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맡김의 기술 초보자

에필로그

by 세이지SEIJI

터득한 인생 기술 하나

40여 년을 살면 누구나 삶에 대한 나름의 기술과 요령을 터득하게 마련이다. 어떤 사람은 인맥 관리의 기술을, 어떤 사람은 돈을 모으는 기술을, 어떤 사람은 사람의 마음을 읽는 기술을 익힌다. 그렇다면 나는? 마흔을 조금 넘긴 지금, 나도 중요한 한 가지를 깨달아가는 중이다. 바로 '인생은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20대의 나는 야심만만했다. 서울에서 자라며 한국을 벗어나 더 넓은 세상으로 가는 것을 꿈으로 삼았고, 실제로 영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건 분명 내 의지였다. 인생은 내 계획과 의지대로 흘러가는 듯했다. 하지만 두 번째 영국행부터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영원히 그곳에서 살 줄 알고 떠났던 것인데 히드로공항에 발을 디딛는 순간 온몸의 신경이 말하는 것 같았다, 잘못된 선택이라고. 영국 생활은 순탄하게 흘러가지않았다. 그리고 갑자기 한국으로 돌아오게 됐다. 그 뒤 30대부터는 꿈에서도 상상해 본 적 없는 어느 지방 도시에서 살게 됐다.

그리고 어느날부터 길고양이들이 내 시야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끊임없이 내 눈앞에 도움이 절실한 고양이들이 나타났다. 30대에는 원룸에 살며 바깥에서 그들을 돌봤고, 40대가 되자 바깥에서 돌보던 아이들을 새로 이사한 집 안으로 들일 수 있었다. 그래서 지금 내 집에는 아홉 마리의 고양이가 식구로 살고 있다. 어디 하나 내 계획이나 의도가 개입된 적이 없는 일이었다.



의지와 흐름 사이에서

물론 내가 돕지 않으면 목숨이 위태로울 고양이들을 살려야겠다는 건 내 의지였다. 하지만 그들이 연달아 내 눈앞에 나타난 것은 전혀 내 의지나 계획이 아니었다. 한때는 너무 힘들어 엉엉 울면서 세상을 원망하기도 했다. 내 계획과는 너무 다르게 펼쳐지는 삶에 좌절하기도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며 조금씩 알게 됐다. '결국 삶은 내가 계획한 대로 흘러가는 게 아니었구나.' 내 바람과 다른 일들이 펼쳐질 때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두 가지다. 분노하거나 아니면 받아들이고 그 흐름을 지켜보든가.

어차피 내 손을 벗어난 일이라면 내가 화를 내거나 억울해한다고 달라질 건 없다. 오히려 발버둥칠수록, 도망치려 할수록 복리 이자처럼 더 불어서 결국 올 일은 오더라. 그런 것도 조금 깨달았다. 차라리 내맡겼을 때 상황은 좀 더 수월한 방향으로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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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초보

사실 돌보는 게 버겁다. 아홉 마리의 고양이를 돌보는 건 분명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회피하거나 원망하지는 않는다. 내가 그 수를 조절하려고 계획한다고 절대 그렇게 되는 것도 아니고, 그런 것에 집중할수록 오히려 상황은 더 힘들게 변한다는 것도 이제는 안다.

얼마 전 집 앞쪽에 다시 처음 보는 길고양이가 나타났다. 날씨도 겨울로 접어들어 추운데, 그 어린 고양이가 혼자 떠돌 걸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웠다. 만날 때마다 물과 사료를 챙겨주고 있다. '앞으로 어떡하지, 이러면 또 늘잖아...' 이런 생각을 속으로 하며 애써 외면해봤자 달라지는 건 없고 내 스트레스만 높아질 뿐이다.

또 바깥에 내 도움이 필요한 고양이가 나타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 또한 내가 어찌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 마음만 졸인다고 될 일은 아니다.

아직은 내맡김 기술의 마스터가 못 됐다. 초보 티가 난다. 종종 마음이 휘몰아칠 때도 있다. 하지만 마흔을 조금 넘긴 이 시점에 내가 그 세월 동안 터득한 인생의 기술이 뭐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감독이 아니라 배우

될 일은 된다.
안 될 일은 안 된다.


인생의 흐름은 내가 만드는 게 아니다. 그 흐름을 타는 것이고, 그 흐름 위에서 주어진 대로 최선을 다하면 그만이다. 그게 흐름이라고 부르면 흐름이고, 누군가 이미 써둔 시나리오라면 시나리오다. 나는 배우로서 내게 주어진 역할을 최대한 충실히 해내면 되는 것이다.

나는 예전에 내가 내 인생 영화의 감독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닌 것 같다. 나는 배우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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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초반에 쓰는 저널은 이렇게 10편으로 짧게 마침표를 찍지만, 또 몇 년 후 40대 후반에 닿으면 또 다른 저널을 기록하고 싶어질지 모른다. 그 또한 알 수 없다.

하지만 '내 마흔살의 저널' 1부는 여기서 마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