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 노예제 옹호와 그 비판적 고찰
아리스토텔레스. 이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드물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의 제자,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스승. 그는 논리학, 형이상학, 윤리학, 정치학, 생물학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영역에 걸쳐 저술을 남겼다. 서양 학문의 토대를 놓은 인물로 평가받으며, 중세 유럽에서는 단순히 "철학자(The Philosopher)"라고만 불려도 그를 지칭하는 것이었다.
그의 논리학은 2천 년 넘게 서양 사고의 기본 틀로 기능했다. 삼단논법, 범주론, 형식논리의 체계를 세운 사람이 바로 그다. 윤리학에서는 행복(에우다이모니아)을 인간 삶의 궁극적 목적으로 제시하고, 덕(아레테)의 함양을 통해 그것에 도달할 수 있다고 가르쳤다. 정치학에서는 "인간은 본성상 정치적 동물"이라는 유명한 명제를 남겼다.
우리는 학교에서, 교양서에서, 다큐멘터리에서 이런 아리스토텔레스를 배운다. 위대한 사상가, 서양 문명의 지적 기둥, 합리적 사고의 선구자.
그런데 그가 노예제도를 열렬히 옹호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단순히 그 시대의 분위기에 휩쓸려 침묵한 정도가 아니다. 그는 노예제가 정의롭고, 자연스럽고, 심지어 노예 자신에게도 이롭다는 정교한 논리를 구축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의 저서 『정치학(Politica)』 1권에서 노예제에 대한 체계적인 이론을 전개한다. 그의 주장을 직접 살펴보자.
먼저 그는 노예를 이렇게 정의한다.
"인간이면서도 본성상 자신의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것인 자, 그가 바로 본성상 노예다. 인간이면서도 소유물인 자, 그리고 소유물이란 행위를 위한 도구로서 소유자와 분리된 것이다."
노예는 인간이다. 그러나 동시에 소유물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모순을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받아들인다. 그에게 노예란 "살아있는 도구"다. 북이나 베틀처럼 주인의 목적을 위해 존재하는 도구인데, 다만 생명이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노예와 가축의 쓸모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노예와 길들여진 동물의 사용은 크게 다르지 않다. 둘 다 몸으로 삶의 필요에 봉사하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노예제 옹호 논리의 핵심은 "자연적 노예(natural slave)"라는 개념이다. 그는 어떤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노예가 되도록 정해져 있다고 주장한다.
그의 논리는 이렇다. 인간에게는 이성(理性)이 있다. 이성은 욕망과 충동을 다스리고, 숙고하고, 판단하는 능력이다. 그런데 모든 인간이 이 능력을 동등하게 갖고 있지는 않다는 것이 그의 전제다.
"영혼과 육체 사이의 차이, 또는 인간과 동물 사이의 차이가 있는 곳에서, 자신의 몸을 사용하는 것이 그들의 일이고 그것보다 더 나은 것을 할 수 없는 자들은 본성상 노예다."
"이성적 원리를 이해할 수는 있으나 그것을 소유하지 못하는 자가 본성상 노예다. 반면 하등한 동물들은 원리를 이해조차 못하고 본능에 복종할 뿐이다."
정리하면,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자연적 노예란 이성을 '이해'할 수는 있지만 스스로 '소유'하거나 '행사'할 수 없는 인간이다. 동물보다는 낫지만, 완전한 이성을 가진 자유인보다는 못하다. 그래서 이들은 이성을 가진 주인의 지도 아래 있어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에서 가장 교묘한 부분은 노예제가 노예 자신에게도 이익이라는 주장이다.
"지배할 능력이 있는 자와 복종해야 하는 자의 결합은 생존을 위해 필수적이다."
"자연적 노예에게 주인의 지배를 받는 것이 유익하고, 정의롭다."
그의 논리를 따라가 보자. 이성이 부족한 사람은 스스로를 다스릴 수 없다. 혼자 두면 방황하고, 잘못된 판단을 하고, 결국 불행해진다. 그러나 이성을 가진 주인 밑에서 지도를 받으면, 그의 삶은 질서를 얻고, 안정을 얻고, 나름의 행복을 누릴 수 있다. 따라서 노예제는 주인에게만 이로운 것이 아니라 노예에게도 이롭다.
이것이 아리스토텔레스가 구축한 논리다. 노예제는 자연의 질서이고, 정의에 부합하며, 노예 당사자에게도 좋은 것이라는 삼중의 정당화.
아리스토텔레스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그는 그리스인과 비(非) 그리스인, 즉 "야만인(barbaroi)"을 명확히 구분한다.
"야만인들 사이에서는 여성과 노예 사이에 구분이 없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자연적 지배자가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남성 노예와 여성 노예의 공동체일 뿐이다."
"그래서 시인들이 말하길, '그리스인이 야만인을 지배하는 것이 마땅하다.' 이는 야만인과 노예가 본성상 같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리스인은 본성상 자유인이고 지배자다. 야만인은 본성상 노예다. 따라서 그리스인이 야만인을 지배하는 것은 자연의 질서에 부합한다.
이 논리가 2천 년 뒤 어디서 다시 등장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던져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대에는 모두가 노예제를 당연하게 여겼을까? 그 시대의 "한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런 주장을 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한 소피스트가 있다. 엘라이아 출신의 알키다마스(Alcidamas). 그는 유명한 수사학자 고르기아스의 제자였고, 이소크라테스의 라이벌이었다.
알키다마스는 아리스토텔레스와 정반대의 주장을 했다.
"신은 모든 인간을 자유롭게 두었다. 자연은 그 누구도 노예로 만들지 않았다."
(ἐλευθέρους ἀφῆκε πάντας θεός, οὐδένα δοῦλον ἡ φύσις πεποίηκεν)
아리스토텔레스가 "어떤 인간은 본성상 노예"라고 주장할 때, 알키다마스는 "자연은 어떤 인간도 노예로 만들지 않았다"라고 반박한 것이다.
알키다마스의 논리는 당시 소피스트들 사이에서 활발하게 논의되던 "자연(physis)과 관습(nomos)"의 구분에 기반한다.
자연(physis)은 인간이 만들기 전부터 존재하는 것, 보편적이고 불변하는 것이다. 관습(nomos)은 인간이 만든 법, 제도, 규범으로, 시대와 장소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알키다마스에 따르면, 노예제는 자연이 아니라 관습이다. 인간이 만든 법과 제도가 강제한 것이지, 어떤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노예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노예 상태는 전쟁에서의 패배, 빚, 납치 같은 우연적이고 역사적인 사건의 결과이지, 그 사람의 본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는 메세니아인들의 사례를 들었다. 스파르타의 지배 아래 오랫동안 노예 상태(헬로트)에 있던 메세니아인들이 마침내 독립을 되찾은 사건이다. 만약 그들이 "본성상" 노예였다면 어떻게 자유를 쟁취하고 자치 국가를 세울 수 있었겠는가? 이것이야말로 노예 상태가 본성이 아니라 강제된 상황임을 증명한다고 알키다마스는 주장했다.
알키다마스의 관점에서 보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적 노예" 이론은 심각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당시 노예들이 교육받지 못하고, 숙고할 기회를 박탈당하고, 단순 노동에만 종사하는 모습을 보고 "이들은 이성이 부족하다"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이것은 원인과 결과를 뒤집은 것이다.
노예들이 이성적 숙고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은 그들의 "본성" 때문이 아니다. 그들에게 교육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고, 의사결정에 참여할 권한이 없었고, 오직 명령에 복종하는 삶만 허락되었기 때문이다. 사회적 억압의 결과를 타고난 본성으로 오판한 것이다.
게다가 아리스토텔레스 자신도 인정한 부분이 있다. 그는 자연이 자유인과 노예를 신체적으로 구분하려 "의도"하지만, "종종 반대의 결과가 나온다"라고 썼다. 즉, 자유인의 영혼을 가진 사람이 노예의 몸을 가질 수도 있고, 그 반대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외모나 신체로 자연적 노예를 구분할 수 없다. 영혼을 들여다볼 수도 없다. 그의 이론은 실제로 누가 자연적 노예인지 판별할 방법을 제시하지 못한다.
이제 핵심 질문으로 돌아오자.
우리는 고대 그리스 철학을 배울 때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를 배운다. 이 세 사람이 서양 철학의 기둥처럼 제시된다. 그 외의 사상가들은 "소피스트"라는 이름 아래 뭉뚱그려지거나, 아예 언급되지 않는다.
알키다마스는 "자연은 어떤 인간도 노예로 만들지 않았다"라고 선언했다. 이 문장은 후대 스토아학파의 보편적 인류애 사상으로 이어졌고, 근대 계몽주의의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는 선언의 먼 선구자로 볼 수 있다.
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노예제를 자연의 질서로 정당화했다. 그의 논리는 2천 년 뒤 미국 남부의 노예제 옹호론자들에 의해 그대로 인용되었다. 그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권위를 빌려 흑인 노예제를 "자연의 법칙"이자 "노예에게도 이로운 제도"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우리의 교과서와 교양서는 아리스토텔레스를 "논리학의 아버지", "서양 철학의 거인"으로 가르치면서, 그의 노예제 옹호론은 거의 다루지 않는다. 알키다마스라는 이름은 전문 연구자가 아니면 들어본 적도 없다.
왜일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다.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것은 언제나 기록할 수 있는 사람들, 즉 그 사회의 기득권이었다.
고대 그리스에서 철학을 할 수 있었던 사람은 누구인가? 시민권을 가진 성인 남성이다. 노예, 여성, 외국인은 제외된다. 철학자들 자신이 노예를 소유한 계층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도 노예를 소유했다.
노예제를 정당화하는 철학은 당시 지배층의 이익에 부합했다. 노예 노동 위에 구축된 아테네 민주주의와 경제 체제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반면 노예제를 비판하는 사상은 그 체제를 위협하는 것이었다.
어떤 사상이 보존되고 전승되는가? 그 사회의 지배적인 제도와 권력 구조에 부합하는 사상이다. 어떤 사상이 잊히거나 주변화되는가? 그 체제에 불편한 사상이다.
알키다마스의 저작은 대부분 소실되었다. 그의 사상은 단편적인 인용문과 다른 저자들의 언급을 통해서만 전해진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은 방대하게 보존되어 중세 내내 "철학자"의 권위를 누렸고, 대학 교육의 핵심이 되었다.
고대 그리스의 노예제는 먼 과거의 일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가 제기하는 질문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우리가 "위대한 사상가"라고 배우는 인물들에 대해, 무엇이 가르쳐지고 무엇이 가르쳐지지 않는가? 왜 어떤 사상은 "고전"으로 보존되고, 어떤 사상은 역사의 각주로 밀려나는가?
역사에 남는 사상이 반드시 "옳은" 사상이었던 것은 아니다. 그것은 종종 그 시대 기득권의 이익에 부합했던 사상이었을 뿐이다.
"자연은 어떤 인간도 노예로 만들지 않았다"라고 말한 알키다마스의 이름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어떤 인간은 본성상 노예"라고 말한 아리스토텔레스는 서양 문명의 지적 거인으로 추앙받는다.
이 사실 앞에서, 우리가 배운 "지식의 역사"란 과연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