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of Virtuoso Organist
2018년 세종문화회관 대강당 파이프 오르간이 개관 40주년을 맞이 하였다. 이 오르간은 거문고 악기를 형상화하여 디자인한 8098개 파이프와 9옥타브를 넘나드는 98개의 음색과 6개의 건반을 가졌다.
세종문화회관 대강당 파이프오르간을 건축하기 위해 당시 흥미로운 기사를 먼저 소개하고 싶은데, 전문은 이러하다. '동양 최대' 파이프 오르간, 시작은 김종필의 '경쟁심'이었다.
과거
1978년 세종 개관과 함께 설치, 당시 비용 6억 원(피아노 1700여 대의 값) 대중화 위해 교육 프로그램 운영, "압도적 소리에 학생들 많이 놀라"
에피소드
故김종필이 일본 NHK홀 본 뒤 더 큰 6단으로 만들라고 지시하여, 前 영국 총리를 지낸, Edward Heath(1916-2005)가 한국을 방한했을 때 (1978년 5월) 멘델스존 소나타 No.2 등 45분 동안이나 연주하기도 하였다.
그의 이름에 Organ을 더하여 검색하면, BBC Archive에서 #OnThisDay1970 오르간에 대해 설명하고 연주하는 모습을 볼 수 있기도 한데, Edward Heath는 1970-74년까지 영국 총리를 지냈고 Balliol College, University of Oxford에서 Organ 장학생(1935-39)으로 있었으니 그가 오르간과 음악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국위선양의 수단이 된 '동양 최대' 오르간 건축으로, 세종문화회관 파이프오르간은 당시 국무총리를 지낸 故김종필의 '경쟁심'으로 일본 NHK홀의 5단 건반 보다 더 많게 6단의 건반과 8098개의 파이프와, 32개의 한국식 범종 그리고 40개의 프랑스식 종으로 이루어져 '동양 최대' 타이틀을 갖게 되었다. 설치비용만 대략 6억 1300만 원으로 당시 피아노 1700여 대의 값에 맞먹어서, '가난한 사람들 살릴 돈을 쓸데없는 데 낭비한다"며 반대에서 나선 시민단체들도 있었다고 하고, 독일 칼 슈케 (Karl Shuke) 사가 13개월의 제작기간을 가지고 만들었다. (출처: 2019-01-28, 한겨레)
그렇게 1978년 '동양 최대' 한국 최초 파이프오르간이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 생기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듬해 1979년 나의 스승님은 한국을 다녀가셨다. 1970-80년대만 해도 오르간이라는 악기는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았을 테고 생소하였을 것이다. 지금은 은퇴하신 선생님들과 그분의 제자들 중에는, 한국 유일무이 한 세종문화회관에 내한했던 유럽 오르가니스트들의 연주를 듣고 보고 ORGAN이 주는 다채로운 매력에 푹 빠져 오르간을 시작하셨다는 생생한 증언을 듣기도 하였다. 그중에 Nicolas Kynaston의 연주를 세종문화회관에서 듣고 오르간을 시작하신 분들도 계시지 않을까 하는 짐작을 해보게 되는 일이기도 하다. 이렇게 한국에서도 오르간이라는 낯선 서양악기를 공부하기 위해 독일을 중심으로 하여 프랑스, 네덜란드, 스위스 등 유럽 전역과 미국에서 유학하고 계셨던 분들 그리고 한국에서도 오르간 LP판을 들으며 공부를 하셨던 분들에게는 Nicolas Kynaston이라는 이름은 전설이었다고 한다. 상상해 보라! 감명 깊은 연주를 하던 연주자를 실제로 만나는 그 감흥을! 당시 영국을 넘어 세계적인 명성으로 유럽은 물론 미국과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여러 지역들에서 연주활동을 비롯 녹음했던 LP는 정말 인기가 많았을 거 같다. 스승님 앞에 LP를 들고 있는 여자분의 메인 커버는 1961-1971부터 Organist로 계셨던 Westminster Cathedral의 전면 모습으로 보인다. 감사하게도, 스승님의 또 다른 제자 Johannes Geffert(독일) 선생님께서 당시 모습이었을 사진을 공유해 주셔서 간직해 두었는데, 젊었을 적에 선생님 옆모습에도 느껴지는 온화함과 흐뭇하게 미소 지은 소녀의 모습에 설렘 가득했을 나의 모습도 떠올리게 한다.
Nicolas Kynaston 선생님과의 만남 가운데 <세종문화회관>에 파이프오르간 연주회로 한국을 다녀가신 이야기는 그로부터 30년도 지났음에도 나에게 다양한 에피소드를 들려주셨다. 그 어느 날 방문했던 선생님 댁에 1979년 세종문화회관 연주 당시 Programme leaflet을 보여 주시기도 하였고 광화문 그 거리에서 탱크가 다녔다는 이야기는 내가 태어나기도 이전이라 실감이 나지 않기도 했지만, 당시 한국 문화와 사회적 환경을 생각하면 충분히 납득할 만하기에 놀라웠던 기억의 조각들은 대한민국이라는 키워드 하나만으로도 오랫동안 함께할 또 다른 추억을 만들기에 충분하였다.
한 가지 정말 아쉬운 것은, 당시 윤학원 지휘자와 어린이 합창단과도 함께 했던 공연이었던 당시 프로그램을 분명 사진으로 남겼을 텐데 mobile memory card 백업을 할 수 없게 되어서 눈앞에서 본 기록만 마음에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르코 예술 기록원에 따르면, 1979년 2월 21일 연주를 하신 기록과 프로그램북을 기증해 주신 분이 계신 듯 하니, 실물 프로그램 찾아보고 싶어 진다.
그렇게 오랜 시간 30여 년의 세월의 무게를 지났을 즘 한국 방문을 여전히 기억하고 계셨던 이곳에서 한 학생이 오르간을 배우겠다고 영국에 왔다. 그런 나를 여전히 아껴주고 사랑해 주신 그 마음이 이곳 대한민국에도 스며 있는 듯 하니 감게 무량하다. 그러고도 시간이 또 흘러 세종문화회관 오르간은 40년이 훌쩍 지났다. 스승과 제자로 만나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이 만남은 생각만 해도 가슴 뭉클하게 아련한 추억이 되었다. 연륜이 느껴지는 연주만큼이나 연로하신 까닭에 한국에 다시 한번 모실 수 없었음이 정말 아쉬웠지만, 선생님의 1세대 제자들이 한국을 다녀가실 때면 Nicolas Kynaston의 추억을 함께 나눈 그때는 영원히 잊지 못할 아름다운 순간이다.
To be continued.... Nicolas Kynaston I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