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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현 Nov 18. 2021

겁쟁이 엄마의 100일 자동차 여행기#50

소중한 친구를  기쁘게 해 줄 수 있다면

 8월 2일 피카소 미술관 (Musée National Picasso-Paris), 사크레쾨르 대성당 (Sacré-Cœur)





오늘은 한국에서 친구가 오는 날이다.  2주간 우리와 함께 여행을 하기로 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친구들을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인생의 암흑 같은 시기를 지날 때 찾아와 밥도 사주고 빵도 사준 특별한 친구이다.  유럽 여행이 처음이라 즐거워할 친구 생각에 내가 더 설렌다. 지금쯤 친구가 탄 비행기가 유라시아 대륙 어디쯤 날아오고 있겠지? 친구와 함께 유럽을 여행하는 일은 얼마나 드문 행복인가. 아이들 역시 이모를 만나면 무얼 먹을지, 어디를 갈지,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즐거운 고민에 빠졌다.








오전에는 피카소 미술관( (Musée National Picasso-Paris)을 둘러보았다.  지금까지 방문한 대부분의 미술관에서 그의 작품을 수도 없이 만났는데, 이 미술관에만 무려 5000점의 작품이 있다. 그림과 조각 등을 합쳐 3만여 점이나 되는 작품을 만들었다고 하니 그 열정이 부러울 따름이다.




피카소는 스페인 출신의 화가이지만 프랑스 화가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프랑스에서 주로 활동하였다. 어린 시절 읽기와 쓰기를 어려워하고 학교 규칙에도 적응하지 못해 자퇴하였다.  엄마로 살다 보니 어느새 보수적인 사람이 되었다. 나는 학창 시절 답안지도 백지로 내보기도 하고 머리도 일부러 짧게 자르면서 소심한 반항을 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아이들 시험 성적에 기분이 좋았다 나빴다 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사람은 저마다 타고난 재능이 다르다는 증거는 너무나 많다. 나는 그런 증거들을 수집하며 즐거워한다. 그러나 막상 내 아이들은 우선 공부를 잘했으면 하고 바라니 나는 논리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은 못된듯하다.



그림이 마음에 안 들어 가슴에서 레이저를 발사하는 여인인가?




피카소의 삶에 대해 조사해보니, 고흐의 삶은 그와는 여러 면에서 대비가 된다. 피카소는 9세에 파리에 와서 20세에 첫 전시회를 열었다. 그는 일찌감치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며 재정적으로도 풍요로운 생활을 했다. 게다가 92세까지 장수하였다.  반면 고흐는 20대 후반에 그림을 시작하였다. 죽는 순간까지 그를 인정해주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평생을 동생에게 금전적으로 의지하다가 35세에 생을 쓸쓸하게 마감했다. 피카소는 공식적으로 8명의 연인이 있었고 비공식적으로는 더 많다고 한다. 그러나 고흐는 단 한번 거리의 여인과 동거한 적이 있었을 뿐이다.


나에게 선택권이 있다면 나는 당연히 피카소의 삶을 선택할  같다. 그래도 언제나 가슴 깊은 곳에서는 고흐의 삶에 대한 깊은 연민과 애정이 를 것 같다.







친구를 마중 나가러 가는 길에 식당에 들러서 점심을 먹었다. 야외 테이블이 놓여있는 곳이었다. 파리에 도착한 이후 주로 끼니를 숙소에서 해결하거나 한국 음식점에서 사 먹었다. 오랜만에 프랑스 음식을 먹어본다. 아들이 좋아하는 닭다리 요리와 딸을 위한 등심 스테이크, 나는 양파 수프를 먹었다.  오목한 도자기 그릇에 담겨 치즈가 올려진 달콤한 프랑스식 양파 수프. 속을 따뜻하게 해 주고 기분을 좋게 해 주는 맛이다. 메뉴판에 양파 수프가 있으면 항상 시키게 된다.



따뜻하고 달콤한 양파 수프







노트르담 지하철 역에서 친구를 만났다. 운 좋게 비즈니스석으로 업그레이드되어 아주 편하게 왔다고 한다.  50일 동안 주로 아이들하고만  대화를 하다가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니 해방감마저 들었다. 미안하다 아이들아.  나뿐만 아니라 아이들도 그동안의 여행에서 일어난 일들을 이야기하느라 바쁘다. 고맙다 친구야.


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성당 앞


예전과 크게 달라진 것 없는 파리 시내 전경



친구와 함께 몽마르트르 언덕으로 향했다. 사크레쾨르 대성당 (Sacré-Cœur) 앞 계단은 파리 시내를 내려다보려는 사람들로 붐볐다. 친구에게 멋진 파리 시내 전경을 보여줄 수 있어서 기뻤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서울과는 달리 파리는 거의 변한 것이 없는 것 같다. 아마도 가장 크게 변한 것은 중년이 되어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돌아온 나인 듯하다. 파리에 처음 왔던 때의 나를 떠올려 본다. 땅에 발을 딛지 못하고 헤매던 20대의 내가 아득하게 느껴진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물리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동일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다른 것 같다.  






친구가 오는 날 함께 하려고 미루어둔 몇 가지 일정 중 가장 기대되는 물랑 루주(La Machine du Moulin Rouge)의 공연이다. 물랑 루주라고 하면 가장 먼저 화가 로트렉이 생각난다. 나의 짧은 생각으로는 그가 키가 작아 위축되어 살았을 것만 같다. 하지만 그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키가 크고 아름다운 쇼의 주인공들을 자유롭게 그려낸 그의 영혼은 자유로웠던 것 같다.


 극장 내부는 무대 앞에 빈틈없이 놓인 테이블과 의자, 번쩍거리는 샹들리에와 무대 장식 그리고 이미 꽉 들어찬 관객들로 에너지가 넘쳐나고 있었다. 좌석 간의 거리는 좁아서 간신히 테이블 안으로 비집고 들어가서 앉았다. 테이블마다 와인 한 병, 아이들을 위한 주스도 제공된다.


빈틈없이 앉아있는 관객들


오헝주의 오페라와는 달리 물랑 루주 공연을 예약할 때만 해도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여행지에서의 쇼는 괌에서 보았던 마술쇼가 전부였다. 그러나 이 극장의 분위기는 그 마술쇼가 열렸던 극장과는 아주 많이 매우 달랐다. 빽빽하게 들어선 사람들, 많은 사람들이 만드는 여러 가지 소리들 그리고 바쁘게 오고 가는 웨이터들이 뒤섞여 만들어낸 분위기는 우리를 사로잡았다. 나는 마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의 주인공이 헤세를 만나던 술집으로 들어가듯이, 인상파 화가의 그림 속으로 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드디어 공연이 시작되었고 줄지어 무대 위로 들어서는 무희들의 모습에 꽤나 충격을 받았다. 하나같이 다리 길이가 내 키만 한 미녀들이 다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무대 의상을 입고 등장했다.  모두 가슴은 다 드러 내놓은 상태였다. 조금도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들은 수십 벌의 다른 무대 의상으로 갈아입고 매번 색다른 형식의 무대를 연출했다. 그들의 움직임은 경쾌하고 화려했다. 어느 시점부터 노출된 가슴은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다. 우리는 어디에서도 경험해본 적 없는 이 화려한 쇼에 푹 빠져 들었다.


댄서들 중에는 나이가 꽤 되어 보이는 여성도 자주 눈에 띄었다. 물론 여전히 아름답고 군살이 하나도 없기는 하지만 얼굴에는 분명 세월이 흔적이 고스란히 보였다. 그러나 어디에도 자신의 동료보다 나이가 많아서 위축되거나 소극적인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나이가 들었다고 퇴출되지 않고 이런 무대에서 계속해서 활약할 수 있는 이들의 문화가 매우 마음에 들었다.


공연이 끝나고 시원한 밤공기를 느끼며 거리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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