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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와 Sep 06. 2023

300원이 바꾼 나의 운명

만화방 사건


학교 다니던 시절, 엄마가 책 보는데 돈을 아끼지 말라고 하셨다. 

그래서 나는 만화책을 사 모았다. 책을 많이 사 모아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이게 쌓이다 보면 한쪽 벽면의 책꽂이가 모두 책으로 도배가 된다. 내 방이 그랬다. 단행본, 주간 만화, 월간 만화 등으로 벽면이 모두 가득 차 있었다. 책으로 가득 찬 방이 만화방으로 보였다. 작고 포근한 느낌의 만화방. 그래서 나는 가택 만화방을 운영하기로 했다. 책 한 권을 빌려보는데 100원, 예전 물가를 고려한다 해도 100원은 정말 싼 가격이었다. 


동네 동생 관수가 

형! 만화방 열었다매?” 

참고로 예나 지금이나 마케팅, 홍보, 영업 등은 장사에 필수다.

너, 책 좀 빌려볼래? 못 구하는 책들도 많아.”

좋지~” 

하고 관수는 우리 집, 나의 만화방에 와서 300원을 주고 책을 세 권 빌려갔다. 


그날 저녁 엄마가 나를 조용히 부른 후

“OO아, 이리 와 봐봐. 너 혹시 관수에게 300원 받고 만화책 빌려줬니?”

나는 순간 

‘300원이 너무 쌌나? 아니지 너무 비쌌나? 아니다, 첫 손님이고 여러 권을 빌렸으니 할인을 해줬어야 했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엄마에게 

응, 빌려줬는데, 왜?” 라고 얘기를 했다.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엄마는 옆의 빗자루를 몽둥이로 변신시키더니, 나를 프후드려(빨리 발음을 잘 해야 함) 패기 시작했다. 10단 이상의 콤보로 맞은 경험은 드문 경우인데 그때가 기억에 남는 Top 3 중의 하나다. 그리고 이리 오라고 했을 때 눈치가 빨랐으면 빗자루 옆자리인 것을 생각했을텐데, 아~.


맞으면서 처음에는 왜 맞았는지 몰랐는데 그 궁금증은 

이놈의 자식, 이놈의 자식!” 

이러면서 때리다가 지친 엄마의 쉬는 시간에서야 알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때리면서 논리 정연하게 말하기는 쉽지 않은 것 같긴 하다. 하여튼 이유인 즉슨 

“어린 놈의 자식이 벌써부터 돈만 밝히다니 커서 뭐가 되려고 그러니?!” 

였다. 


여기 3가지 논쟁 거리가 분명히 있었다. 

우선 난 그 때 어리지 않았다. 초등학교 3학년이면 말도 하고 생각도 하고 다 컸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두 번째 돈을 밝혔다면 한 권 당 100원을 받지 않았다. 지금도 인기 있는 책이 절판되면 값이 더 오르지 않는가. 그 당시 주간 만화나 월간 만화는 시간이 지나면 다시 구하기 어려웠다. 헌책방을 찾아 왔다갔다 하는 이동시간과 차비가 100원보다 훨씬 비쌌다. 끝으로, 

‘커서 뭐가 되려고???’ 

커서 ‘어떤 사람이 되려고’가 맞는 표현이다. 


아무튼 돈을 버는 감각의 싹이 자라기도 전에  순간이었다. 그래서 내가 지금 돈을 잘 못 벌고 있는 것 같다. 며칠 전  때문에 이 기억이 떠올랐다. 


https://brunch.co.kr/@seigniter/4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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