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남자는 Mr. 여자는 Miss와 Mrs.였을까

언어와 사회의 관계에 대한 고찰

by 세이지SEIJI

바이킹이 남긴 단어

오래전 영어의 역사를 공부하다가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9~10세기에 영국을 정복했던 스칸디나비아의 바이킹들이 영어에 깊은 흔적을 남겼는데, 그들의 언어인 고대 노르드어(Old Norse)에서 유래한 단어가 현대 영어에 수백 개나 남아 있다는 것이다. 그중 하나가 바로 husband다.


husband는 고대 노르드어 húsbóndi에서 왔다. hús는 '집'을, bóndi는 '거주자' 또는 '자유민'을 뜻한다. 그러니까 husband의 원래 의미는 '남편'이 아니었다. '집의 주인', 혹은 '가구(家口)의 책임자'였다. 한국어로 치면 호주(戶主)에 가까운 개념이다.

이 흔적은 지금도 영어에 남아 있다. husbandry라는 단어가 그렇다. 이 단어는 '남편 노릇'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농업 경영'이나 '자원 관리'를 뜻한다. husband가 원래 결혼 관계를 가리킨 것이 아니라 가구와 재산을 관리하는 역할을 가리켰기 때문에 이런 파생어가 생긴 것이다.

그렇다면 이 단어는 대체 어쩌다 '남편'이라는 의미를 갖게 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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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fe는 '아내'가 아니었다

husband의 짝이 되는 wife를 보자. 이 단어 역시 원래 의미가 지금과는 사뭇 달랐다.

고대 영어에서 wīf는 '아내'를 뜻하지 않았다. 그냥 '성인 여성'이었다. 결혼을 했든 안 했든, 어른 여자를 가리키는 말이었을 뿐이다.

그 흔적은 지금도 영어 곳곳에 남아 있다. midwife(산파)를 보자. 이 단어는 '아내의 중간'이 아니다. mid는 '함께'를, wife는 '여성'을 의미하니, '출산을 돕는 여성'이라는 뜻이 된다. old wives' tale(허무맹랑한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늙은 아내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이 든 여성들 사이에 떠도는 이야기'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고대 영어에서는 '남편'과 '아내'를 어떻게 표현했을까?


놀랍게도 고대 영어에는 오늘날의 marry에 해당하는, '결혼하다'라는 뜻을 가진 단일 동사가 없었다. 대신 이런 표현들을 썼다.

weddian: 서약하다, 약속하다 (wedding의 어원)


niman a wife: 아내를 취하다


gifan to wife: 아내로 주다


결혼이란 두 사람 사이의 결합이 아니라, 여성을 '주고받는' 일종의 거래에 가까웠던 것이다.



두 단어를 나란히 놓으면

husband와 wife를 나란히 놓으면 흥미로운 비대칭이 보인다. husband는 원래 '집과 재산을 관리하는 사회적 주체'를 뜻했고, wife는 '성인 여성'이라는 존재 범주를 가리켰다. 남성은 '역할'로 정의되었고, 여성은 '존재'로 정의되었다. 남성에게는 '무엇을 하는가'가 중요했고, 여성에게는 '무엇인가'가 중요했던 셈이다.

이 비대칭은 우연이 아니다. 당시 사회 구조가 고스란히 언어에 스며든 결과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wife가 원래 '성인 여성' 전반을 가리켰다면, 그에 대응하는 남성형 단어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왜 영어에는 wife의 남성 대응어가 없는 걸까?



wife에 남성형이 없는 이유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고대 영어에서 man은 원래 '인간 일반'을 뜻했다. 성별과 무관하게 사람 자체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성인 남성만을 특정해서 가리킬 때는 wer라는 별도의 단어를 썼다. werewolf(베어울프: 늑대인간)에 남아 있는 were가 바로 이 단어의 흔적이다.

그런데 중세로 넘어오면서 wer가 사라졌다. 그 결과 man이 '인간 일반'과 '성인 남성'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모두 떠안게 되었다. man은 인류를, 철학적 주체를, 사회적 범주를 모두 담당하는 거대한 단어가 되어버린 것이다.

반면 여성 쪽은 어떠했을까. wīf는 그냥 '성인 여성'이라는 범주어로 남아 있었다. 그러다 결혼이라는 제도가 중요해지면서 wīf는 '특정 남성과 결합한 여성', 즉 '아내'로 의미가 좁아졌다.

정리하면 이렇다. wife는 '성인 여성'이라는 넓은 범주에서 '누군가의 아내'라는 관계로 의미가 축소되었고, husband는 '가구 책임자'라는 역할에서 '누군가의 남편'이라는 관계로 의미가 확장되었다. 애초에 출발선이 달랐으니, 대칭이 맞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결혼하면 법적 인격이 사라진 여성

이 비대칭은 단순히 언어에만 국한된 현상이 아니었다. 법적 현실이기도 했다.

중세 영국 관습법에는 커버처(coverture)라는 원칙이 있었다. 이 원칙에 따르면 결혼한 여성은 독립적인 법적 인격을 상실했다. 남편과 아내는 법적으로 하나의 인격이 되는데, 그 하나의 인격은 남편이었다.

이게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했을까.

결혼한 여성은 독립적으로 재산을 소유할 수 없었고 계약을 체결할 수도 없었다. 당연히 소송의 당사자가 될 수도 없었다. 결혼 전에 가지고 있던 재산조차 결혼과 동시에 남편의 관리 아래로 들어갔다. 법적으로 아내는 남편에게 '흡수'되는 존재였다.

이 원칙은 18세기 영국의 법학자 윌리엄 블랙스톤(William Blackstone)이 쓴 『영국법 주해(Commentaries on the Laws of England)』에 명확히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이 법적 구조는 19세기 후반에 기혼여성재산법(Married Women's Property Acts)이 제정되기 전까지 수백 년간 유지되었다.

husband가 '가구의 법적 대표자'에서 '남편'으로 의미가 확장된 배경이 여기에 있다. 남성은 결혼 전에도 법적 주체였고, 결혼은 그 지위를 더 공고히 할 뿐이었다. 반면 여성은 결혼을 통해 법적 지위가 오히려 축소되었다.



언어에 새겨진 흔적들

이런 역사적 구조는 영어 곳곳에 흔적을 남겼다.

남성에게는 Mr. 하나뿐이다. 결혼을 했든 안 했든 상관없다. 반면 여성은 Miss(미혼)와 Mrs.(기혼)로 나뉜다. 왜일까.

남성에게 결혼은 법적 지위의 변화를 의미하지 않았다. 결혼 전에도 법적 주체였고, 결혼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굳이 구분할 이유가 없었다. 반면 여성에게 결혼은 신분의 근본적인 전환이었다. 독립적 인격에서 남편에게 귀속된 존재로 바뀌었으니, 언어가 그 차이를 표시한 것이다.

widow(과부)와 widower(홀아비)의 경우도 비슷하다. widow는 고대 영어 시대부터 있던 오래된 단어다. 반면 widower는 훨씬 나중에 만들어진 파생어다. 남편이 죽으면 여성의 법적, 사회적 지위가 급격히 바뀌었으니 그것을 표시할 단어가 필요했다. 반면 아내가 죽어도 남성의 지위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굳이 표시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master와 mistress도 흥미롭다. master는 지금도 '주인', '달인', '대가'라는 긍정적 의미를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mistress는 어떤가. 원래는 master의 여성형으로 '여주인'이라는 의미였다. 그런데 지금은 '정부(情婦)'라는 뜻으로 더 많이 쓰인다. 같은 구조에서 출발한 단어인데, 왜 여성형만 의미가 타락한 것일까.



언어는 사회를 이끄는 걸까, 따라가는 걸까

이런 역사를 알고 나면 자연스럽게 드는 생각이 있다. 언어를 바꾸면 사회도 바뀌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실제로 그런 시도들이 있어왔다. Miss와 Mrs. 를 대신해 Ms.로 통일하자는 운동이나, '폐경(閉經)' 대신 '완경(完經)'이라 부르자는 제안, '애완동물' 대신 '반려동물'이라는 표현을 쓰자는 움직임 같은 것들이다. 나는 이런 시도들이 의미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언어와 사회의 관계에 대해 조금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다.

husband가 '호주'에서 '남편'이 된 것은 누군가 의도적으로 바꾼 결과가 아니다. 사회 구조가 그렇게 만든 것이고, wife가 '여성'에서 '아내'로 좁아진 것도 마찬가지다. 언어는 사회를 직접 만들기보다는, 그 사회의 평균적인 의식과 가치관을 반영하는 쪽에 가깝다.


물론 사회의 의식이 이미 변해가고 있을 때, 언어를 바꾸려는 시도가 그 변화에 힘을 보탤 수는 있다. Ms.라는 호칭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것도 '여성의 결혼 여부가 사회적 신분을 결정해서는 안 된다'는 의식이 이미 상당히 퍼져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사회의 의식은 그대로인 채 언어만 바꾼다고 해서 사람들의 생각이 따라 바뀌지는 않을 것 같다.


언어가 사회를 이끈다기보다는, 언어와 사회가 함께 간다고 보는 편이 더 맞지 않을까. husband와 wife의 어원을 들여다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