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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화아닌 김세화 Jan 17. 2022

91년생이 한국에서 외국으로 가서 배우는 것 1

미국과 캐나다에 넘어와 가족에 대한 고찰

미국 가정의 가족과 우리 가족

한국에 살면서 우리 가족과 다른 친구들의 가족은 서부에서 느낀 외국인 친구들과의 가족은 여러 면에서 달랐습니다. 제일 달랐던 점은 자립심이 아닐까 합니다.

한국에서는 부모님이 자식을 정말 아끼는 경우를 더 많이 본 것 같습니다. 우리는 대가족에서 현재 핵가족을 넘어 1인 가구로 넘어가고 있지만, 아직까지 가족을 매우 중요시 생각하고 직업도 혈연에 좌지우지되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한국에 태어나 살면서 이 부분이 가장 힘겨웠던 부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옆에서 손잡아주는 남자 친구가 당연했던 나였는데, 홀연히 쭉 앞을 향하는 그에게 상처받고 찍은 사진이네요. 자기가 중요한 미국이나 캐나다에서는 나의 결정과 실천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내가 나를 위해 내린 결정은 부모님도 주로 나에 대한 존중으로 생각하고 크게 훈계하거나 조언을 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집도 혼자 구하고 구할 수 없으면 룸메이트와 함께 살더라고요. 저 역시 그렇게 하기는 했지만, 한국에 있을 때는 부모님이 보증금 같은 건 좀 도와주셨는데 그런 것도 보통은 얄짤없는 것 같아 보일 때도 있어요.

다들 약혼자의 가족이 부자인 것 같다 잘됐다고 하지만, 사실 가족이라고 하더라도 미국은 유산을 자식에게 주지 않는 경우도 허다해서 부모님은 부모님이고 자식은 자기 나름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가족을 안 챙기는 것은 아니고 많이 생각하고 소통도 자주 하면서 자식과 가족여행도 다니는데, 관여를 많이 하지 않고 자아의식을 존중해주는 것이 인상 깊습니다. 이래서 바깥으로 나가면 견문이 넓어진다고 하나 봅니다.

그다음으로 다른 점은 가족들이 자식에게 하는 말들과 교육이 다른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 가족들과 살면서 들어온 것으론 경제관념에 연관해 내 미래 준비가 중요하게 느껴졌었죠. 91년생 내 또래는 정해진 길이 있던 것 같았어요. 예를 들면, 서울 10대 대학을 가서 안정적으로 사무직을 하는 것이 좋다가 고등학생이었던 저의 머리에 박혀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캐나다나 미국에 가서 직업에 귀천은 없다 그리고 나이도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와닿았습니다. 이건 가족과 학교에서 받는 교육의 차이 같습니다. 한국에서 기억에 남는 동요도 있었는데 제목은 '어른들은 몰라요'인데요. 

가사는 이렇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른들은 몰라요... 장난감만 사주면 그만인가요..... 마음이 아파서 그러는 건데 어른들은 몰라요 아무것도 몰라요. 알약이랑 물약이 소용 있나요. 언제나 혼자이고 외로운 우리들을 따듯하게 감싸주세요 사랑해주세요.'

이렇게 사진처럼 캐나다와 미국에서는 가족과 함께 무언가 많이 하고 감정을 나누는 것을 보면서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희 부모님은 어렸을 때 특히 아버지가 바빠서 한 달 동안 못 본 적도 있는 것 같았는데요. 여기 와서 더 많이 가족에 대한 생각이 다르구나라고 느낀 것은 한 가지 일이 있었습니다. 부모님께도 한 번도 못 받아본 편지를 약혼자 가족과 지내면서 무더기로 선물과 함께 받았거든요. 정말 큰 감동이었습니다.

이 선물과 편지는 그중 하나인데, 약혼자 할머니께서 보내주셨어요. 한 번도 뵌 적은 없지만, 정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저도 어른이기는 하지만 저희 집은 사기를 당한 이후에 많이 망가지면서 가난해지기까지 했는데 어렸던 저가 정말 바라왔던 것은 마음이었습니다. 캐나다에 가서도 미국에 가서도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한국에서 느낀 가족의 정을 지속하면서, 마음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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