그것에 흥미를 느껴 같이 이야기를 나눠보면 정말 단 한치의 예외도 없이 모두 대화 중 한 번은 "시대"라는 말을 쓰더라. 이는 서울 역삼동의 부유한 자본가들 뿐만 아니라, 지방 끄트머리 시골 마을과, 반도 끝의 섬마을에서도 예외는 없다. 모두 그놈의 "시대"라는 단어를 운운한다. 


그리고 항상 그 "시대"라는 것은 인간 문명을 중심으로 한다. 바다의 시간도 아니요, 산의 시간도 아니요.. 인간 문명의 아주 짧디도 짧은 타임라인을 얘기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런 "시대"라는 개념에 있어서 "시간"이라는 것은 핵심 축 중의 하나로 작용할 것이다. 0시부터 24시까지의 아라비아 숫자기반 시간, Roman-Calendar 기반 달력, 기술 등등.. 모두 여기서 말하는 "시대"를 대표하는 시간이다.


하지만 어떡하는가?.. 내 하루 정확히 오후 3시에 바다를 나가 보았더니 물이 다 빠져 새하얀 속살을 드러내고 있던데, 한 이틀 뒤 정확히 오후 3시에 같은 바다를 가 보았더니, 그것은 같은 바다가 아니었소.. 새하얀 속살은 없고 새찬 파도가 일렁이고 있었다. 그럼에 바다는 문명처럼 고정되어 있지 않으며 매일, 매 순간이 새롭고 매 순간 변화하고 있었다.  


그 바다를 보면서 느끼는 것은 "시간"이라는 것도 하나의 이데올로기이자 이념이라는 것. 누군가가 Arbitrary 한 심볼을 가지고 자의적으로 무엇을 만들어 그것을 고정시킨 이념의 영역.. -ism의 영역이랄까? 그렇다면 시대는?


이 조선반도인들에게서 느끼는 아주 흥미로운 점은 "시대"라는 것이 마치 바다와 산과 sync되어 있는.. 마치 겨울 산의 나무들이 옷을 벗고, 보름달마다 바다가 물을 뒤섞는.. 그럼에 스스로 그러한 소위 말하는 "자연적인" 어떤 흐름이라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 가만히 있는데 마치 봄, 여름, 가을, 겨울처럼 시대가 바뀌고, 시대가 흘러가며.. 자신은 "순리"에 순응하듯 시대를 따른다는 것이다. 허허허..


"순리를 운운할 것이면 바다와 산에 들어가야 할 것을"


어찌 문명 속에서, 어찌 이 임의적 심볼로 만들어진 샌드박스 같은 곳에서 순리를 운운할 수 있겠던가?.. 바다가 인간의 시간을 따르던가? 태양이 시대를 따르던가? 문명의 시각에서 수백만이 소멸하는 아주 큰 대전쟁을 치러도 보름달 하나 꿈쩍하던가? 그렇게 확성기로 드라마틱하게 떠들어재끼는, 마치 무슨 대단한 것인 것마냥 취급하는 정권이니 정치니 하는 것이 바뀌어도, 혹은 메타버스니 같은 것이 떠들썩해도 히말라야 산 하나 꿈쩍하던가?


그럼에 시대는 흙, 물, 바람과 멀리있소.. 그것의 포장지를 까고 까보면, 결국 누군가가 자의적으로 마음에서 임의적 심볼을 통해 주체적으로 연 것임을 알 수 있나니.. 그럼에 시대는 자신의 손으로 지금 이 순간에 새로 창조하고, 새로 파괴할 수 있는 모래성 같은 것이요.. 가만히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느껴지는 가느다란 숨결, 존재의 중심을 박동시키는 이름 모를 무엇과 다르게.. 시대라는 것은 이 자리에서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영역, 주체적으로 새로이 열고, 새로이 파괴할 수 있는 무엇인 것이다.


근데 그러한 시대에 순리를 운운하며 "어쩔 수 없는 것이라" 얘기하니.. 그것이 안일함이 아니고 무엇인가? 반도인들은 모두 그냥 시대 Follower인 것인가? 누군가가 시대를 제시하고 그것을 열면, 그저 그것을 따라가고 싶은 자들에 불과한 것인가? 주체적으로 시대를 열고 파괴할 의향이 없는 것인가? 아니면.. 현재 좆고 따르고 있는 시대와 시간이 마치 바다의 순환마냥.. 산의 옷벗음 마냥 정말 "자연적인" 무엇이라 믿고 있는 것인가? 만약에 시대가 그렇지 않음을 깨달았을 때는 "시대"라는 의미를 계속 차용하고 사용할 것인지? 시대라는 것이 결국 이데아에 불과하다는 것, 이념전쟁에 불과하다는 것, 그럼에 까짓 이데아로 시작하고 이데아로 끝난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말이야..


정복자들이 영토를 정복했을 때 가장 먼저하는 것 중에 하나가 무엇이던가?    


영토의 시간/시대를 정복자의 시간/시대와 맞추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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