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이젠 나를 알아갈 나이

문득 끄적끄적 . . .

by 세이지SEIJI


내 나이 마흔 그리고 플러스.


나는 가끔 내 삶의 연대기를 직접 써본다.



1982년 OOO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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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대학교 입학.


2002년 영국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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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식으로 써보면 기분이 묘하다.


위인전 읽을 때나 이런 생애 연대기를 봤지 내 삶을 그리 그려보는 게 퍽 흥미로웠다. 또 그 연도의 하이라이트, 키워드를 뽑을 때마다 무엇이 내 삶에 큰 영향을 주었고, 왜 좋았는지 또는 왜 힘들었는지 회고하게 돼 좋다.




40대에 접어든 지 그리 오래 되지 않아서 사실 40대의 삶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지금도 내 나이 앞자리 숫자가 퍽 낯설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지난 30대의 10년을 회고해 보는 일.


30대는 20대에 비하면 참 재미없었던 것 같다.

희한한 게 뭔가 일어났던 일도 많고, 큰 변화들도 많았는데 그냥 '잃어버린 10년'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나의 30대를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과도기'.

'20대의 나'와 '40대의 나' 사이를 넘어가는 과도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느 과도기나 마찬가지지만 아리송하고 확신이 없는 그런 느낌이 가득했다. 그렇기에 시행착오의 연속. . . 그래서 실패의 연속. . .20대에는 확신이 있었기에 성취도 있었고 그랬기에 신나고 재밌었는데, 30대는 '어라! 이게 아니었네!'를 연달아 읊으며 '우왕좌왕', '알쏭달쏭' 불확신으로 가득했기에 성취도 적었고, 재미도 없었다.




마흔에 접어든 지 몇 년 되어가는데 내가 생각하는 40대의 묘미는 '자신과 진정으로 사귀는 맛'에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20대에는 열정과 패기가 압도하고, 30대는 20대의 확신이 불확실할 수도 있다는 깨달음으로 풀이 죽어있는 시기라면 40대는 그런 시행착오 후 '민낯의 자신'과 마주할 수 있는 그런 때라고 할 수 있다.




누구나 저마다의 사연이 있다. 누구는 가족 때문에, 학교생활에서, 직장 생활에서. . . 눈물이 나올 정도의 구구절절한 사연들이 있을 수 있다. '삶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란 말이 있듯이 고난과 역경 하나쯤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마흔은 그런 주어진 환경에서 벗어나 진짜 나를 찾을 수 있는 나이라고 생각한다. 불행했던 과거의 내면 아이를 스스로 달래고 '과거'에서 한 발짝 벗어나 오롯이 나를 마주할 수 있는 그런 강단이 있는 나이가 비로소 마흔.


"마흔이면 직장에서 최소 과장은 달아야지, 30평 아파트는 있어야지, 그랜저급은 끌어야지, 결혼해서 자녀는 두고 있어야지. . ." 이런 것 말고,


마흔은 '자.신.을. 마.주.할. 수. 있.는. 나.이.'여야 한다.




"마흔에 접어드니 안 아픈 곳이 없어요."


40대부터 나타나는 건강 신호들도 나를 알아갈 수 있는 훌륭한 단서가 된다.

그 아픔의 메시지는 단순하다.

"네가 지금까지 이렇게 먹어왔고, 이렇게 생활해 왔잖아... 그런데 더 이상은 못 받아줄 것 같아... 미안하지만 바꿔줄래?"

몸이 이리 말하고 있는 것일 뿐.


20,30대에는 내가 무엇을 먹든, 어떻게 생활하든 몸이 잘 알려주지 않으니 잘 하고 있는 것인지 아닌지 알 길이 별로 없다.

40대에 들어서면 몸도 이제 나와 대화를 시도해 본다.

'아, 내가 이럴 때 이런 걸 먹어대니니 위가 힘들다고 하는구나. 왜 난 이런 기분일 때 이걸 꼭 찾게 되지?'

이렇게 하나하나 단서를 찾아가며 스스로도 퍼즐을 맞춰가 본다.




마흔은 리부트 하기 아주 좋은 나이.

그 어떤 때보다 축적된 데이터가 많은 나이다. 그리고 얼마든지 회복할 수 있는 나이기도 하다.

내가 가진 자신에 대한 데이터와 회복탄력성을 무기로 무엇이든 해볼 수 있는 나이다.


20대처럼 왁자지껄하지 않다고 슬퍼할 필요도 없다.
30대처럼 씩씩하지 못하다고 슬퍼할 필요도 없다.
40대는 잔잔히 혹은 단단히 흘러가는 게 제 맛이다.


마흔, 나를 알아갈 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