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를 키우기로 했다

'나'라는 퍼즐을 맞춰나가는 여정

by 세이지SEIJI

나에 대해 쌓아온 데이터들


ENTJ.

정사일주.

애니어그램 8번과 5번.


그동안 나 자신을 파악하기 위해 여러 도구를 거쳐 쌓은 데이터들이다. 요즘처럼 MBTI가 유행처럼 널리 알려지기도 훨씬 전에 정식 검사를 두 번이나 한 찐 결과다. MBTI 하는 김에 애니어그램도 같이 하라고 상담사분이 권유해서 함께 했었다.


원래 서양문화 덕후였던 내게 어느 순간부터 동양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동양 고전이니 역사니 이런 것들에 관심이 점점 생겨나면서 문득 예전에 재미로 보고 다니던 내 사주 결과들이 어떤 근거로 나온 것인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내친김에 명리학도 공부했다. 오로지 나를 더 잘 알고 싶어서.

신기하게도 이 세 가지가 나에 대해 말하고 있는 인간상이 아주 일관된 모습이다. 이것들이 유일한 정답은 아니었지만, 나 자신을 객관적 지표와 표현들로 묘사해 내는 데에는 큰 도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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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에 가두지 않기

그런데 이런 결과들은 나란 사람에 대한 조각을 보여주는 것이지 결코 전부는 아니다. 설마 세상 모든 이가 9개 혹은 16개의 유형으로 똑 떨어지겠는가? 명리는 그것들보다 훨씬 더 많은 통계를 보여주고 있기는 하지만 역시 이것 또한 하나의 유형일 뿐이지 디테일은 모두 각자 본인 몫이다.

흔히 이런 도구들을 절대 맹신하며 그 틀 안에 자신과 다른 이들을 가두려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그것은 그런 도구를 쓰지 않느니보다 못하다. "넌 OOO형이니까 그런 거야"라고 할 게 아니라 "OOO형에게도 이런 모습도 있구나"라며 더 풍부하게 확장해 가야 한다.



가장 어려운 존재

나는 내가 가장 어렵다.

40년 가까이 지켜보고, 겪어내고, 같이 살고 있어도 한참을 모르겠다. 이성적으로 바라는 것, 생각하는 것, 그런 것들은 그저 표면적인 것일 뿐 진짜 내가 어떻게 반응할지는 나도 모른다. 직접 경험해 봐야 비로소 나란 사람이 어떤지 알 수 있는 법...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에서 유학자였던 홍인방이 이방원에게 얘기하던 대사가 떠오른다.

"나도 내가 이런 사람인 줄 몰랐다. 고신을 받기 전까지는 나도 내가 이렇게 빨리 변절할 줄 몰랐어. 그러니 너도 너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는 직접 겪기 전까지는 알 수 없는 것이니라."

홍인방은 고문을 받기 전까지는 고고하고 충실한 유학자였지만, 큰 물리적 고통 앞에서 그동안 숭고하게 여겨왔던 가치들은 아무 의미 없이 사라지고 자신을 고문하던 편에 서서 탐관오리의 끝판왕을 보여준다.



겪어봐야 아는 것

홍인방의 말이 절절히 와닿는다. 머릿속으로는 '내가 이런 사람일 거야, 이런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라는 이상향이 있지만, 그저 상상만으로는 실제 자신의 본성을 꿰뚫어 보기 불가능하다.

이런 장면은 몇 년 전 봤던 《고려 거란 전쟁》에서 거란족에게 붙잡힌 장군 '강조'와 그의 부하들의 모습에서도 다시 재현되었다. 그토록 강조를 따르고 충성했던 부하 '이현운'은 거란의 황제 '야율융서'가 자신을 따르면 죽이지 않겠노라 하니 바로 변절하고 아첨을 하며 목숨을 구걸하였다. 반면 강조는 재차 묻는 야율융서에게 '절대 고려를 배신해서 거란을 따르지 않겠노라' 절규하며 끝내 도끼로 난도질당한다.

아마 배신한 이현운도 충심을 지킨 강조도 자신이 그런 결정을 할 거라는 걸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물론, 평소 '난 고려의 충신이다', '충신이고 싶다'는 바람은 간직하고 있었을지언정 자신이 엄청난 공포와 고통 앞에서 어떻게 반응할지는 겪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이다.

나 또한 그렇다고 본다. 지금까지 내가 겪어 왔던 경험들, 시련들, 그러한 것들이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단초를 제공하지만 여전히 그 퍼즐은 현재진행형이다.



'나'라는 퍼즐을 맞춰나가는 여정

나도 예전에는 내가 자식을 둘은 낳을 줄 알았다. 고등학생 때는 심지어 미래의 내 자녀들에게 편지도 썼었다. 20대 때는 내 자식들에게 줄 이름도 미리 지어놓기도 했었다.

그러다 30대 중반이 넘어가면서는 2세를 갖지 않는 삶을 더 많이 상상하게 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며 자연스럽게 그 생각은 더 뚜렷해졌다. 나이가 들수록 난 내가 더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날 알아가고 키워내는 것만으로도 24시간이 가득 찬다. 이 생각은 꽤 오랫동안 변할 것 같지 않다.

이 자리에서 자식 있는 삶과 없는 삶의 유불리, 이해득실을 논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다. 그저 난 그렇게 결정하게 되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을 뿐. 하지만 이 마음이 영원할 거라는 보장도 없다. 5년 후에 혹은 10년 후에 내 마음이 어떨지는 지금의 나로서는 도저히 알 길이 없다. 지금의 마음만 알 뿐이다. 그리고 그에 충실할 뿐이다. 오지도 않은 미래의 여러 가능성으로 보험 들듯이 내키지도 않는 일을 생물학적 시간에 쫓겨 행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미래의 일은 그때 가서 그 마음에 충실하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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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비용을 인정하기

물론, 계획하지도 않았는데 2세가 갑자기 생기는 일도 있을 수 있다. 그러면 열심히 키워야겠지. 그러나 그런 일은 내게 일어나지 않았다. 그 또한 운명이지 않을까.

어떤 이들은 말한다. 자식을 안 낳아봐서 그러는 거라고... 뭐 그럴 수도 있지. 우리는 살아가면서 모든 것을 다 가질 수 없다. 늘 말하지만 기회비용을 인정하면 인생에 그렇게 억울할 것도 아쉬울 것도 많지 않을 것이다. 내가 2세가 없는 삶을 선택하면 2세가 있는 삶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포기하는 것이고 2세가 없는 삶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을 택하는 것이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 심플한 것이다. 2세가 없는 삶을 선택하고선 2세가 있는 삶의 혜택을 탐내면 그건 기회비용을 인정하지 않는 모순을 저지르는 것이고 불행은 거기에서부터 싹튼다.



나는 나를 키우기로 했다

내 꿈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나 자신을 조금씩 더 알아가서 나다움을 지키되 이 세상에 이로움을 조금이라도 만들어낼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이고, 그러하기까지의 과정을 열정적으로 즐기며 만끽하는 것이다.

난 알파걸도 아니고 슈퍼우먼도 아니다. 이것도 잘하고 저것도 잘해내기 힘들다는 걸 잘 안다.


그래서 나는 나를 키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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